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백제의 제후 및 비정통 국왕)] ||||<:><#191970> '''{{{#white 광위장군(廣威將軍) 면중후(面中侯) 목간나}}}''' || ||<#191970> '''{{{#white 작위}}}''' ||<(> 면중후(面中侯) || ||<:><#191970> '''{{{#white 직위}}}''' ||<(> 광위장군(廣威將軍) || ||<:><#191970> '''{{{#white 가문}}}''' ||<(> [[대성팔족]] 중 목씨(木氏) || ||<:><#191970> '''{{{#white 성씨}}}''' ||<(> 목(木) || ||<:><#191970> '''{{{#white 이름}}}''' ||<(> 간나(干那) || ||<:><#191970> '''{{{#white 생몰연도}}}''' ||<(> ? ~ ? || [목차] [clearfix] == 개요 == [[백제]] 왕조의 제후. 백제 면중(面中) 지역을 분봉 받았다. 제24대 [[동성왕]] 시대의 [[후작]]이다. 백제의 유명한 [[대성팔족]] 목씨 귀족 출신. 참고로 백제의 목씨는 [[근초고왕]] 대 한반도 중남부 정벌을 주도하며 세력을 확대했으며 이후로도 정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생애 == === 남제서 기록 === 목간나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한국의 사서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 등장한다. 목간나는 목씨 귀족이고 분명히 백제의 뛰어난 장수였을 것이다. 또한 면중의 후작이었던 만큼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줬겠지만 아쉽게도 매우 단편적 기록 밖에 없다. === 북위를 무찌르다 === 서기 [[490년]] [[북위]]가 백제를 침공하자[* 이에 대해선 [[동성왕]] 항목 참조.] 목간나는 동성왕의 명을 받아 [[사법명]], [[찬수류]], [[해예곤]]와 함께 북위군을 대파했다. 네 장군 중 가장 큰 전공을 세운 듯 하다. 목간나만 추가적인 설명이 붙어있다. 전쟁 이전 젊은 나이에도 이미 군공이 있었다고 하며, 북위와 전쟁 중, 북위군의 누선을 크게 격파했다고 돼 있다. 또한 북위 '해군'을 괴멸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는 걸 보아 북위군은 해로를 통해 침공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 [[제후]]에 봉해지다 === 백제의 [[동성왕]]은 [[천자]](天子)처럼 종실 및 [[공신]]에게 작위를 하사해 분봉(分封)을 실시했다. 하지만 [[남제]] 등 중국 왕조들에겐 제후국을 자처했음으로 그들에게 백제가 내린 [[작위]]를 인정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즉 '내가 내린건 임시로 한거니까 님이 허락 해주셈!' 같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작위를 봉했다. 그리하여 목간나는 ''''광위장군 면중후(廣威將軍 面中侯)''''의 관작을 제수받았다. ==== 관작의 의미 ==== 광위(廣威)은 '널리 위엄을 떨치다'란 의미. 면중은 구 [[마한]] 지역, 즉 현 [[전라도]] 일대의 지역명이다. '널리 위엄을 펼친 장군'이자 '면중의 [[후작]]'인 셈. 도한왕(都漢王) 저근의 전 작위가 면중왕이었다. 저근의 시대엔 면중의 독립성이 매우 강해 왕작이 분봉됐지만 목간나의 시대엔 백제에 꽤나 흡수되 후작으로 내려간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동성왕이 이미 세력이 월등히 강한 [[대성팔족|목씨]]에게 왕작을 주기 싫었던 걸 수도. 그가 분봉받은 면중(面中) 지역은 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에 비정하는 설이 있는데, 조상뻘인 [[목라근자]]와 [[목만치]]처럼 백제 남부 경영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분류:몰년 미상]][[분류:백제의 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