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일본 외무대신)] ---- ||<-2> {{{#fff '''일본 제국 제10대 외무대신[br]{{{+1 무쓰 무네미쓰}}}[br]陸奧宗光 | Mutsu Munemitsu''' }}}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Mutsu_Munemitsu.jpg|width=100%]]}}} || ||<|2> '''출생''' ||[[1844년]] [[8월 20일]] || ||[[기이]]국 나구사군 (現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 ||<|2> '''사망''' ||[[1897년]] [[8월 24일]] (향년 53세) || ||도쿄부 기타도시마군 다키노가와촌 (現 [[도쿄도]] [[기타구(도쿄도)|기타구]]) || ||<|8> '''재임기간''' ||제4대 효고현지사 || ||[[1869년]] [[7월 28일]] ~ 1869년 [[8월 24일]] || ||제3대 가나가와현지사 || ||[[1871년]] [[10월 5일]] ~ [[1872년]] [[8월 17일]] || ||제6대 농상무대신 || ||[[1890년]] [[5월 17일]] ~ [[1892년]] [[3월 14일]] || ||제10대 외무대신 || ||1892년 [[8월 8일]] ~ [[1896년]] [[5월 30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통칭''' ||요노스케(陽之助) 다테 고지로(伊達小次郎) || || '''아명''' ||우시마로(牛麿) || || '''부모''' ||부 다테 무네히로 모 마사코 || || '''배우자''' ||전처 렌코 {{{-2 (? ~ 1872년)}}} 후처 료코 {{{-2 (1872년 ~ 1897년)}}} || || '''자녀''' ||장남 히로키치 차남 후루카와 준키치 장녀 기요코 차녀 후유코 || || '''학력''' ||고베 해군조련소 {{{-2 (해체)}}}[* [[이케다야 사건]]의 여파로 해체되었다. 사건 당시 존왕지사 측에 [[도사 번]] 출신 교육생이었던 모치즈키 가메야타가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여담으로 무쓰는 이곳에서 [[사카모토 료마]]를 처음 만났다. ] || || '''작위''' ||[[백작]] || || '''정당''' ||[include(틀:무소속)] || || '''지역구''' ||[[와카야마현 제1구|舊 와카야마 제1구]] || || '''의원 선수''' ||'''1''' (중) || || '''의원 대수''' ||[[제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1]] || || '''위계''' ||'''정2위'''(正二位) || || '''약력''' ||해원대 대원 외국사무국 어용계 제4대 효고현지사 제3대 가나가와현지사 지조개정국장 주미일본공사 겸 주멕시코일본공사 제6대 농상무대신 초대 중의원 의원 원로원 의관 제10대 외무대신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기슈번]](지금의 [[와카야마현]])출신으로, [[사카모토 료마]]의 해원대(海援隊)에 참가하여 행동을 함께 했다. 메이지 시대엔 [[이토 히로부미]] 등과 함께 내각의 중추로서 활동하였다. 불평등 조약의 개정에 힘을 쏟는 한편, [[청일전쟁]]을 외무장관으로서 주도하였다. [[삼국간섭]]이 터지자 만약 지금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게 개겼다간 요동은 고사하고 대만이고 뭐고 청일전쟁의 전리품들이 다 날아갈 수 있으니 군말없이 수용하여 분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일본에 의한 국권 피탈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병사한 인물이다보니 이토 히로부미에 비해 한국에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실제 일본에서 만든 역사물에서는 조선침략에 대해서 이토 히로부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다. 드라마 '언덕위의 구름'에선 당시 수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를 두려워하여 조선파병을 미루려하자, 그를 부추겨 조선파병을 하도록 한 인물로 등장하고, 만화 '[[왕도의 개]]'에서는 아예 청나라, 조선침략의 최종흑막으로 등장한다.(이토 히로부미는 1권에서 [[로쿠메이칸]] 외교로 까이는 쩌리.) == 여담 ==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살해에 무쓰 무네미쓰와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 3명이 배후에서 개입했다'''는 증거가 공개되었다.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060605/8314561/1|기사 링크]]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42338054|책 링크]] 또한, 일본 역사 월간지 역사독본(歴史読本)에 위 내용을 뒷받침하는 글이 실렸던 적이 있는데, 사카모토 료마의 스승이자 막부 해군경이기도 했던 [[카츠 카이슈]](勝海舟)가 쓴 편지에 무쓰 무네미쓰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실려있다는 내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쓰 무네미쓰는 사카모토 료마의 후배이자 부하였고, 카츠 카이슈는 사마모토 료마의 스승이다.] 원래 성은 다테(伊達)로, '무쓰'는 일본 동북 지방(정확히는 아오모리 현 전체와 이와테 현 북부)을 가리키는 말. [[만화]] 《[[수라의 각]]》에서는 사카모토 료마가 무쓰 이즈미에 관해 해준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아 성을 무쓰로 고쳤다고 각색하였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에서는 '다테'라는 성을 쓰면 자신의 출신이 드러나기 때문에 자신의 출신을 숨기기 위해 성을 고쳤다고 묘사되어 있다. 