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인도의 승려]][[분류:백제의 승려]] 摩羅難陀 ?~? (4세기 말) [목차] == 개요 == [[백제]]에 불교를 전한 [[인도]]의 승려. [[삼국유사]] 및 [[해동고승전]]에 이름이 실려 있다. 해동고승전에서는 천축의 말로 마라난타라는 이름은 동학(童學, 사미승)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생애 == [[침류왕]]이 즉위한 [[384년]] 9월에 [[동진]]에서 백제로 왔으며, 침류왕은 그를 맞아다 궁중에 머물게 하고 예로써 공경하였으며, 마라난타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마치 왕의 명을 받고 몰려드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385년]] 백제의 수도 한산주에 절을 지어서 승려 10인을 출가시켰다고 한다. 현재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 등 백제 유적에서 불교 관련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는 등 한성시대 침류왕 때에 백제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 전승지 == 전남 [[영광군]]의 법성포(法聖浦)는 마라난타가 온 뒤로 '성인이 오신 포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하고 있으며, 영광군의 [[불갑사]]와 군산 불지사, 나주 불회사(불호사)도 마라난타가 와서 지은 절이라는 전승이 있다. [[1996년]]부터 영광군과 불교계에서 합동으로 법성포를 '백제 불교 최초 전래지'로서 기념하고 성역화 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마라난타가 처음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마라난타사와 간다라 유물관 등을 조성하기도 했는데,[[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5739|#]] [[http://www.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65|#]] 영광을 비롯한 전라도 지역은 현재 [[개신교]]가 강세인 동네다 보니 마라난타존자상을 세울 때 현지에서 개신교계의 반발이 좀 있기도 했다고.[[http://news.joins.com/article/2289799|#]][[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8409|#]] 개신교인 2천 명이 모여서 반대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이러니한 게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던 김봉열 당시 영광 군수는 본인이 '''장로교 집사'''(!)였으며[[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21|#]]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신교계의 반발이 있자 본인이 가진 '''집사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http://v.media.daum.net/v/19990708143900585?f=o|#]] 오히려 현지 [[가톨릭]]계에서는 [[원불교]]계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사업의 배경과 목적을 이해하고 찬성한다."며 지지했다고.[[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5879|#]] [[http://www.imaeil.com/board/imaeil_view.php?table_code=free_board&index_no=1395&page=3506&key=&word=%26%2365533%3B%B4%EB%26%2365533%3B%26%2365533%3B%26%2365533%3Bkey=c|#]] 당시 개신교계는 '마라난타가 실존 인물인지도 확실하지도 않은데 특정 종교 때문에 혈세를 낭비하겠다는 거냐'고 비판했는데,[* 다만 이 사람들도 불국사에서 십자고상과 성모상이 나왔다고 한국에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실제로 [[당나라]]와 [[몽골]] 고원까지 퍼져 있었다)가 전래된 때가 신라 시대부터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인지라...] 마라난타가 실존인물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일단 '''틀린 말은 아니다.'''[* 애초에 백제사가 발해사와 더불어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자료가 부족하기로 악명이 높은 시대'''다. 백제 성왕 때의 고승이라는 [[겸익]]도 미륵불광사사적이라는 기록에 나온다고는 하는데([[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언급), 이 미륵불광사사적의 원문이 현존하지 않아서 겸익이라는 인물이 실존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2001년]]에 [[한양대]] 민희식 명예교수가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아슈라프 칸 박사의 고문헌 선집에서 마라난타가 간다라 지방인 지금의 [[파키스탄]][* 이쪽도 현재는 [[이슬람교]]가 강세인 동네다.] 쵸타 라흐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이후 30세에 고향 마을을 떠나 [[실크로드]]를 따라 탁실라, 폐샤바르를 거쳐 14년 간 우전국, [[돈황]], [[동진]], [[시안시|장안]], [[낙양]] 등지에서 불교를 전파했다는 내용의 고문헌을 찾아냈다는 기사가 불교신문에서 보도되었고,[[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501|*]] 2001년에 이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졌는데, 민희식 박사가 말한 이 고문헌이라는 것이 학계에 공개되거나 이를 다룬 논문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애초에 민 박사는 불문학자이지 불교학자도 아니다. 다만 침류왕 때에 불교가 백제에 전해진 것 자체는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사실 재위 기간이 짧아서 불교 도입 외에는 제대로 된 기록이라 할 것이 사실상 별로 없는 침류왕에게 은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