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mnibus.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lapham_Omnibus_-_geograph.org.uk_-_3049778.jpg|width=100%]]}}} || || {{{#000 최대 22명까지 탈 수 있는 [[영국|{{{#000 영국}}}]]의 2층 승합마차 [[옴니버스|{{{#000 옴니버스}}}]]}}} || [목차] [clearfix] == 개요 == {{{+1 馬車 (Carriage / A Horse-Drawn Vehicle)}}} 마차는 [[말(동물)|말]]이 끄는 수레를 말한다. 근대 이전까지는 여러 문화권에서 널리 통용되던 탈것이었으나, 현대에는 [[자동차]]로 대체되어 일부 특수한 목적을 제외하면 사실상 사장됐다. == 역사 == 대부분의 고대 인류의 발명품이 그렇듯, 마차 역시 정확한 기원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오리엔트]] · [[이집트]] 등의 각지에서 발견되는 부조를 볼 때 [[전차(고대 무기)|고대 전차]]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그 이외에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목|유목민]]으로 추정되는 [[원시 인도유럽인]]에 의해 세워진 [[선사 시대]]의 기마 유목 문화인 [[쿠르간 문화]]의 유적에서 마차가 출토되었으므로, 이를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 역시 [[은나라]]·[[주나라]] 시대의 왕릉 등지에서 '사마'라고 하는, 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차장·사수·마부·말 등과 함께 순장되어 있는 것이 발굴된 적이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https://i.namu.wiki/i/QwD8ExYvEhvYV_YmgpdAWFAZ85m6A2S537TiAVLOUitnZd1-CvcVsnCNFVWjHSm9NNeFsMRV4ehWe00v3uf6WVqps2wMQ02fGa0ktyByWT6z-kKMyDidVNQksV3oR2pWK_OksuG4cPcgovKgo73egA.webp|width=100%]]}}} || || {{{#000 [[스웨덴|{{{#000 스웨덴 왕실}}}]]의 [[브로엄|{{{#000 브로엄}}}]] 마차}}} || [[기원전 8세기]]부터 [[기병]]이 출현하자 전차는 일선에서 밀려났고, 그 과정에서 승용·화물운반용으로 역할이 바뀌면서 바퀴 수도 두 개에서 네 개로 늘었다. 이렇게 변화한 마차는 근대 전까지 인류에게 중요한 탈것으로 활약했다. 현대인에게는 버스처럼 승합용도로 쓰이는 것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우편마차와 [[역마차]]처럼 화물을 운송할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인류와 함께한 마차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자 [[증기기관]]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와 맞닥뜨렸다. 증기기관은 [[증기 기관차]]와 함께 [[철도]]라는 새로운 육상 교통수단을 탄생시켰고, 마차는 장거리 운송에서의 역할을 철도에게 상당 부분 넘겨주었다. 그러나 말단운송이 불가능하다는 철도의 특성 때문에 이 시기에도 중단거리 운송은 여전히 마차의 몫이었다. 한편 기존 마차에다 철도를 도입한 [[마차철도]]라는 과도기적인 교통수단도 등장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보다 가벼운 [[내연기관]]이 발명됐고, 이를 기반으로 말보다 더 빠르고 힘센 [[자동차]]가 등장하자 마차는 설 자리를 빠르게 잃어 갔다. 그래서 동력 자동차가 영국에서 갓 등장했을 때 마차와 자동차는 서로 물어뜯는 앙숙이었다. 그 싸움의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교통법인 [[적기조례]]다. 물론 이런 시대착오적인 [[악법]]에도 아랑곳없이 현대의 풍경이 보여주듯 마차는 완벽하게 쇠퇴했고, 결과는 자동차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정체되고 만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4.bp.blogspot.com/komarowc.jpg|width=100%]]}}} || || {{{#000 타찬카}}} || 다만 20세기 초까지 마차는 의외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당시에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을뿐더러, 자동차도 상당한 고가였기에 오늘날처럼 모든 분야에 자동차를 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군수물자 운송을 위해 대량의 [[기병]], [[말(동물)|말]], 마차가 동원됐으며, [[타찬카]]처럼 마차가 군용 병기로 쓰인 사례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전쟁에 자동차를 충분히 투입할 수 있었던 국가는 미국이 유일했기에 그 외의 군대에서는 말이 운송 및 교통 수단으로 적잖게 사용됐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Vehicle_of_Empress_Sunjeong.jpg|width=100%]]}}} || || {{{#000 1914년식 [[다임러(자동차 