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15년/사건사고]][[분류:1917년/사건사고]][[분류:1918년/사건사고]][[분류:제1차 세계 대전/사건사고]] [include(틀:독일 제국 해군)] [include(틀:1차 세계대전의 전투 목록)] [[파일:Lusitania_warning.jpg]] >[[큐나드 라인|큐나드]] 대양 증기선 >[[리버풀]] 경유 유럽 행 노선 >'''[[RMS 루시타니아|루시타니아호]]''', 제일 빠르고 제일 큰 증기선이 5월 1일 토요일 오전 10시에 대서양 항해를 시작합니다. >---- >(선박시간표 생략)[* 시간표에 있는 카르파티아호 역시 큐나드 소속 여객선으로, [[타이타닉]]호의 침몰현장에 최초로 도달한 선박이기도 하다. 1918년 7월 17일 아일랜드 연안에서 U-55에 의해 격침.] >---- >'''경고!''' >대서양을 항해하는 선박에 승선하려는 여행자들에게 [[동맹국|독일과 그 동맹국]]이 [[협상국|영국과 그 동맹국]]들 상대로 전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림. 전쟁지역에는 브리튼 제도에서 가까운 지역도 있음. [[독일 제국]] 정부의 통보에 따라, 영국이나 그 동맹국들의 깃발을 게양한 선박이 해당 해역에서 격침되었을 시 책임은 당사자들에게 있음. 영국과 그 동맹국의 선박을 타고 전투지역을 항해하는 여행자들 역시 각자에게 책임이 있음. >독일 제국 [[대사관]] >1915년 4월 22일, [[워싱턴 D.C.]] [목차] == 개요 == 독일어: Der uneingeschränkte U-Boot-Krieg 영어: Unrestricted Submarine Warfare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 2월부터 [[독일 제국]]이 [[영국]]의 [[해상봉쇄]]를 뚫고 무역난을 극복하고자 선택한 군사적 정책이다. 말 그대로 [[유보트]]를 있는 대로 무제한 출격시켜 [[상선]]과 [[군함]]을 격침시킨다는 내용인데, 문제는 [[협상국]]의 배뿐만 아니라 [[중립국]]의 배까지도 그 대상에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즉, 종류와 국적에 상관없이 협상국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든''' 함선을 경고 없이 격침시키겠다는 의미다. == 전개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무제한 잠수함 작전.png|width=100%]]}}}|| || [[U보트]]로 인한 격침이 일어난 지역. || 이는 당시 독일의 사정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이며, 결국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1915년 5월 7일, 루시타니아호를 격침시켜 [[미국]]을 격분케 하는 사태까지 이르고 만다. 당시 루시타니아호에 타고 있던 미국의 민간인 128명이 사망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은 극대노했고 미국 내 여론도 반독여론이 매우 드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했다는 인식과는 달리, 독일은 급히 미국에게 사과하고 배상하였으며 심지어 잠시나마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중단하기까지 이른다. 독일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미국도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 여파 ==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비록 뻘짓이지만, 그 여파는 엄청났다. 이로 인해 대영제국은 막대한 물적 손실을 입었으며, 수십만 톤에 이르는 상선들과 전함, [[구축함]], [[순양함]] 등을 유보트에 의해서 잃는다.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았던 대영제국의 제해권이 위협받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영불해협과 북해인근을 돌아다녔던 유보트들은 숨어다니면서 수많은 영국 배들을 사냥했고, 영국은 심지어 브리튼 섬 안에서 그대로 말라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다. 그러나 영국도 바보는 아닌지라 나중에는 [[호위함]], [[구축함]] 등의 보조함을 투입해 피해를 줄여나갔고, 유보트 출몰지역에 [[기뢰]]를 설치하고 기초적인 [[음탐]]기술을 이용해서 미리 잠수함을 피해다니거나 아예 잠수함을 사냥하기도 했다. == 그 이후 == 루시타니아호 사건 이후로 잠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중지하자 곧장 영국은 다시 독일에 대한 해상봉쇄를 더욱 강화한다. 결국 참다 못한 독일은 1917년 2월 1일 다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한다. 이번에도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였고, 1917년 한 해에만 100만 톤이 넘는 영국의 배들을 격침시킨다. 특히 4월에는 연합군 선박 865,000톤을 침몰시키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뒀는데, 이는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존 젤리코]]가 '''"우리가 전쟁에서 지고 있다"'''고 인정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고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1917년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독일 제국의 최후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선 영국도 기뢰와 소나, 보조함으로 피해를 최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1918년에는 세계최초로 [[항공모함]]까지 개발해냈고 결정적으로 유보트가 또 미국의 상선을 침몰시키면서 드디어 마침내, 미국이 참전하고 만 것이다. 1917년 3월 1일, [[치머만 전보]]가 공개된다. 