[목차] [clearfix] == [[페르시아]]의 [[환관]] == 고대 [[페르시아어]]: 𐎲𐎦𐎡 (바고이) [[고대 그리스어]]: Βαγώας (바고아스) (? ~ 기원전 336년) [[기원전 4세기]]의 인물로,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말기의 [[환관]]이었다.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고자]]~~ [[권신]]으로, [[왕중왕]]만 무려 2명이나 갈아치웠던 [[황궁]]의 실력자였으나 정작 자신이 옹립한 다리우스 3세의 손에 죽었다. 페르시아의 [[조고]]라고 부를 수 있으며 [[황제]] 둘을 시해한 환관이라는 점에서 [[북위]] 전기의 환관 [[종애]]의 [[이란]]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은 말기로 들어설수록 [[궁중]] 환관들의 권력이 막강해졌는데, 바고아스는 그러한 환관들 중에서도 수장 급의 위치에 있었다. 바고아스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를 독살하고 [[아르세스]]를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워 전횡을 일삼았으나 아르세스가 친정을 시도하려 하자 그마저도 살해해버렸다. 이후 지지 기반이 취약한 방계 황족인 [[다리우스 3세]]로 하여금 아르세스의 뒤를 잇게 하고 여전히 배후의 실력자로 행세하였으나, 다리우스 3세도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던지라 스스로 세력을 키우다가 마침내 바고아스를 제거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다리우스 3세에게 독이 든 잔을 권했는데, [[역관광|이를 눈치 챈 다리우스 3세가 군사들을 불러 그 자리에서 바고아스를 붙잡아 그 머리채를 잡고 입에 독이 든 잔을 부어서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진이|이후 다리우스 3세는 친정 체제를 굳히면서 오랜 내분을 수습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중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지않아 내부 정리가 제대로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가 쳐들오고 만다. [[마케도니아]], [[그리스]] 전역을 위협하던 [[중동]]의 [[크고 아름다운]] ~~[[관대하]]~~ 세계제국 페르시아의 강력한 국력은 벌써 사라져버리고 결국 다리우스 3세가 알렉산드로스 3세와 맞붙었다가 [[이수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연이어 대패를 당하고 이어 살해되면서 [[멸망|아케메네스 왕조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의 [[환관]] == 고대 페르시아어: 𐎲𐎦𐎡 (바고이) [[고대 그리스어]]: Βαγώας (바고아스) (? ~ ?)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의 [[환관]]으로, 처음엔 [[다리우스 3세]]의 [[남총]]이었다가 이후에 [[알렉산드로스 3세]]의 남총이 된 인물. 기묘하게도 1번의 인물과는 동시대의 인물일뿐더러 이름까지 똑같다. 당시 흔한 스타일의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원전 4세기의 인물로, 본래 아름다운 용모의 [[미소년]] 환관으로서 페르시아의 황제인 [[다리우스 3세]]의 캐터마이트(Catamite)[* 남색의 대상이 되는 미소년을 말하는데, 우리말 중에는 [[면]]과 뜻이 같다.], 즉 남첩(男妾)이었다. 그 외에 기록이 적어 자세한 출신이나 내력은 알 수 없다. 기원전 331년에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가 대패하게 되면서 그 수도인 [[페르세폴리스]]가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의 왕인 [[알렉산드로스 3세]]에 넘어가게 되었는데, 이후 다리우스의 심복이자 페르시아의 총리였던 나바르자네스가 자드라카르타에서 바고아스를 알렉산드로스에게 소개해 주었다. 당시에 바고아스는 10대의 소년이었는데, 외모가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춤과 노래에 능했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총애를 받았다. 바고아스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자세하지 않으나, 알렉산드로스의 총애를 받은 덕분에 그의 곁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던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가 정리한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3세가 바고아스의 충고에 따라 [[페르시아인|페르시아 사람]]인 오르크시네스를 불공정하게 처형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언제나 알렉산드로스의 곁에서 영혼의 동반자이자 수족과 같은 심복으로 행세했던 [[애인]] [[헤파이스티온]]과 더불어 그의 개인적인 삶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으리라 생각된다. [[대비열전|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따르면 마케도니아군이 인도 원정 중에 철군을 하면서 게드로시안 사막을 횡단할 때에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춤 경연대회를 열었는데, 바고아스는 여기에서 우승하여 매우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에 병사들의 요구로 알렉산드로스는 바고아스에게 상으로 '''[[키스]]'''를 해주었다고 전한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기록이 굉장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남총]]이었기 때문에 [[헤파이스티온]]과 함께 알렉산드로스를 다룬 각종 매체에서 주변 등장인물로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메리 레널트(Mary Renault)는 영미권에서 알렉산더 3부작 소설을 발표한 여류작가로 유명한데, 그 중 2번째 작품인 <페르시아 소년(The Persian Boy)>의 주인공이 바로 바고아스이다. 작중에서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자제로, [[내가 고자라니|거세를 당하고]] [[성노예]]가 된 채 황궁에 팔려와서 다리우스 3세의 성노리개가 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페르세폴리스 함락 후에 자신을 거둬준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점차 그에게 감화된다. 작중 알렉산드로스의 연인인 헤파이스티온을 질투하는 듯한 묘사도 볼 수 있다. 2004년에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알렉산더(영화)|알렉산더]]>에서도 등장해 묘한 [[게이]]력을 뽐냈다.(...) 다만 기존의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깨고 다소 큰 키에 균형잡힌 [[몸매]]의 멋진 미남으로 묘사된다.[* 실제 배우도 발레 선수 출신인지라 몸동작이 우아하고 몸이 튼튼하게 생겼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작중 마지막에 노년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면서, 바고아스는 알렉산더를 위해 사랑과 헌신을 다하다가 알렉산더 사후에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평했다. [각주][[분류:페르시아/인물]] [[분류:기원전 336년 사망]] [[분류:마케도니아 왕국의 인물]][[분류: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