제조사)|{{{#000 다임러}}}]] 리무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20_Rolls-Royce_Silver_Ghost.jpg|width=100%]]}}} || || {{{#000 1920년식 [[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000 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 || 또한 이와 별개로 자동차의 초기 컨셉은 '말 없는 마차'였기 때문에, 초창기의 [[롤스로이스]] 등, 1차 대전 전후의 영국산 호화 차량에는 마차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자동차도 예외가 아니다. [[마부]]가 [[수행기사]]로 변한 것은 물론, 1열과 2열 사이에 있는 벽, 뒷좌석 지붕만 열 수 있는 랜덜렛 소프트탑, 실크해트가 뭉개지는 것을 막기 위한 높은 천장이 [[롤스로이스]], [[벤틀리]], [[마이바흐]]에서 생산하는 최고급 차량 중 옵션이나 한정판 차량에 적용되는 것 등은 모두 마차의 흔적이다. 마차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날로 발전하는 자동차 기술과 그에 따른 자동차의 대중화, 그리고 자동차 관련 인프라의 확충으로 이때부터 마차는 지역과 분야를 불문하고 자동차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고 비로소 사라졌다. === 한국 === 한국의 경우 [[고조선]]부터 [[고려|고려시대]]까지 수레와 마차가 널리 쓰였다. [[http://blog.naver.com/woasj87/130002154935|고조선 시대의 마차 그림]] [[삼국시대]]에도 도로와 마차, 우차가 운용되었다. [[관산성 전투]]의 배경이었던 충북 [[옥천군]]에서는 [[신라]] [[서라벌]]과 옥천을 잇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3&aid=0008759502&sid1=001&lfrom=cafe|도로 유적이 2018년 발견되기도 했다.]] 도로 표면에는 수레바퀴 자국과 수레를 끌었던 짐승의 발자국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전쟁이 잦았던 시대라 군 부대에 인력과 군량을 빨리 운송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조선시대]]가 되면서 마차는 점차 쇠퇴하고 대신 소가 끄는 [[달구지]]로 화물을 운송하거나 강과 바다를 통해 화물을 나르게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말 부족'''이었다. 왜냐면 [[고려 말 왜구의 침입|고려 말기에 왜구가 한반도를 초토화하면서]] 말 목장들까지 큰 타격을 입으면서 말이 부족해지기 시작한것이다. 이를 타파하고자 조선은 중국과의 무역과 여진족을 통해 말을 지속적으로 수입하면서 [[http://science.ytn.co.kr/program/program_view.php?s_mcd=1165&s_hcd=&key=201601110924188936|양마장]]을 전국 곳곳에 설치하여 말을 늘리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평야가 적고 산지가 많은데다 가축을 위협하는 [[호랑이]], [[늑대]], [[표범]] 등 맹수가 많은 한반도의 특성상 말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관마만 하더라도 경국대전 기준으로 5만 마리가 있었는데 이조차도 전국의 역참에 배당하기엔 부족한 숫자였다. 여기에 시대가 지날수록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큰 이유였다. 말을 역축으로 제대로 부리려면 초원지대럼 풀이 풍부한 곳이 아니면 건초에 곡물도 먹이는게 필수인데, 성인 1명분의 곡물만 먹여도 되는 소와 달리 말은 성인 3명분의 곡물을 먹여야만 제대로 부릴 수 있었다. 특히 왜란과 호란의 양란 이후 인구가 늘어나면서 조선 조정이 말을 키우던 목장을 둔전이나 농장으로 바꿔버리고 [[화전]]까지 성행했던 조선 후기에 가면 말을 더더욱 늘리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말 자체가 부족하니 당연히 마차를 많이 쓰기가 어려웠다. 이러다보니 조선시대에는 마차에서 소가 끄는 달구지로 완전히 변화하게 되는데, [[수원화성]] 축성 때만 해도 말이 아닌 소가 끄는 민간 수레가 동원되었고 [[속대전]]에서 소가 끄는 민간 수레의 동원에 대해 기록해놓기도 했다. 특히 산지가 많은 함경도, 강원도 지역에서는 소달구지가 많이 쓰였다.[* 이 수레를 가지고 예전에 역사 관련 커뮤니티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반계수록을 쓴 실학자 [[유형원]]이 "우리나라(조선) 풍속은 수레를 쓸 줄 모른다."고 적은 걸 가지고 조선은 수레를 안 썼다고 여긴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비변사등록 등의 사료들을 보면, 성을 쌓는 공사에 소가 끄는 수레를 8백여 대나 사용할 만큼 많이 동원했다. 그리고 '~할 줄 모른다'는 말은 '정말로 못 한다'는 의미와 '할 수는 있는데 제대로 하는 요령을 모른다'는 비유적 의미 두 가지로 쓰일 수 있다. 즉 유형원의 말은 '조선에서는 사람들이 수레 쓰는 법을 아예 모른다'가 아니라 '조선에도 수레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처럼 통일된 규격과 유통망이 없으니 있어도 잘 활용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로 읽는 것이 옳다. 