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고구려 국상 )] * [[고구려/인물]] ||<#191970> '''{{{#white 관등 }}}''' ||||<:> '''우태(于台)''' || ||<:><#191970> '''{{{#white 직위}}}''' ||||<:> '''국상(國相)''' || ||<:><#191970> '''{{{#white 성씨}}}''' ||||<:> 명림(明臨) || ||<:><#191970> '''{{{#white 이름}}}''' ||||<:> 어수(於漱) || ||<:><#191970> '''{{{#white 생몰연도}}}''' ||||<:> ? ~ 254년 || [목차] == 개요 == [[고구려]]의 재상. 본래는 우태(于台) 벼슬을 지내다가 230년에 [[동천왕]] 때에 최고위직인 [[국상]](國相) [[고우루]]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국상이 되었다. 이후인 250년에는 [[중천왕]]이 명림어수로 하여금 내외의 병마(兵馬) 업무를 겸하여 맡아보게 하였다.[* 때문에 군사적으로도 제법 재능있는 인물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다시말해서 당시 고구려에서 최고위직이었던 국상 벼슬에다가 군사문제까지 관장할 정도로 강력한 권력자였다는 뜻이다.~~제2의 [[명림답부]]인가~~ 그러나 이후로 별다른 활약은 없었고(...) 254년에 죽었다. 명림어수가 죽은 이후에는 [[음우]]가 그의 뒤를 이어 국상 벼슬을 지내었다. 한편 초대 국상인 [[명림답부]]와 성씨가 같아서 그의 친족이나 후손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 대중매체에서 == [[삵의 발톱]]에서는 고우루가 암살당한 후 국상이 되면서 조정 내부의 일을 수습하고 [[사마의]]가 보낸 첩자를 색출했으며, 주율이 천거한 예화와 함께 내부의 일에 대해 상의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각주] [[분류:고구려의 국상]] [[분류:25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