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문이정.png]] 文履禎 ([[창씨개명]]: 北原文剛) 1910년(?)[* 1969년 사망 당시 기사에서 59세로 표기하였는데 [[만 나이]]/[[세는나이]] 여부에 따라 오차가 있다.] ~ 1969년 3월 6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군인. [[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군 부분에 등재되었다. == 생애 == 1936년 [[봉천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 제5기로 졸업했다.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하여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후에 만주국군 제6관구 보병 제7단(연대)으로 전출되어 상위([[대위]])로 진급했고 1945년 8월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받은 [[군번]]이 7번(10007)이다. 후에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그의 만주군 기수 중 장군으로 진급하지 못한 유일한 인물이며, 몇 차례 병력이 있었고 화를 잘내고 무례하다는 평가가 있다. 1969년 영하의 추운 날씨에 서울 거리에서 비참하게 [[동사#s-3|동사(凍死)]]했다. 당시 소지품은 도장과 단돈 30원뿐이었다고 한다. 당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90313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9-03-13&officeId=00020&pageNo=7&printNo=14590&publishType=00020|거리에 숨진 군번 7번]]" 기사에 따르면 중령에서 예편한 후 대전에 거주하면서 고질병과 가난에 시달렸고, 서울 동생 집에 간다고 집을 나선 후 서울 종로 유흥가 뒷골목에 쓰러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해 행려병 환자로 여겨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튿날 숨졌다고 한다. [[분류:만주군/조선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간도특설대 출신]][[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전신 학교]][[분류:196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