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역사)] ||<-3> {{{+2 {{{#ECE5B6 '''주[br]周'''}}}}}} || ||<-3> [[파일:Tang dynasty.gif|width=100%]][* 정확히는 8세기경의 당나라 강역. [[서역]]을 빼앗긴 것을 제외하면 당나라 초중기의 강역과 거의 같다.] || ||<-3> '''{{{#ECE5B6 690년 ~ 705년}}}''' || ||<-2><#000><:> '''{{{#ECE5B6 성립 이전}}}''' ||<#000><:> '''{{{#ECE5B6 멸망 이후}}}''' || ||<-3><#A48252><:> [[당나라|{{{#ECE5B6 '''당'''}}}]] || ||<:>'''{{{#ECE5B6 별칭}}}'''||<-2>'''무주'''(武周) || ||<:>'''{{{#ECE5B6 위치}}}'''||<-2>[[중국]] || ||<:>'''[[수도(행정구역)|{{{#ECE5B6 수도}}}]]'''||<-2>[[뤄양시|낙양(洛陽)]], [[시안시|장안(長安)]][* 낙양은 신도(神都)라는 명칭으로 정도였으며 장안은 낙양 수도일때도 배도(陪都)로서 기능했다.] || ||<:>'''{{{#ECE5B6 국성}}}'''||<-2>[[무(성씨)|무(武)]] || ||<:>'''{{{#ECE5B6 국가원수}}}'''||<-2>[[황제]] || ||<:>'''{{{#ECE5B6 황제}}}'''||<-2>[[측천무후]] || ||<:>'''{{{#ECE5B6 언어}}}'''||<-2>[[중고한어|중세 중국어]] || ||<:>'''{{{#ECE5B6 문자}}}'''||<-2>[[한자]] || ||<:>'''{{{#ECE5B6 종교}}}'''||<-2>[[대승 불교]], [[도교]], [[유교]], [[마니교]], [[경교]] || ||<:>'''{{{#ECE5B6 종족}}}'''||<-2>[[선비족]], [[한족]] || ||<:>'''{{{#ECE5B6 통화}}}'''||<-2>불명[* 당나라와 같은 개원통보(開元通寶)였을수도 있다.]|| ||<:>'''{{{#ECE5B6 현재 국가}}}'''||<-2>[[중국]] || [목차] [clearfix] == 개요 == '''武周'''(690 ~ 705) [[중세]] [[중국]]의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집권시기에 건국한 [[왕조]]. [[당나라|당]]의 [[황후]] [[측천무후]]가 '''[[중국사]] 최초의 유일무이한 [[여제]]'''로 즉위하여 건국한 국가이다. 국호를 [[주나라|주(周)]]라고 정하였으나, 훗날 [[서주]], [[동주]], [[북주]], [[후주]] 등 여러 주왕조와 구별하기 위해 그의 성을 따 무주라고 흔히 부른다. == 역사 == 690년 9월 9일, [[중양절]]을 기해 [[당나라|당]]의 황후 [[측천무후]]가 [[여인천하|중국의 여황제로 즉위하여 창건하였다]]. 측천무후는 15년간 주나라의 황제로서 [[중국 대륙]]을 통치했으며, 당시는 [[여성]]이 본인의 자식에게 일반적으로는 [[성씨]]를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무씨라는 성씨를 유지하기 위해 자식 대신 [[조카|친조카]]들 [[무승사]], [[무삼사]]에게 [[세습]]을 고려하기까지 하였으나 [[적인걸]] 등 당의 구신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당고종]]과 자신의 아들 [[당중종]]을 [[황태자]]로 정하여 무씨 왕조로의 세습을 사실상 포기한다. [[신룡정변]]으로 그녀가 퇴위하고 나서, 당중종이 [[복벽]]됨에 따라 무주왕조는 '''1대'''로 [[멸망]]하고 다시 당 왕조로 복고했다. == 역사적 평가 == 실질적으로 당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었으며, 후계자도 측천무후와 당 고종의 자식들이라 사실상 당 혈통. 무엇보다도 얼마 안 가 측천무후가 퇴위했기 때문에, 별개의 정통왕조로 보지 않기도 한다. 보통 독립된 왕조라기보다는 [[왕망]]의 [[신나라]]처럼 '당나라' 시기 잠깐 국명이 바뀐 정도로 취급받는다. 기존 통일왕조의 중간에 들어선 왕조이지만 정통왕조로 취급하지 않는 셈 쳤다는 점에서는 [[왕망]]이 세운 [[신나라#s-3]]와도 비슷하다. 신나라는 [[한나라#s-3.2]]의 중간 [[전한]]을 대체시키고 들어섰다가 [[후한]]에 멸망했고 전근대 역사가들이 따로 독립된 왕조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주와 비슷하다. 측천무후의 정치는 오늘날 [[재평가]]가 이뤄져 긍정적 측면도 부각되고 있다는 점도 왕망의 신나라와 유사하다. 반면 [[현한]], [[후한]]에 무력으로 타도된 신나라의 왕망은 [[끔살]]당하고 이후 신 왕조와 왕망은 전근대시대 [[망탁조의]]의 최초 [[역적]]으로써 멸칭되어 근현대의 재평가까지 철저히 부정당했으나 측천무후는 전 왕조 당의 황후 및 [[황태후]]에서 폐위된 것이 아니라 다시 당나라 [[황족]] 출신인 자신의 아들들에게 반강제적으로나마 제위를 계승시켜 그녀의 후예들로 이어졌기 때문에 비록 무주 왕조는 부정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으로 황제에 즉위하여 부군과 아들의 왕조를 멸망시키고 신왕조를 창립한 측천무후 역시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어도 당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당나라의 황후 측천무후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어 무후 자신은 당나라의 황태후로써 여생을 보내어 천수를 누릴 수 있었고 그녀의 지위 역시 인정받아 일정 대우를 받았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둘 다 원래 왕조의 넓은 의미에서 원래[* 즉 [[삼국지]]에서 [[동승(삼국지)|동승]] 및 [[복완]] 등 외척들이 본인을 상대로 연거푸 [[반란]]을 일으키자 아예 본인이 스스로 외척이 되어 이런 사태를 원천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조조]]가 [[딸]]들을 [[헌제]]의 [[후궁]]으로 들여서 반강제로 외척이 된 경우를 제외.] [[외척]]이기도 했다. 