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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000> '''{{{#393084 {{{+1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 || ||<-2><#393084> '''{{{#fff000 {{{+1 Pakhtakor Tashkent FK}}}}}}''' || ||<-3>{{{#!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zhgorod.in/maksim_shackih_davno_uzhe_nachal_zadumyvat_sya_o_smene_kluba_preview_medium.jpg|width=100%]]}}}|| ||<-1> {{{#393084,#393084 '''이름'''}}} || '''{{{+1 막심 샤츠키흐}}} [br] Maksim Shatskix''' || ||<-1> {{{#393084 ''' 본명 ''' }}} ||막심 알렉산드로비치 샤츠키흐[br]Maksim Aleksandrovich Shatskix[*우즈베크어][br]Макси́м Алекса́ндрович Ша́цких[*러시아어][* Maksim Aleksandrovich Shatskikh] || || '''{{{#393084 생년월일}}}''' ||[[1978년]] [[8월 30일]] ([age(1978-08-30)]세) || || '''{{{#393084 국적}}}'''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width=28]] [[우즈베키스탄]] |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width=28]] [[우크라이나]] || || '''{{{#393084 출신지}}}''' ||[[소련]]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우즈베크 SSR]] [[타슈켄트]] || || '''{{{#393084 신체}}}''' ||187cm || || '''{{{#393084 포지션}}}''' ||[[공격수]] || || '''{{{#393084 유소년팀}}}''' ||MHSK 타슈켄트 (1994) [br] 칠란자르 타슈켄트 (1995) || || '''{{{#393084 소속팀}}}''' ||소콜 사라토프 (1996) [br] 토르페도 볼슈키 (1996) [br] 라다 토길라티 (1997) [br] FC 소유즈-가즈프롬 이제프스크 (1998) [br] [[FC 발티카 칼리닌그라드]] (1999) [br]''' [[FC 디나모 키이우]] (1999~2009)''' [br] [[FC 아스타나|로코모티브 아스타나]] (2009) [br] [[FC 아르세날 키이우]] (2010~2013) [br] [[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 (2013) [br] [[FC 아르세날 키이우]] (2013) [br] FC 호베를라 우주호로드 (2014~2015) [br] 루흐 비니키 (2015~2016) || || '''{{{#393084 지도자 경력}}}''' ||[[FC 디나모 키이우]] (2016~2017 / ^^U-19 코치^^)[br][[FC 디나모 키이우]] (2017~2019 / ^^수석 코치^^)[br][[SC 로토르 볼고그라드]] (2019~2021 / ^^수석 코치^^)[br][[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 (2022 / ^^스포츠 디렉터^^)[br]'''[[파흐타코르 타슈켄트 FK]]''' (2022~ ) || || '''{{{#393084 국가대표}}}''' ||61경기 34골[*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선수였으나 2023년 [[엘도르 쇼무로도프]]가 36골을 기록하면서 넘어섰다.]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우즈베키스탄]] / 1999~2014)^^ || [목차] [clearfix] == 개요 == [[우즈베키스탄]]의 [[축구인]]. 러시아계 우즈베키스탄인으로, 우즈베키스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골을 넣은 선수이며, 아시아인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최다 득점자(11골)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록은 [[손흥민]]에 의해 깨졌다.] 한창 전성기 시절에는 '제2의 [[안드리 셰브첸코|셰브첸코]]'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특히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뛰면서 챔스 예선전 포함 69경기 23골, 본선 11골이라는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아시아 선수로는 챔스 역대 최다골(예선 포함시) 기록 보유자다. 또한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통산 124골로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다. 아시아 선수로는 유럽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스트라이커이다보니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만났을 때 항상 경계 대상 1호로 꼽히던 선수였다. 개인 커리어 통산 206골을 기록했다. == 클럽 == === 디나모 키이우 이전 === 1996년 소콜 사라토프에서 데뷔한 샤츠키흐는 평범한 공격수에 불과했다. 프로 데뷔골도 데뷔한 기간에 비해 좀 늦게 터졌고, 이렇다 할 득점 기록도 없었다. === 디나모 키이우 === 1999년 [[AC 밀란]]으로 떠난 [[안드리 솁첸코]]의 공백을 매꾸기 위해 샤츠키흐는 우크라이나의 [[FC 디나모 키이우]]로 영입된다. 첫 시즌인 1999-00 시즌,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이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공격수는 리그에서 25경기 20골을 작렬하며 득점왕을 수상해버렸다. 