참고로 중국이 수레 규격을 통일한 것은 진시황 대의 일이다.] 왜냐하면, 이 두 지역의 경우 한양으로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선박을 쓰려면 한참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육식 문화가 엄청나게 쇠퇴하여 [[고려도경]]에서 소 잡을 때 진짜 무식하게 잡는다고 표현했던 고려시대에는 소나 말이나 어차피 못 먹는 거라[* 물론 그렇다고 아예 안먹은것은 아니다.] 두 동물 사이에 가치적인 차이가 크게 없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민간인들도 소뼈를 쌓아놓고 먹을 정도로 [[소고기]] 매니아가 되어버리면서[* 돼지와 닭보다 소를 잡아먹는것을 더 좋아했다.] 말 대신 식육적으로 더 가치가 있는 소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말의 숫자가 부족했으며 승객용 마차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로 [[서스펜션]]의 문제도 있었다. 맨 처음 나온 기술인 [[판 스프링]]의 경우 기본적으로 탄성력을 이용하는 건데, 유럽이 17세기 중반[* 1600년대 중반이다. 해설하자면 병자호란 직후.]에 판 스프링을 처음 도입했는데, 한중일은 그러지가 못했다.[* 이러한 판 스프링은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에는 자동차의 현가장치로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짐을 많이 싣는 대형 트럭의 주요 현가장치가 되었다.] 최소한 강철이나 그와 비슷한 탄성력이 강한 재료가 필요한데, 중국은 그나마 한국과 일본보다 평지가 많아서[* 어디까지나 그나마다. 중국도 알고보면 평지는 전체 국토에서 많지가 않다.] 고민을 덜 했지만, 한국, 일본은 산지가 많은 지형상 답이 없어서 [[가마]]를 타거나 말을 직접 타는 판국이었다. 일본에서도 천황조차 수레를 타는일이 드물었는데, 그것도 즉위식쯤 되어야 겨우 두 바퀴 달린 수레가 나오는 정도다.[* 2019년 [[나루히토]] 취임 때 선을 보인 적 있는데, 당나라 문화 영향을 받은 헤이안 시대의 수레 디자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ontents.nahf.or.kr/thumnail05_ex.jpg|width=100%]]}}} || || {{{#000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마차와 우차를 볼 수 있다. 위 사진은 덕흥리 고분벽화의 행렬도다.}}} || == 현재 == 관광용이나 전통 행사 등의 특수한 용도가 아니면 사용되지 않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queen-elizabeth-coronation-parade-CORONATION0118.jpg|width=100%]]}}} || || {{{#000 골드 스테이지 코치}}} || [[영국 왕실]]에선 전통적으로 1762년에 만든 골드 스테이트 코치라는 황금마차를 아직도 현역으로 쓰고 있다. 대관식 같은 아주 큰 행사에만 쓰이는데, 아무래도 워낙 오래전에 만들어서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승차감이 엄청 안좋아서 [[엘리자베스 2세]]가 싫어했다고 한다. 재위 기간중 몇번 타지 않고 거의 50년째 전시용으로 쓰다 2022년 플래티넘 주블리에서 다시 등장했다. [[찰스 3세/대관식|찰스 3세의 대관식]]에선 골드 스테이트 코치 마차 대신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해 2012년 호주에서 제작한 '다이아몬드 주빌리 스테이트 코치'[* 내부에는 [[에어컨]]도 달렸다.] 마차가 사용됐다. 오래된 '골드 스테이트 코치' 마차는 국왕 부부가 대관식 후 버킹엄 궁전으로 돌아오는 행진에서만 사용하기로 했다.[[https://www.bbc.com/korean/articles/c0wg7q262zvo|#]] || {{{#!wiki style="margin: -5px -10px" [[https://i.namu.wiki/i/MbFjRdoHu_bi1jkqZlpTMPkliPcKsPDqGnC3JCfRHI3AKfOyR4PKdwN_mYlyoTyXCbMFwTACGfI49bZN3147AyuT4lMJON7ZQMEMg_RGmNXZfws-Z9L7tpTzOEh1euSSfX8GobHi57aQujSKUAWd6w.webp|width=100%]]}}} || || {{{#000 '''Horse and a Buggy'''}}}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512px-Traditional_Amish_buggy.jpg|width=100%]]}}} || [[펜실베이니아]]주의 [[아미쉬]]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아직도 현역으로 굴러가는 것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교통규제를 따르기위해 붙인 반사판과 삼각표지판이 인상적이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도로교통법상 소나 말이 끄는 마차를 도로에서 운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방향 지시등과 안전벨트만 달면 합법적으로 차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청계천]]에 진짜 [[말(동물)|말]]이 끄는 마차가 운행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 한복판에 '우마차 통행금지'라는 교통 표지판이 붙기도 했다. [[경주시]]에서도 '경주 꽃마차'라는 이름으로 운행했으나, 마부들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37&aid=0000069030|영업시간이 끝난 후 말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등 학대를 가한 사실]]이 드러났고,[* 학대행위가 가해진 공터가 길가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즉 사람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대로변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학대를 가했다는 뜻. 