외척 출신으로써 [[한나라]]([[전한]])를 [[찬탈]]한 [[왕망]], [[북주]]에게서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개창한 [[수문제]]처럼 외척이 집권세력으로 신왕조를 건국했으나 [[중화제국]]의 장기왕조로 이어지진 못한 역사적 사례이다. == 기타 == 무주시기 쓰인 [[한자]]로 측천무후가 제정한 [[측천문자]]가 있다. 이후 측천문자는 당으로의 복귀와 더불어 거의 쓰이지 않게 된다. == [[한국사]]와의 관계 == 무주시대 당의 기미 통치가 무너졌고, 698년 [[요서]]의 영주[* 현 [[랴오닝성]]의 [[차오양]].]에서 동모산으로 이동한 [[고왕|대조영]]이 [[천문령 전투]]에서 당의 추격군을 격파하고 [[고구려부흥운동]]을 성공, [[발해]]를 건국하여 [[후기신라]]와 대치하여 [[남북국시대]]로 이어진다. == 황제 == === 역대 황제 === || 대수 || 묘호 || 시호 || 이름 || 연호 || 재위 기간 || || 1대 || - || 측천대성무상자씨천책월고금륜성신대황제[br](則天大聖無上慈氏天冊越古金輪聖神大皇帝)[br]측천순성황후(則天順聖皇后) || [[측천무후|무조]](武曌) ||천수(天授, 690년 ~ 692년)[br]여의(如意, 692년)[br]장수(長壽, 692년 ~ 694년)[br]연재(延載, 694년)[br]증성(證聖, 695년)[br]천책만세(天冊萬歲, 695년)[br]만세등봉(萬歲登封, 695년 ~ 696년)[br]만세통천(萬歲通天, 696년 ~ 697년)[br]신공(神功, 697년)[br]성력(聖歷, 698년 ~ 700년)[br]구시(久視, 700년 ~ 701년)[br]대족(大足, 701년)[br]장안(長安, 701년 ~ 705년)[br]신룡(神龍, 705년) || 690년 ~ 705년 || || 2대 || - || - || [[중종(당)|이현]] || - || 705년 || 형식상으로는 직접 무주를 없앤게 아니라 먼저 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며칠 뒤 당나라 국호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이현은 며칠이나마 무주의 황제로 지냈다. '''희한하게도 한 사람이 두 왕조의 황제가 된 셈이다.''' === 추존 황제 === || 묘호 || 시호 || 이름 || 비고 || || - || 제성황제(齊聖皇帝) || [[계왕(하나라)|계]](啓) || 무조 추숭, 하의 2대 군주 || || 시조(始祖) || 문황제(文皇帝) || 희창(姬昌) || 무조 추숭, [[주문왕]] || || 예조(睿祖) || 강황제(康皇帝) || [[예조(무주)|희예조]](姬睿祖) || 무조 추숭, 주평왕의 아들 || || 엄조(嚴祖) || 성황제(成皇帝) || 무극기(武克己) || 무조 추숭, 무조의 5대조 || || 숙조(肅祖) || 장경황제(章敬皇帝) || 무거상(武居常) || 무조 추숭, 무조의 고조부 || || 열조(烈祖) || 혼원소안황제(渾元昭安皇帝) || [[무검]](武儉) || 무조 추숭, 무조의 증조부 || || 현조(顯祖) || 입극문목황제(立極文穆皇帝) || [[무화(무주)|무화]](武華) || 무조 추숭, 무조의 조부 || || 태조(太祖) || 무상효명고황제(無上孝明高皇帝) || [[무사확]](武士彠) || 무조 추숭, 무조의 부친 || === 추존 황제 (비황족) === || 묘호 || 시호 || 이름 || 비고 || || - || 신악천중황제(神嶽天中皇帝) || [[중악대제]](中嶽大帝) || 무조 추숭, 도교의 신 || == 대중매체에서의 무주 == 사실 690-705년 사이의 당나라는 잠깐 사라지고 '무주' 시대이므로,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 한국 사극 등에서 측천무후 재위기를 다룬다면 무주 시대를 다룬 것이지만, 매체들 대다수에서는 기존의 당나라와 별다른 차별점을 두지 않고 그냥 '당나라'로 퉁친다. [[무미랑전기]] 등, 중국 사극들도 그냥 '당나라'를 다룬 사극 취급받는게 현실. 애초에 존속 기간이 15년에 불과하므로 측천무후 본인을 포함한 이 시기 인물들의 일대기를 다루면 결국 당나라로 시작해서 당나라로 끝나니 틀린 말도 아니다. === [[호텔 델루나]]의 무주국 === 호텔 델루나의 주인공 장만월([[아이유|이지은]])은 1000년전 [[고구려|고구려]] 유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도적패 가오리촌의 일원이었다. 고구려 [[귀족]]의 후손이었지만 현재는 무주국 변방 영주성의 무장인 고청명이 호위하던 행렬을 가오리촌이라는 도적단이 습격한다. 고청명은 가오리촌의 일원인 장만월에게 매혹당한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무주, version=10, title2=주나라, version2=10)] [[분류:수당시대]][[분류:8세기 멸망]][[분류:측천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