이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유럽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그에게 아시아의 솁첸코, 제 2의 솁첸코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후 첫 시즌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부진하다가 2002-03 시즌에는 리그 22골을 비롯하여 시즌 32골을 넣으며 2번째 리그 득점왕이 되었는데 이는 아시아 국적 선수가 넣은 유럽 1부 리그 리그 최다 골 기록이었다. 그가 이 때 넣은 아시아 국적으로 유럽 1부리그 리그 최다골 기록인 22골은 2011-12 시즌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 시리아 국적을 가진 산하리브 말키가 25골을 득점하면서 깨졌다. 그리고 2021-22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흥민]]이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23골로 공동 득점왕이 되면서 현재 이 기록은 3위가 되었다. 더불어, [[차범근]](1981-82 시즌부터 5회 연속 분데스리가 10골 이상 기록)에 이어 아시아 국적으로 유럽 리그에서 연속으로 리그 10골을 넣은 공동 2번째 아시아 선수(2002-03 시즌부터 3회 연속 10골 이상)이다. [[분데스리가]]에서 같은 시즌인 2002-03 시즌에 리그 10골, 다음 2003~04 시즌에 16골을 넣은 이란 선수 [[바히드 하셰미안]]이 공동 2번째이며 시리아 국적 선수인 산하리브 말키[* Sanharib Malki Sabah, 1984년생으로 [[시리아]] 태생이지만 기독교인으로 [[벨기에]] 국적도 있다. 시리아 국대선수로도 나왔으며 [[로다 JC]] 소속으로 아시아 국적 유럽리그 최다골을 넣었지만 이때가 최전성기였고 이후론 급격하게 하락하여 튀르키예 및 아랍 리그를 오고가다가 잊혀졌다. 한때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적 소식도 있었다.]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 2011-12 시즌에 25골[* 팀동료이던 [[루크 데 용]]과 같이 리그 득점 공동 2위이며 [[SC 헤이렌베인]] 소속이던 [[바스 도스트]]가 리그 32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왕이 되었다.], 2012-13 시즌에 17골을 득점해 3번째로 연속 리그 10골 이상 득점을 달성한 적이 있다. [[손흥민]]이 2012-13 시즌부터 3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에서 10골 이상을 넣어 차범근 다음으로 아시아 선수로는 4번째로 연속 리그 10골 득점 기록이며 이 다음 5번째로는 [[분데스리가]] 2013-14 시즌에 15골, 2014-15 시즌에 리그 12골을 넣은 [[오카자키 신지]], 공동 6번째로 2015-16 시즌에 네덜란드에서 리그 10골, 2016-17 시즌에 21골을 넣은 [[알리레자 자한바크슈]], 2015-16 시즌, 2016-17 시즌 각각 리그 11골씩 벨기에 리그에서 넣은 [[쿠보 유야]], 그리고 다시 [[손흥민]]이 2020-21 시즌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5회 연속으로 7번째로 10골 이상을 기록해 차범근과 동률이며 2022-23 시즌까지도 리그 10골을 넣으며 아시아 첫 유럽 리그 7시즌 연속 10골 기록 중이다. 이후로 [[이란]] 선수인 공동 8번째로 [[사르다르 아즈문]]과 [[메흐디 타레미]]가 2019-20, 2020-21 시즌까지 2회 연속 리그 10골 이상을 기록 중이다. 메흐디 타레미는 2021-22 시즌까지 리그 3회 연속 리그 10골 이상을 기록하며 차범근 - 막심 샤츠키흐 - 손흥민 다음으로 아시아 선수 4번째 3회 연속 유럽 리그 10골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타레미는 22-23시즌에도 10골 이상을 기록하여 4대회 연속 유럽리그 10골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손흥민 이후로 [[황의조]]가 아시아에서 9번째 기록인 2020-21 시즌과 2021-22 시즌에 프랑스 리그 1에서 두 시즌 연속 10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건 아시아 선수 [[프랑스]] [[리그 1]] 첫 기록이다. 유럽리그 아시아 득점왕 기록은 2016-17 시즌 [[알리레자 자한바크슈]]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 3번째로 기록했으며, [[사르다르 아즈문]]이 4번째로 2019-20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공동 득점왕이 되었다. [[메흐디 타레미]]는 2019-20 시즌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아시아 첫 공동 득점 1위을 기록했으나, 경기 출전시간이 더 길어서 공식 득점왕은 되지 못했으나 2022-23시즌에 단독 득점왕이 되었다. 뒤이어 [[손흥민]]이 5번째로 2021-22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공동 득점왕이 되었다. 샤츠키흐는 이후 2002-03 시즌 이후로는 득점왕을 차지할 만큼 활약하지는 못하고 리그에서 10골 정도 넣어주는 공격수가 되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서 샤츠키흐는 이때까지 총 11골을 넣었는데,[* 손흥민이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갱신하기전 아시아 최다 기록] 2002-03 시즌 뉴캐슬을 상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2006-07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트리는 등 챔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었다. 2008-09 시즌, 샤츠키흐는 무득점으로 부진에 시달렸고, 샤츠키흐가 잘 나갈 때 잔류 선언을 한 것과 다르게 디나모 키이우는 그를 토사구팽했다. 샤츠키흐는 이후 구단의 결정에 많이 실망했다고. === 디나모 키이우 이후 === 디나모에서 팽당한 샤츠키흐는 카자흐스탄의 신생 구단인 로코모티브 아스타나[* 現 [[FC 아스타나]]]로 이적한다. 