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스페인의 세계유산)] ||<-3>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4> 이름 || 한국어 || 메리다 고고 유적군 || || 영어 || Archaeological Ensemble of Mérida || || 스페인어 || Conjunto arqueológico de Mérida || || 프랑스어 || Ensemble archéologique de Mérida || |||| 국가·위치 || [[스페인]] [[카스티야|카스티야이레온]] 세고비아 || ||<-3> [include(틀:지도,장소=Teatro Romano de Mérida, 너비=100%, 높이=224px)]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3년]][* 2015년 부분수정] || |||| 등재기준 ||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 지정번호 || [[http://whc.unesco.org/en/list/664|664]] || ||||<#CE2B2B><:>{{{#gold {{{+3 메리다 [br] Mérida}}}}}}|| ||<-3><:> [include(틀:지도, 장소=Merida Badajoz, Mérida, 스페인)] || [[파일:메리다 4.jpg|width=510]] 시가지 서북쪽의 밀라그로스 (기적의) 수도교 [목차] == 개요 == [[스페인]] 서남부 [[엑스트레마두라]] 자치주의 도시. 주내 제3의 도시임에도 역사성으로 인해 주도로 유지되고 있다. [[바다호스]]에서 동쪽으로 40km, [[카세레스]]에서 남쪽으로 45km 떨어진 과디아나 강 동안에 위치한다. 현재는 인구 6만의 소도시지만, 고대와 중세 시기 스페인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다. 특히 [[로마 제국]]기 [[루시타니아]] 속주의 주도로 번영하였고, 따라서 스페인에서 가장 로마 유적이 많은 곳이다. 가장 유명한 반원 극장 및 원형극장, 경기장 (키르쿠스 / 히드포룸), 디아나 신전, 트라야누스 개선문, 목욕탕, 로마 시대 다리, 2개의 수도교 및 여러 가옥 터가 남아있다. 건물 자체로도 멋진 국립 로마 미술관과 구도심의 중세 건물들 역시 볼거리이다. [[안달루스]]의 첫 카사바 ([[시타델]])인 메리다의 알카사바와 한때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관장하는 대주교구청이던 산타 에울랄리아 성당 등이 있다.[* 히스파니아 대주교구는 1119년에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전된다] == 역사 == [[파일:메리다 고대.jpg]] 로마 시대 메리다의 재현 선사시대부터 마을이 있었고, 전통적으로 과디아나 강의 건널목이었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의 명으로 도시가 세워져 에메리타 아우구스타 (Emerita Augusta), 즉 황제의 퇴역병들이라 명명되었다. 현재의 지명은 에메리타가 변형된 형태이다. == 고대 == [[파일:메리다 2.jpg]] 이베리아 반도 최대 규모의 로마 극장 유적 [[파일:메리다 7.jpg]] 원형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는 디아나 신전 유적 지명처럼 메리다에는 제5군단과 10군단의 퇴역병들이 정착하였고, 따라서 빠르게 로마화가 진행되었다. 동시에 북쪽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금광과 이어지는 [[로마 가도]]가 놓였고, 이는 현재까지 비아 델라 플라타 (은의 길)이라 불리며 [[산티아고 순례길]]로 이어진다. [[히스파니아]] 지역에서 가장 로마다운 도시로써 메리다는 서부 이베리아 반도를 관할하는 [[루시타니아]] 속주의 주도가 되었다. [[팍스 로마나]]를 거치며 메리다는 히스파니아 최대의 도시이자 중심 도시가 되었고, 4세기에는 히스파니아 주교구의 치소가 되어 공식적으로 이베리아 반도 전역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서로마 제국]] 멸망기인 409년, 히스파니아에는 알란 / 반달 / 수에비 족이 유입되었다. 그중 알란족의 왕 아다크가 412년 메리다를 점령, 수도로 삼았으나 418년 서로마와 연합한 [[서고트]] 족의 왕 [[왈리아]]에 패하고 전사하였다.[* 이후 알란족은 반달족의 [[군데리크]]에 귀순하며 소멸된다] 이로써 메리다는 재차 로마령이 되었지만, 439년 히스파니 통일에 나선 [[수에비 왕국]]의 [[레칠라]] 대왕에게 점령되었다. 레칠라 역시 메리다를 사실상의 수도로 삼았지만, 448년 그가 사망한 후 계승한 아들 [[레치아르]]는 기존의 [[브라가]]를 수도로 정했다. 그러다 456년 말엽, 서로마 측 요청으로 개입한 서고트 군주 [[테오도리크 2세]]가 레치아르를 격파하고 메리다를 점령하였다. === 중세 === [[파일:메리다_5.jpg]] 로마 시대의 다리와 카스바 유적 [[파일:메리다-8.png]] 산타 에울랄리아 성당 이어진 [[서고트 왕국]] 하에서 메리다는 비록 수도는 아니었지만 종교적 중심이자 조폐 도시로 번영하였다. 713년 무사 빈 누사이르 휘하 [[우마이야 왕조]] 군에 점령된 후 [[후우마이야 왕조]] 하에서도 안달루스의 북부 방어를 위해 설치된 3개의 쿠라 (군관구) 중의 하나인 메리다 쿠라가 설치되어 중시되었다. 다만 종종 현지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805년과 829년의 대반란 후 835년 [[아브드 알 라흐만 2세]]가 안달루스의 첫 카스바를 메리다에 세웠다. 868년에는 [[갈리시아]] 계의 현지 호족 압둘라흐만 빈 마르완이 반란을 일으켰고, 기독교 세력과 연합한 끝에 884년 코르도바 정부로부터 알가르브 (안달루스 서부)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다만 그의 본거지는 그가 메리다에서 축출되었던 875년에 세운 신도시 바다호스였다.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 서부의 중심지는 점차 바다호스로 옮겨갔다. 비록 반세기 후인 930년 [[아브드 알 라흐만 3세]]가 일대를 수복해 재차 메리다 총독부를 두었지만, 후우마이야 조의 해체 후 1021년에 바다호스 후국이 세워지며 완전히 그에 가려졌다. 1230년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9세]]가 점령한 이래로 메리다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거점 중 하나가 되었고, 15세기 이래로 조금씩 재건되었다. 이어진 [[대항해시대]]에 소외되어 있던 엑스트레마두라 지역에서는 여러 [[콩키스타도르]]들이 배출되었고, 메리다에서도 2백여명이 인생 역전을 꿈꾸며 신대륙으로 향하였다. 그중 멕시코로 향한 이들의 영향으로 [[유카탄 반도]]에도 메리다라는 도시가 세워지게 되었다. === 근현대 === [[파일:메리다 1.jpg]] 현대의 시가지 전경 비록 19세기 초엽 [[이베리아 반도 전쟁]] 당시 프랑스 군에 의해 유적의 일부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19세기 후반에는 철도 교통의 요충지로 중시되었고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1838년 메리다에는 왕령으로 고고학 박물관이 세워졌고, 이는 1975년 국립 로마 미술 박물관으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른다. 1883년에는 과디아나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도 놓였다. [[스페인 내전]] 당시인 1936년 8월에는 공화파 민병대의 결사 항전에도 불구하고 [[프랑코 정권]]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러한 메리다 전투 후 프랑코 정권은 본격적으로 스페인 내륙부로 진격하였다. [[분류:스페인의 도시]][[분류:로마 유적]][[분류:스페인의 옛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