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드라마 펜트하우스 시리즈의 등장인물, rd1=민형식(펜트하우스))] 閔衡植 [[1875년]] ~ [[1947년]] [[3월 21일]] [목차] == 개요 == [[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관료]]. 본관은 [[여흥 민씨|여흥]](驪興)[* 삼방파(三房派) 29세 식(植) 항렬.], 자는 공윤(公尹). == 생애 == 아버지 민영집(閔泳集, 1836 ~ 1889. 5. 13)과 어머니 [[연안 김씨]](1818 ~ 1879. 8. 8)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7촌 지간의 족숙(族叔)인 [[민영휘]]에 입양되었다. [[1888년]]([[고종(조선)|고종]] 25) 식년 [[진사|진사시]]에 3등 156위로 [[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SA_6JOc_1888_038131|입격하고]] [[1891년]](고종 28)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 15위로 [[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MN_6JOc_1891_014865|급제해]] [[승정원]] 가주서(假注書)와 [[규장각]] 대교(待敎)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1904년]] [[내무성]]의 제도를 시찰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 [[1907년]] [[나철|나인영]]이 주도한 [[을사오적]] [[암살]]에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황해도로 유배되었으나 특사로 풀려난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기 위한 조직인 국민대추도회의의 준비위원으로 참가했다. [[1914년]] [[민영휘]]의 상속자가 되었다. [[1924년]]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1934년]] [[10월]] 무정부주의 활동을 한 채은숙에게 자금을 재공한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1935년]] [[12월 30일]] 아버지 민영휘가 죽자 [[1936년]] [[7월]] 작위를 승계했다. [[1939년]] 친일단체 조선유도연합회의 참여로 활동했다. [[분류:1875년 출생]][[분류:1947년 사망]][[분류:일제강점기의 인물]][[분류:여흥 민씨 삼방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