그곳에서 리그 15경기 8골을 넣은 샤츠키흐는 2010년 아스날 키이우로 이적하며 다시 우크라이나 무대로 복귀했고, 3시즌간 활약한 뒤 2013년 초르노모레츠 오데사로 이적했다. 이후 잠시 아스날 키이우로 돌아온 샤츠키흐는 호베를라 우주호르드로 이적했고 2016년까지 루흐 비니키라는 아마추어 클럽에서 뛴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 국가대표 == [[1999년]]부터 [[2014년]]까지 61경기 34골을 기록했으며, 우즈베키스탄 역사상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였다. 메이저 대회로는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등에 참가했다. 2000년 아시안컵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전력이 전력이었던지라 본인은 무득점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에 1-8,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에 0-5로 대패하는 등 안 좋은 추억만 안고 귀국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어 승리 일보직전까지 갈 뻔했다. 이 경기는 박주영의 극적인 동점골로 1-1 무승부로 끝났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말레이시아전 멀티골을 포함해 총 3골을 넣어 우즈베키스탄의 8강 진출에 기여했으나, 8강전인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는 득점에 실패하면서 1-2로 패배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지역예선(아시아)|지역예선]]에서는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대만]]을 상대로 5골을 맹폭하는 등 우즈베키스탄의 최종예선행에 기여했다. 최종예선에서는 일본전에서 동점골을 넣는 등 나름 분전했으나, 조 최하위로 남아공행 티켓을 따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1년 아시안컵에서는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쿠웨이트전에서 득점을 했고, [[세르베르 제파로프]], [[알렉산데르 게인리흐]] 등 후배들과 함께 4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아시아)|지역예선]] 최종전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이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을 꺾었다면 월드컵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잘 알다시피 패배하였고, 그것이 원인이 되면서 우즈벡은 브라질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샤츠키흐는 2014년 5월 29일에 있었던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오만]]과의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 지도자 == 은퇴 이후,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2016년부터 친정팀인 디나모 키이우의 19세 이하 팀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다음 해에는 1군 코치로 올라갔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SC 로토르 볼고그라드에서 수석코치를 역임했으며, 2022년부터 우즈베키스탄의 파흐타코르 타슈켄트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 플레이 스타일 == 본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나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로도 활약할 수 있다. 187cm의 신장으로 포스트플레이에 능하며 피지컬이 좋은 편이다. 공간 침투에 의한 득점 역시 수준급이며, 프리킥을 전담할 정도로 킥력이 좋은 편이다. == 기타 == * 그의 4살 터울 형 올렉 샤츠키흐도 축구선수였다. 비록 1996년과 1997년에 2년 동안만 차출되었고 11경기 9골을 기록한 뒤 그 이후에는 아쉽게도 국가대표와 연을 맺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축구의 팬들에게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지역예선 당시에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등번호 20번)로 대한민국을 상대할 때 여러 번 얼굴을 비췄던 편. 1995년과 1996년에 우즈베키스탄 리그 득점왕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1995년에 우즈베키스탄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된 적이 있다. 200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 [[파일:olegshatskikh1997.jpg]] [[분류:1978년 출생]][[분류:1996년 데뷔]][[분류:2016년 은퇴]][[분류:우즈베키스탄의 남자 축구 선수]][[분류:타슈켄트 출신 인물]][[분류:공격수]][[분류:FC 발티카 칼리닌그라드/은퇴, 이적]][[분류:FC 디나모 키이우/은퇴, 이적]][[분류:FC 아스타나/은퇴, 이적]][[분류:FC 아르세날 키이우/은퇴, 이적]][[분류: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은퇴, 이적]][[분류:FC 호베를라 우주호로드/은퇴, 이적]][[분류: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분류:우즈베키스탄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참가 선수]][[분류: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참가 선수]][[분류: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