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6>|| ||<-6>|| ||<-6> '''{{{+4 {{{#!html 므락우}}}}}}[br]{{{+1 [[미얀마어|{{{#!html မြောက်‌ဦးမြို့}}}]][br][[영어|{{{#!html Mrauk U}}}]]}}}''' || ||<-6> [[파일:mrauk-u.jpg|width=100%]] || ||<-1> '''국가''' ||<-5>[[파일:미얀마 국기.svg|height=15]] [[미얀마]] || ||<-1> '''주''' ||<-5>[[라카인주]]|| ||<-1> '''인구수''' ||<-5>189,630명[* 2014년]|| ||<-1> '''시간대''' ||<-5>UTC+06:30|| ||<-6>{{{#!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Mrauk U,너비=100%,높이=300px)]}}}||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GFvrTdvYTl4)] [[아라칸 왕국]]에 대한 [[라카인족]]의 그리움을 담은 노래이다.[* 영상을 보면 아라칸 왕국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왕조인 단야와디 왕국, 라웅옛 왕국, 와이탈리 왕국 등도 등장한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로힝야]] 사태가 벌어진 그곳이 맞다. 그러나 로힝야족은 주로 라카인 주 북서부 지역인 [[마웅도]](그나마도 [[2017년 로힝야 사태]] 이후 로힝야족이 대량으로 죽거나 쫓겨난 지금은 버마족 군인들과 아라칸족 농어민들, 방글라데시 [[줌머족]] 난민들이 이주하여 불교도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남은 이들도 [[영고라인|재산을 빼앗기고 난민촌에 갇혀서 굶고 병들어 죽어가거나]], [[엑소더스|죽음을 피해 해상이나 방글라데시로 계속 탈출하고 있다.]])지역에 많이 살고 북동부 므락우 지역은 주민 거의 대다수가 [[아라칸족]]이며 그 외에는 [[친족]], [[카미족]]이 어느정도 비중을 보이고 로힝야족은 거의 살지 않으며 그나마 살고 있는 사람들도 난민촌에 [[감금]]당하다시피하여 여행객들이 볼일은 거의 없다.] 의 유서깊은 도시. 현재 벵골 동남부와 미얀마 서해안의 라카인 (아라칸) 지방에 400여년에 걸쳐 존재했던 아라칸 왕국[* 므락우 왕국으로도 불린다.]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과거에는 도시 자체가 아라칸으로 불렸으며, 16세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불교 사원들이 수백여개 남아있어 여행자들을 감탄하게 한다. 참고로 므락우는 [[미얀마어]]이고 현지 [[아라칸족]]들은 '미아우' 라고 부른다. == 역사 == 라카인 주 일대에는 토착 [[아라칸족]][* [[라카인족]]으로도 불리며 미얀마에서 [[버마족]], [[샨족]], [[카렌족]] 다음으로 미얀마 인구서열 4위인 나름 메이저한 민족이다.] 들이 왕국을 이루고 살았는데, 9세기부터 중국 [[운남]] 지역에서 남하한 [[버마인]]들[* 아바 왕국 등의 연합군]이 1406년 11월에 아라칸 지방을 침공하며 혼란에 빠졌다. 중과부적의 상황을 맞은 아라칸 지역의 [[라웅옛 왕국]]의 국왕 [[민 사우 몬]]은 서쪽의 [[벵골 술탄국]][* [[방글라데시]]의 조상격 국가로 전근대 [[벵골인]]의 유일하다시피한 독립국가였기 때문에 세속주의와 벵골 민족주의를 밀고 있는 현 총리 [[셰이크 하시나]]와 [[아와미 연맹]]역시 최근 이 나라를 띄워주면서 역사 관광 상품화도 계획중이라 한다.]으로 망명하였는데, 벵골의 술탄 자랄 웃 딘과 친밀해졌고 술탄은 그의 복위를 돕기로 하였다. 한편, 1406년에 아라칸을 정복한 버마의 [[잉와 왕국]]은 곧 바간의 버고(Pegu) 왕국[* [[한따와디 왕국]]이라고도 불린다.]과 싸우게 되었고, 6년간의 싸움 끝에 [[탄드웨]][* [[산도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얀마]]의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응아빨리]](영어로는 [[나팔리]]라고도 한다.)해변[* 별명이 미얀마의 [[나폴리]]이다.]이 있는 곳이다.] 등 아라칸 남부는 페구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1429년 [[민 사우 몬]]은 버고와 잉와 세력을 몰아내고 [[아라칸 왕국]]을 창업했으며 1430년 므락우로 수도를 옮겼으며 [[벵골 술탄국]]의 문화 역시 받아들여 페르시아식 칭호인 [[샤]][* 굳이 이슬람 국가가 아니어도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나라는 이 칭호를 쓰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면 최근 폐지된 [[네팔 왕국]]의 [[고르카 왕조]]가 있다. ex) [[트리부반]] 샤, [[갸넨드라]] 샤] 칭호를 받아들였고 이는 왕조가 [[꼰바웅 왕조]]에 정복될 때까지 이어진다.[* 참고로 민 사우 몬 자신의 칭호는 [[술레이만 샤]] 이다.] 