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모용선비/왕사)] 莫護跋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고대]]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 중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와 [[서진]]시대때 [[선비족]]의 수령. '''[[모용선비]] 및 모든 모용씨 [[연나라]]([[전연]], [[후연]], [[서연(오호십육국시대)|서연]], [[남연]], [[북연]])와 [[토욕혼]]의 시조'''였으며, [[모용목연]]의 [[아버지]]이자 [[모용외]]의 증조부였다. == 행적 == [[모용부]]를 세운 인물이지만 그가 부족을 건설할 당시에는 '''[[모용]]'''이라는 [[성씨]]를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모용씨는 그의 아들 모용목연의 이름에서 기원한 성씨로 추정되지만, 위서 선비전의 기록을 보면 모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인도 있다.] 막호발은 지속적으로 [[위(삼국시대)|조위]]를 공격하여 많은 위나라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조위는 막호발에게 '솔의왕'이라는 왕작을 주어 회유하려고 했으나, 막호발은 선비족들을 이끌고 조위의 [[요서]]를 정복하여 들어와 살았다. 238년, [[고구려]]군과 [[사마의]]의 조위군이 요동의 [[공손연]]을 협공할 때 같이 참전했다. 이후 대릉하 유역을 정복하여 근거지로 삼고, 주위의 선비족 집단을 거느렸다. 중국 사서의 기록에는 막호발이 보요관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그의 영토에 피지배층으로 있었던 [[한족]]들로부터 '''보요'''라고 불리게 되면서 뒤에 그 음이 와전되어 '''[[모용]]'''이 되었다거나, 하늘과 땅을 흠모하고 해, 달, 별의 용모를 계승했다고 해서 '''모용'''을 성씨로 삼게 되었다는 후대의 전설 등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모용'''은 [[몽골어족]]-[[투르크어족|튀르크어족]]의 원시 공동어 중 하나인 선비어와 가까운 [[튀르크어]]의 '''무렌''', [[몽골어]]의 '''[[바얀]]'''과 가까운 원음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 창작물에서의 막호발 == 소설 《[[삼국지 간신전]]》에서는 막족의 차기 족장으로 [[탁발부]]가 위나라를 공격하는 것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켜 탁발정을 붙잡았으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굴욕적이고 두렵더라도 살아야 한다면서 자신의 [[장발|긴 머리]]를 자르고 보요관을 썼다. 더 이상 막씨 성을 쓰지 않기로 하고 자신을 '호발'이라 했으며, 진유하가 부족 전부를 인질로 보내면 [[병주]]에서 목장을 지을 수 있게 해준다면서 [[삭주]]에서 유목민들을 견제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사성정책|진유하가 모용 성씨를 주어]] 모용호발이라 했는데, [[착각물|진유하는 막호발이 쓴 보요관이 모용관인 줄 알고 모용이라는 성씨를 준 것이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막호발은 성씨를 쓰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며, 막호발 자체가 이름이었으니 작중 설정이다. [[분류:모용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