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개요 == 민영철은 조선-대한제국기의 관료이자 군인이다. == 생애 == 1864년 여흥 민씨집안에서 테어났다. 민영철은 영자 항렬 중에서 어린편이어서 출세가 늦었다. 1885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에 참의급 관료가 되었다. 이후 한성부 좌/우윤을 역임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 민영철은 [[풍경궁]] 건설을 도맡았다. 초반에는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증건보다 빨리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민영철의 비리로 인해 점점 느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혈세 낭비 논란으로 좋은 의미에서 시작되었던 풍경궁 공사는 도히려 대한제국 정부의 이미지 추락에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평양|서경]]을 중건하는 것은 힘든일이라며 고종은 큰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https://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43_11A_02A_00050&solrQ=query%E2%80%A0%EB%AF%BC%EC%98%81%EC%B2%A0$solr_sortField%E2%80%A0$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ST_AA$solr_toalCount%E2%80%A0693$solr_curPos%E2%80%A0692$solr_solrId%E2%80%A0BD_ITKC_ST_Z0_A43_11A_02A_00050|#]] 물론 제대로 된 비리가 밝혀지게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민영철은 이후 1906년 국경을 넘은 죄로 면직되었다. 그의 비리는 비리로 유명한 또다른 민씨 [[민영휘]]를 능가할 정도였다. [[분류:여흥 민씨]][[분류:1864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