이후 [[아라칸 왕국]]은 [[벵골 술탄국]]이 약해지자 포르투갈 해적, [[콩키스타도르]]와 연합해 [[치타공]][* 지금도 [[다카(방글라데시)|다카]]에 이어 [[방글라데시]]의 [[제2의 도시]] 역할을 하는 [[명실상부]]한 [[항만|국제 주요 무역항]] 중 하나이며 인구는 1000만명을 웃도는 수준으로 900만 정도의 [[서울특별시]]보다 조금 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콕스 바자르]][* 세계에서 가장 긴 125km 천연 백사장으로 알려져 있는 [[방글라데시]]의 관광 명소 중 하나다.], [[라무]][* [[콕스 바자르]] 남쪽 끝자락에 있는 중소도시로 [[로힝야]] 난민촌이 있으며 난민 수용을 놓고 말이 많은 섬 [[바샨차르]]가 이 도시 앞바다에 있다.][* 도시 자체가 [[듣보잡|인지도가 없어]] 항목이 개설되지 않아 링크를 누르면 만화 [[시끌별 녀석들]]의 여주인공이 나온다.] , [[마웅도]][* 현재는 [[로힝야]]의 주 거주지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동파키스탄]][* 현재의 [[방글라데시]]] 영토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으나 1947년 [[아웅 산]]의 주도로 맺어진 [[팡롱협정]]에 근거하여 미얀마 [[라카인|라카인 주]]에 편입되었다.] , [[치타공 구릉지대]][*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인 [[줌머족]]의 다수 거주지이다.], [[트리푸라]][* 현재 인도의 [[트리푸라|트리푸라 주]]이며 한때는 [[트리푸라 왕국|독립 왕국]]이기도 하였다.], [[다카(방글라데시)|다카]] 동반부[* 서반부도 점령만 안 했지 약탈과 노동력 확보를 위한 주민 납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를 점령하는데 성공한 후 많은 농토와 어장을 확보한 뒤 [[벵골인]]들을 포로삼아 노동력으로 이용하였다.--벵골 술탄: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짐이 이짓거리 당하자고 저 불신자 놈들을 도왔나 자괴감 들고 괴롭네 C8!!!]]-- 이어서 16~17세기 초에는 [[민 바지]] 왕과 [[민 티카]] 왕[* 이 둘은 부자관계로 아버지인 민 바지가 [[싯따웅 사원]]을 짓자 아들 민 티카는 이에 질세라 [[꼬따웅 사원]]을 더 크고 아름답게 지으려고 하였는데 부처님을 위시한 정령들이 [[꼰대|감히 아버지를 이겨먹으려 하다니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욕하며]] 벼락을 내려 꼬따웅을 파괴했다는(...) 웃픈 전설이 있다.]이 왕국의 전성기를 이끄는데 특히 경제 수도 [[치타공]]과 정치 수도 [[므락우]]는 유럽과 아랍, 페르시아, 명나라 상인들은 물론 일본에서도 상인들은 물론이고 [[센고쿠 시대]]와 [[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등 전란에 휩쓸려 모시던 [[다이묘]]를 잃은 사무라이인 [[로닌]]들 일부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벵골인]] 용병[* 이 벵골 용병 후손들을 [[캄만|캄만(Kaman)족]]이라고 부르며 같은 이슬람에 벵골인 혈통인 [[로힝야]]와 달리 미얀마 국민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아라칸족]]과의 통혼도 꽤 이루어져 아라칸 사회에 상당히 동화되었는데다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로힝야]]와는 다르게 [[세속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 당연히 로힝야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와 별개로 [[종교극단주의|불교 극단주의자]]들의 [[이슬라모포비아]]에 시달리는 건 매한가지다.]과 더불어 왕의 근위병으로 취직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하는 등 [[국제도시]]로 변모한다. 하지만 17세기 상술한 전성기가 끝나고 [[치타공]] 역시 포르투갈 출신의 용병인 [[필리페 데 브리투]]에게 뺏긴 뒤 서서히 영향력을 잃기 시작하다가 벵골 총독 [[샤이스타 칸]]의 [[장비를 정지합니다|항구 봉쇄로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벵골인]]에게 치타공을 재헌납 하다시피 했고 [[국가 막장 테크|기득권층의 권력다툼과 더불어 유럽이나 말레이계 해적들이 해안가를 약탈함과 더불어 사이클론과 지진이 연달아 일어나는 등 천재지변까지 닥치면서]]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결국 1784년에는 [[꼰바웅 왕조]]의 제 6대왕 [[보도파야]]의 침략으로 마지막 왕 [[마하 탐마다]][* 본명은 타도 아웅(Thado Aung)이다.]가 끝내 항복하면서 [[아라칸족]]의 수천년 독립 역사는 끝을 맺고 수도인 므락우 역시 점령된 후 주민들 대다수가 학살당하고 왕족과 귀족들은 짐승처럼 당시 [[꼰바웅 왕조]]의 수도인 [[아마라푸라]]로 끌려갔으며 재화를 약탈당하고 약탈이 불가능한 사원이나 탑, 궁전은 금박을 벗기고 보석을 빼낸 뒤 파괴한 다음 전소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므락우]] 유적을 가보면 불타거나 못으로 그은 흔적이 있는데 이때의 영향이다.[* 물론 이쪽으로 침략하고 전쟁을 치른 [[영국군]]이나 [[일본군]]에 의해 파괴된 것도 있다.][* 이때 [[마하무니 불상]]도 전리품으로 같이 옮겨졌다.] 이후 [[아라칸족]]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꼰바웅 왕조]]가 이를 진압하려 하자 [[나프 강]] 너머 영국령 [[인도 제국]]영토로 도망갔는데 진압군도 따라 넘어가서 계속 전투를 벌였고 이것이 [[대영제국]]을 자극하는 바람에 미얀마 식민지화의 [[만악의 근원]]이 되는 [[영국-버마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 관광 == [[파일:mahabodhi-shwegu-mrauk-u-4.jpg]] [[분류:미얀마의 도시]][[분류:옛 수도]][[분류:미얀마-방글라데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