독일 제국의 외무장관인 아르투어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낸 비밀 전보문을 말한다. 이 전보문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에게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제안하라는 지시 문건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는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결국 1917년 4월 6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미국은 독일에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한다. 그리고 이후 '''1년 7개월 5일''' 만에 독일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 결론 == 분명히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꽤나 효율적이었고, 영국에게 굉장한 타격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독일도 그 길을 선택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상황이 나빴을 때는 영국 본토에 불과 몇 주밖에 버틸 수 없는 물자만 해운을 통해 비축, 잘못하면 그야말로 나라가 고사할 뻔했다. 하지만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중립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에게 어그로를 끌면서 분노하게 했고, 결국 '''그 어느 나라의 편도 들지 않던 [[중립국]]들까지 독일에게 모두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나라들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고, 결론적으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독일 제국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는 꼴이 된 것이다. 여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외무부 장관 및 재무부 장관이었고, 당시 독일에 외교관으로 가 있던 부리안 이슈트반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대해서 미국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며 반대했는데, 정말 그의 말대로 되었다. 게다가 일단 모든 문제를 제쳐두고,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계속 지속되었더라도 독일의 생각과는 달리 영국의 항복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작전 재개 이후 초기에는 확실히 영국을 위기에 몰아넣었고, 특히 1917년 4월에는 연합군 선박을 80만톤 넘게 격침시키는 등 무시무시한 성과를 거두긴 했지지만, 영국이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호위함을 이용해 호송대를 편성하면서 7월에는 60만, 8월 50만, 9월 35만톤으로 점차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실적과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부활? == 2023년 [[러시아 국방부]]에서 모스크바 시간으로 자정부터 흑해를 항해하는 모든 배들을 잠재적인 군사 화물 운반선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108년만에 [[독일 제국]]이 했던 치명적인 실수를 러시아가 재연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리고 다뉴브강 루마니아 영해 코앞까지 폭격을 하면서 긴장이 최고조 다르고 있다. == 대중매체 == 독일제국이 1차대전에서 승리한 대체역사 세계관인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루시타니아 호 격침까지는 똑같이 흘러가지만 1917년 무제한 잠수함 작전재개는 최종적으로 거부된다. 대신 [[순무의 겨울|해상봉쇄로 굶주리는 독일]] 아동들을 활용한 프로파간다가 이루어졌고, 이에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구호물자를 실은 선박을 독일로 보냈으나 이를 영국 잠수함이 격침시키는 사건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대중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독일에 대한 해상봉쇄를 중단했으며, 피해자인 미국은 1차대전에 개입하지 않게 된다. 한편 U 보트에 대해 성공적으로 연합군이 대처하게 되어 독일제국이 답이 없어지자 결국 전 함대를 다 때려박아넣어서, 유틀란트에서 영독 양측은 다시, 최대 규모의 혈투를 벌이게 되고, 영국이 전투에서는 승리했으나 양 측 모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게 되어 영국은 결국 해상봉쇄를 완전히 포기하게 되고, 뒤이어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의 곡식들을 육로와 해로를 모두 거쳐 안정적으로 갖다 먹을 수 있게 된 독일 제국으로 전세가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