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손오의 인물, rd1=마충(손오))] [include(틀:촉서)] 馬忠 ?~249년 [목차] [clearfix]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의 장수이며 [[자(이름)|자]]는 덕신(德信)으로 익주 파서군 낭중현 사람이다. [[관우]]를 체포한 손오의 [[마충(손오)|마충]]과는 [[동명이인]]이인데다가 [[제갈량]]의 부하다. == [[삼국지(정사)|정사]] == [[왕평]]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 외가에 양육되어 [[본명]]은 호독이라고 했다. 장성하자 성을 마씨로 바꾸고 이름을 충이라고 개명했다.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출정했으나 [[이릉대전|이릉]]에서 [[육손]]의 화공으로 패배하자 마충은 상관의 명으로 군사를 이끌고 재빨리 유비의 구원에 나서 유비는 다행히 영안 [[백제성]]에 구사일생으로 입성했다. 자신을 구원하러온 마충과 얘기를 나누던 유비는 그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유파(삼국지)|유파]]에게 이르기를, "비록 [[황권]]을 잃었지만 그 대신 마충을 얻었다."며 칭찬한다. 유비 사후 승상 [[제갈량]]에 의해 문하독에 임명되고 225년 제갈량이 남중 지방을 평정 후 마충을 장가태수로 삼는다. 이 지역은 [[주포(삼국지)|주포]]가 반란을 일으킨 후 3년 만에 평정되었는데 마충은 백성들을 잘 위로, 구제했으며 가르치고 관리하여 통치를 잘해 이민족들의 위엄과 은혜가 커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230년 황제 [[유선(삼국지)|유선]]의 명으로 승상참군이 되고 [[장완]]의 차관이 되어 사무를 담당, 제갈량이 231년 [[기산#s-2|기산]](祁山)으로 출격해 마충도 종군해 군정사무를 담당한다. 그 후 [[장억]]과 함께 문산 강족의 반란을 진압했다. 233년 [[장익(삼국지)|장익]]의 엄격한 통치에 반발한 남방의 이민족과 그 수령인 [[유주(삼국지)|유주]]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민족 진압에 실패한 장익과 교대해 내항도독이 되었다. 전임자 장익이 기초를 튼튼히 다진 결과 마충은 빠르게 유주의 난을 토벌했으며, 또한 내항도독부를 유비가 221년에 이회를 내항도독에 임명하고 주둔시켰던 장가군 평이현에서 이민족이 살던 남쪽 건녕군의 치소 미현으로 이전해 만족 주민들이 거주하는 사이에 두어 이민족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 동안은 반란 등으로[* 마충전에 따르면 이전에 건녕군 태수 [[정앙]]을 죽이고, 그 후에 임명된 태수 [[장예]]를 잡아 오나라로 보냈기 때문으로 나온다.] 평이현에 있던 것을 미현으로 옮긴것으로 이민족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충이 투입되고 이민족 통치가 이전보다 밀접해졌고 240년, 그 당시 기준으로 오랫동안 잃었던 월수군을 장억과 함께 수복해 진남장군으로 승진하기까지 하니 제갈량의 남중정벌 이후에 산발적인 반란이 일어나던 남방이 완전히 안정된다. 242년 오래 외지에 근무했던 안남장군 마충은 건녕으로부터 조정으로 돌아왔는데 중앙에 불려와 한중에 도착해 장완을 만나 조서를 전하고 선포했다. 진남대장군에 제수되었고 화양국지에 따르면 팽향후(彭鄉侯)에 봉했다. 244년 [[비의]]가 침략한 위군을 격파할때 성도에 남아 상서의 일을 맡았으며 비의가 귀환하자 마충은 다시 남쪽의 임지로 돌아가 통치에 힘쓴다. 그 후 연희 11년인 249년 마충은 세상을 떠났다. 아들로는 마수가 있었다. 마충은 사람됨이 관대하고 도량이 크고 농담을 잘하고 크게 웃으며 분노할 때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결단력이 뛰어나 위엄과 은혜가 있어 이민족들의 두려움과 존경,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그가 죽자 장례를 치르는 곳에서 와서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그를 기리는 묘당을 만들어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진수는 마충은 온순하지만 과감하게 결단했다고 했다.[* [[상서]]에 이르길, 순종하면서 내면은 견고하다(擾而毅). [[정현(삼국지)|정현]]이 주석(注)을 달기를, '擾'는 '馴'이다. 공훈을 세운다(致果)는 말은 굳세고 용맹스럽다(毅)는 말이다.] 303년에 서진의 남중 지역인 영주에서 남중의 호족인 모선과 이민족 우릉승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때 마충의 손자인 마의(馬義)를 새로운 영주자사로 추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충이 현지에서 얼마나 추앙받았는지 알 수 있는 일화. 물론 서진정권에 의해 진압되긴 한다. == [[삼국지연의|연의]] == 제갈량의 남정에 선봉으로 출진하여 [[맹획]]을 사로잡다가 그의 부인 [[축융(삼국지)|축융]]에게 발리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실제로는 군사와 내정면에서 두루 활약한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 미디어 믹스 ==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 [[파일:Ma_Zhong_-_Shu_(1MROTK).png]] || [[파일:external/vignette1.wikia.nocookie.net/Ma_Zhong_-_Shu_%28ROTK11%29.png]] || || 100만인의 삼국지 || 삼국지 11 || ||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725.jpg|width=400]] ||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5]]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오나라의 [[마충(손오)|마충]]과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오나라의 마충에 비하면 능력치는 휠씬 높은데 70대 초반 수준이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77/무력 72/지력 72/정치력 76. 