다테 가문의 분가인 스루가 다테 가문의 분가 기슈 다테 가문 출신으로, [[다테 마사무네]] 등 다테 종가와는 12세기에 갈라진 아주 먼 친척이라 사실상 남남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의 부인인 무쓰 료코는 미인으로 유명했는데 남편과 함께 사교계에서 활약하면서 민간 외교관 노릇을 했다. == 매체에서 == 만화 《[[은혼]]》의 등장인물 [[무츠(은혼)|무츠]]의 원형이기도 하다. 속된 말로 일본 근현대사에서 유일하게 부끄럼 없이 자랑스러워 할수 있다고 '''일본인 스스로는 생각하는''' 시대를 이끈 인물인데다 그 사카모토 료마의 부하였다는 이유로 일본 내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 [[왕도의 개]]처럼 본질적인 문제부터 비판하고 들어가는 작품이 아니면 언제나 나름 괜찮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파일:external/www.kjclub.com/oudou02.jpg]] > 허나 잊지 마라! > 이 무쓰 한 사람을 벤다 한들, 이제 와서 [[제국주의|일본이 갈 길]]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 코무라[* 코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 1855~1911)]가! [[하라 타카시|하라]]가![* 하지만 역사에서는 하라 타카시는 문민통제와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인해 무쓰 무네미쓰와 달리 정 반대로 행동했다.] > 내가 가르친 이들이 계속해서 뒤를 이을 것이다! -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왕도의 개]]에서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왕도의 개]]에서는 꽤 부정적으로 나온다. 김옥균의 암살을 유도하여 청나라와의 전쟁 여론을 이끌어내고, [[동학농민운동]]에 무기를 제공하고 청나라를 유인해 전쟁을 벌인다. 이때, 덴노를 무시하고 [[청일전쟁]] 이끌고 이모저모 활약하다가 [[메이지 덴노]]에게 '''"이게 짐의 전쟁이라고? 그대들의 전쟁이 아니던가?"'''라는 쓴소리(이것도 실화)를 듣는다. 이 만화에 나온 무쓰와 덴노의 갈등이라든지 여러 모로 나온게 실제 역사와 일치하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이르면 병으로 죽어가는데[* 실제 무츠 본인도 [[결핵|폐결핵]]으로 사망.] 강한 일본을 만든다고 자부하지만 주인공 카노 슈스케는 너 같은 놈 때문에 우리 일본이 전쟁으로 미쳐돌아간다며[* 이게 바로 카노의 그 유명한 대사인 "[[삼국간섭]]은 그대와 그대의 망국적 외교가 불러온 것, [[갑신정변|김옥균을 사지로 내몰고]], [[청일전쟁|청나라를 상대로 의롭지 못한 전쟁을 벌였으며]] 과다한 영토를 요구하고, [[을사조약|독립 보호라는 미명하에]] [[한일병합|조선을 지배하에 둠으로써]] '''[[반일|일본에 대한 증오]]가 양국 민중 마음 속에 뿌리내리게 했으니, [[제국주의|그대가]] [[군국주의|가는 길은]] [[파시즘|왕도를]] [[폭주|벗어났으며]], [[태평양 전쟁|일본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망하게]] [[옥음방송|할 것]]'''이라 이 말이오!"이다.] 그를 죽이려 하다가 되려 애증어린 친구인 카자마(그는 반대로 무츠를 따르고 있었기에 칼들고 싸우다가)가 죽고 만다. 이를 본 무쓰는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나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머지않아 죽는데 왜 앞길 쟁쟁한 젊은이를 죽였나..."라고 하는데 온갖 전쟁을 조종하고 기세좋던 그가 병으로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본 카노는 물러선다. 그리고 역사대로 얼마 안 가 병사한다. [[KBS]] 드라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는 배우 강태기[* [[용의 눈물]]에서 야은 [[길재]]를 맡은 배우이다. [[태조 왕건]]에서는 환각에 시달리던 [[궁예(태조 왕건)|궁예]]가 마신 약을 지은 도인과 [[견훤(태조 왕건)|견훤]]이 유폐되어 있을 당시의 [[금산사]]의 주지승으로 등장했다. 또한 1983년작 [[TV 문학관]] [[벙어리 삼룡이]]의 인간 말종 주인집 아들과 연극 에쿠우스에서 1대 주연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3년 3월 12일에 향년 63세로 사망한 채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가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온건개화파의 거두였던 [[김홍집]]과 1인 2역을 맡았다. [[NHK]] 드라마 [[료마전]]에서는 주인공 사카모토 료마 옆에서 돕는 훈훈한 청년으로 나온다. 작품 내내 이국(異國, 즉 다른 나라)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 바꿔야한다고 하는 료마의 말에 찬성하면서 그의 부하로서 열일한다. [[분류:일본 제국 외무대신]][[분류:일본 농림수산대신]][[분류:제1대 일본 중의원 의원]][[분류:일본의 백작]][[분류:1844년 출생]][[분류:1897년 사망]][[분류:와카야마시 출신 인물]][[분류:결핵으로 죽은 인물]][[분류:다테 가문]][[분류:에도 시대/인물]][[분류:가나가와현지사]][[분류:효고현지사]][[분류:정2위]][[분류:도쿠가와 가문 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