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왕조실록)] ---- || '''{{{+3 문종공순대왕실록}}}'''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문종 실록.jpg|width=100%]]}}} || [목차] [clearfix] == 개요 == 문종실록(文宗實錄)은 [[조선]] 제5대 국왕인 [[문종(조선)|문종]] 이향(李珦) 재위(1450~1452) 2년 3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이다. 본디 13권 6책이나 12권만이 현존하여, 조선왕조실록 중 [[유니크|유일하게 결본이 있는 실록이다.]] 문종실록을 편찬할 때 전주 사고본의 11권 표지를 9권에다 입히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전주 사고에는 11권이 없고 9권만 두 권이 있었다. 이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맞으며 전주 사고본만 살아남고, 이후 판본은 전주 사고본을 원본으로 삼아 복제한 것이기 때문에 문종실록 11권은 소실되었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151호에 해당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국가기록원]]에 소속된 역사기록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 내용 == [[http://sillok.history.go.kr/search/inspectionMonthList.do?id=kea|국사편찬위원회 문종실록 전문]] 정식 명칭은 문종공순대왕실록(文宗恭順大王實錄)이다. 1450년 3월부터 1452년 5월까지 문종의 재위기간 2년 3개월 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으로, 1454년 3월에 편찬을 시작하여 1455년(세조 1) 11월에 완성되었다. [[정인지]], [[정창손]], [[최항(조선)|최항]], [[하위지]] 등이 편찬하였다. 현존하는 문종실록은 문종 1년 12월과 다음해 1월의 두 달 분 기록에 해당하는 권11이 결본(缺本)이다. [[임진왜란]] 때 다른 사고는 모두 불타고 오직 전주사고본 실록만이 살아남았는데 이곳의 문종실록이 인쇄한 후 제본하는 과정에서 표지를 잘못 붙여서 권11 대신 권9가 중복되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다른 사고 어딘가에는 권11이 2권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3대 왕인 태종이 실록 편찬에 있어 [[사초]](史草)를 내어놓지 않는 사람은 아들과 손자를 모두 금고(禁錮)하고 은(銀) 20냥(兩)까지 징수하도록 엄형을 만들어놓았고 이게 계속 집행되어 왔는데, 이 때부터 그건 너무 잔인하다는 세조의 명에 의하여 은 20냥만 부과하고 자손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도록 법이 완화되었다. 이 책은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1455년 7월에 세조가 즉위한 후 완성된 책이기 때문에 학계 일부에서는 [[단종실록]]과 함께 그 저술시각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문종의 병서(兵書) 편찬과 무기 고안 등 당시 국왕이 가진 군사적 재능에 대한 내용, 세종대에 시행되었던 [[공법]](貢法)과 각종 역(役)의 문제가 이 시기에 보다 구체화된 내용, 문종에게 깊은 지병(持病)이 생기면서 [[수양대군]], [[안평대군]], [[황보인]], [[김종서(조선)|김종서]] 사이의 갈등관계가 점차 증폭되기 시작하는 내용, 문종실록 마지막에 수양대군이 외정(外庭)에서 임금이 [[경복궁 강녕전|강녕전]]에서 훙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뒤이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세종이 승하때보다도 더 컸다는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문종실록|한국어 위키백과 : 문종실록]]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4787&cid=46622&categoryId=46622|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문종실록]]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95542&cid=40942&categoryId=33383|두산백과 : 문종실록]] [각주] [[분류:조선왕조실록]][[분류:문종(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