게다가 말들이 구타를 견디다 못해 쓰러진 뒤에도 계속 매질을 하기까지 했다.] 언론 보도 이후 마차 운영 업체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문제의 마차 운영 업체는 철수했으며 말들은 구조되어 한국마사회에서 보호 및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좋은 사례도 있다. [[단양군]]의 유명한 관광지 [[도담삼봉]]에서도 마차가 있는데 꽤나 복지가 잘되어있으며, 충청도 사전컨설팅 우수사례로 뽑히고 충북 MBC뉴스에 소개가 될 정도로 평이 굉장히 좋다. 학대논란으로 마차에 관한 이미지가 바닥이였던걸 생각하면 대단한 수준 [[https://youtu.be/bJSaIuluHUQ|링크]] == 기타 == [[영국]]의 교통이 마차 중심이던 시절에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 마부들은 보통 마차 오른쪽 자리에 앉아서 말을 몰았고, 이로 인해 보행자들은 좌측 통행을 하게 되었다. 이는 마차가 [[자동차]]로 대체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영국 및 영국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자동차 운전석이 차량의 오른쪽에 있고, 좌측 통행을 한다. 19세기 영국에는 [[https://en.wikipedia.org/wiki/Hansom_cab|핸섬 캡(Hansom Cab)]] 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마차가 있었다. 이 마차는 탑승 인원이 적은 대신 마부가 차체 뒤편에서 말을 몰 수 있는 특이한 구조 덕분에 속도가 빨랐고, 이러한 장점을 이용해 오늘날의 [[택시]]처럼 영업을 했다. 택시를 영어로 cab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이 핸섬 캡에서 유래된 것이다. 말이 많을수록 더 무거운 짐을 싣고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으니, 엔진의 마력을 보고 자동차의 속도나 적재량을 예측하는 것처럼 마차의 시대에는 한 마차당 할당된 말의 수로 마차의 능력을 가늠했다. [[트로이카]](삼두마차)처럼 고유명사화된 규격도 있다. 한국에선 그다지 엄격하지 않지만, 서양에서 중요한 예절중 하나인 [[https://www.testdrive.or.kr/boards/86015|자동차의 상석 구분같은 승차예절은]] 대부분 귀족들이 마차를 이용할때 만들어졌던 예절 규범들이 시대에 맞게 변형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들이다. 이 승차, 하차 매너 개념은 현대판 마차인 의전용 [[대형차]], [[쇼퍼드리븐 자동차]]를 탈 때나 해외생활 하면서 남의 차를 타게 될때 그대로 적용되므로 특히 연장자와 같은 차를 타게 되거나, 아니면 친구가 아닌 타인의 차를 자주 타거나 높으신 분 의전용 차를 타는 일이 있을 경우 알아두는게 중요하다. 기술적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내구성 좋고 승차감 좋은 마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다. 상하 요동에 의한 바퀴축 파손 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서스펜션|완충장치]]가 필요한데, 현대에도 차량에 흔히 쓰이는 판 스프링은 마차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이다. 질 좋은 탄성 강재를 만들기 이전에는 탄력 좋은 목재로 비슷한 구조를 만들었다. 마차의 너비는 철도의 너비(2두 마차 기준)으로 이어졌으며,[* 이렇게 탄생한 철도가 바로 [[표준궤]]이다.] 현대의 로켓 등은 이 철도로 운반되는 것을 전제로 제작된다. 즉, '''[[경로의존성|마차 규격 → 철도 규격 → 로켓 규격]]''' 이라는 역사적 흐름의 시작.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마차사업이 있다. [[도담삼봉]]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2019년도 충청도 감사원 컨설팅 우수사업으로 MBC 뉴스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가보면 복지가 매우 잘되어있고 젊은사람 2명이 운영하다보니 크게 신경 쓰는 듯하다.[[https://youtu.be/bJSaIuluHUQ|뉴스링크]] == 관련 문서 == * [[가마(탈것)|가마]] * [[버기카]] * [[역마차]] * [[옴니버스]] * [[포장마차]] * [[전차(고대 무기)|전차]] * [[트로이카]] * [[타찬카]] * [[브로엄]] [[분류:차마]][[분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