병법으로는 분전, 제사, 충차, 투석, 고무를 가진 B+급 무장이다. [[삼국지 10]]에서는 통솔력 81/무력 73/지력 70/정치력 74/매력 73. 특기는 치안, 징병, 화시, 일제, 고무, 은밀, 유인, 회복. 총 8개다. 균형 잡힌 능력치를 자랑하며, 후기 시나리오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쓸 만하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인지 뜬금없이 오나라의 마충과 혈연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을 처형하면 다른 한쪽의 원수로 설정된다. [[삼국지 11]]에서는 통솔력 78/무력 72/지력 68/정치력 78/매력 79로 전작에 비해 정치력과 매력이 상승한 대신 통솔력, 무력, 지력이 하락했다. 특기는 [[장억]]과 같은 [[답파]]이며 병과 적성은 극병, 노병, 병기 A다. 다방면으로 써먹을 수 있는 괜찮은 만능형 무장이지만, 장억과 비교할 경우 적성, 통솔력, 무력, 지력 전부 장억과 같거나 약간 모자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장억보다 약간 못한 성능이다. 그래도 남만정벌 시나리오에서 공적이 장억보다 4000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주(삼국지)|유주]]의 난을 진압할 때 장억은 마충에게 예속되었다는 정사 기록이 무시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삼국지 12]]에서 오나라의 마충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 때문에 혼돈이 되지 않는다. 일러스트는 밝은 모습을 한 채 --[[언제까지 그따위로 살텐가]]-- 오른쪽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으며 능력치는 전작에서 매력만 삭제되고 동일하게 등장하는데, 능력치 중 지력이 가장 낮으면서도 전법이 적에게 지력 차이로 피해를 주는 화계라서 미묘한 편. 관직, 탄원 등으로 지력을 올릴 수는 있으나 촉에는 마충보다 지력을 올려 줄 우선도가 높은 장수가 훨씬 많고 전법 자체도 창군견수를 가진 장억에게 밀린다. 문무겸장이라는 점은 장억, [[장익(삼국지)|장익]]과 비슷하지만 대접은 조금씩 이들보다 덜하다. [[삼국지 13]]의 능력치와 일러스트는 전작과 동일하며 특기는 상업 (1), 농업 (1), 문화 (3), 순찰 (5)로 전수특기는 순찰. 전법은 3포인트를 사용해 자부대 공격력을 2단계(30) 올리는 공격강화다. 병과 특성은 창병 C/기병 C/궁병 B이고 중신특성은 없다. [[삼국지 14]]에서 일러스트는 전작을 그대로 쓴다. 능력치는 통솔력 78/무력 72/지력 68/정치력 78/매력 79이며 개성은 숲전, 모집, 친만이 있고, 주의는 할거, 정책은 지세연구 Lv 4, 진형은 어린, 장사, 정란이 있고, 전법은 제사, 화시, 경파, 정란을 가지고 있다. 친애무장은 [[장억]], 혐오무장은 없다. === [[영걸전 시리즈]] === [[삼국지 공명전]]에서 궁병으로 등장하지만, 같이 등장한 [[장억]] 때문에 묻히고 말았다. 일기토도 승리하는 일기토가 하나 있고(vs. [[대릉]]) 같은 궁병인 [[왕평]]만은 못해도 키우려면 충분히 잘 키울 수 있는 클래스지만, 공명전의 밸런스는 워낙 엉망인 관계로 궁병이 설 자리가 없다. 무력만 강한 편이다.[* 궁병의 주 공격 수단이 화계인 공명전에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어찌보면 같은 궁병인 [[양의(삼국지)|양의]]보다 못한 대우라 볼 수도 있다.] 장억과 함께 삼강성 전투에서 [[축융(삼국지)|축융]]과 일기토를 벌이면 패하여 만도(은갱동) 전투까지 붙잡혀 있어야 하므로 출전시키지 말자. 그나마 정식 엔트리로 등장하는 게 공명전인데 거기서도 불쌍한 장수다. ===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 [[파일:마충패배.png]] 여기에서도 등장한다. === [[삼국전투기]] === 아예 등장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231년 4차 북벌 때만 참여해 군정사무를 담당한 것을 제외한 경력 대부분을 남부에서 이민족들 상대하며 보낸 탓인 것 같다. 마충과 마찬가지로 이민족을 상대로 업적을 쌓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들인 [[전예]]나 [[하제]], [[종리목]] 등 삼국전투기에서 재조명되었기 때문에 비교가 된다.[* 대신 비슷한 포지션인 [[장억]]이 등장한다.]거기다가 본편에서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는지라''' 삼국전투기만 본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있다는 사실도 모를 수 있다. 심지어 동명이인이자 열전도 없는 손오의 [[마충(손오)|마충]]은 '''관우를 직접 죽이는''' 엄청난 임팩트를 받으며 등장한다... [각주] [[분류:촉한의 인물]][[분류:249년 사망]][[분류:난충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