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멜루스[br](Melus)|| || '''출생''' ||미상|| || '''사망''' ||[[1020년]] [[4월 23일]]|| || '''직위''' ||[[바리(이탈리아)|바리]]의 [[귀족]]|| || '''반란 대상''' ||[[바실리오스 2세]]||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왕조]]의 반란자. [[노르만족]]과 연합하여 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서 한때는 남이탈리아에서 제국을 축출하는 듯했지만, 1018년 [[칸나이 전투#s-8]]에서 참패하면서 진압당했다. == 생애 == [[풀리아]] 지방 [[바리(이탈리아)|바리]] 출신의 [[랑고바르드]] [[귀족]]. [[1009년]] [[처남]] 다투스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바리를 공략한 뒤 여세를 몰아 아스콜리와 트로이아를 석권했다. 그러나 1010년 [[이탈리아]] [[총독]] 바실리오스 메사르도니테스가 대대적으로 반격을 가하면서 1011년 6월 11일 바리를 상실했다. 그는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은거했다가, [[동로마 제국]]을 적대하던 [[교황]] [[베네딕토 8세]]의 도움으로 가릴리아노 요새에 근거지를 세웠다. [[1016년]], 몬테 가르가노의 성 미카엘 성당으로 가서 [[노르만]] 용병대장 라눌프 드렝고(Rainulf Drengot)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원하면서, 풍부한 전리품을 약속했다. [[1017년]], 라눌프와 노르만 용병대는 [[카푸아]]에서 멜루스 휘하의 랑고바르드군과 합세한 뒤 풀리아로 진격했다. 이후 [[1018년]] 10월까지 풀리아 전역을 석권하며 동로마 제국을 남이탈리아에서 축출하는 듯했다. 그러던 1018년 10월, [[바실리오스 2세]]로부터 [[바랑인 친위대]]와 막대한 군자금을 지원받은 이탈리아 총독 바실리오스 보이안네스는 군대를 일으켜 그 옛날의 [[포에니 전쟁]]의 주요 전투와 같은 장소의 [[칸나이 전투(1018년)|칸나이에서]] 랑고바르드-노르만 연합군과 맞붙었다. 결과는 동로마군의 압승이었고, 그는 아내와 아들 [[아르이로스]]를 비롯한 모든 가족과 병력, 세력 기반을 모조리 빼앗기고 독일로 망명했다. 그는 밤베르크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2세]]와 만나 동로마 제국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했으나, 1020년 4월 23일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분류:동로마 제국의 인물]][[분류:풀리아 주 출신 인물]][[분류:이탈리아의 귀족]][[분류:102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