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1세기)] |||| {{{+3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코케이아누스''' }}}[br]{{{-1 [[라틴어]]: Lucius Salvius Otho Cocceianus }}} || || '''전체이름'''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코케이아누스[br]Gaius Septimius Severus Aper || || '''생몰년도''' ||서기 55년(추정)~ 서기 96년 || || '''지위''' ||원로원 의원, 집정관 || || '''종교''' ||[[로마 신화|로마 다신교]] || || '''부모''' ||루키우스 살비우스 티티아누스 오토(父)[br]코케이아(母) || || '''친척'''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숙부)[br][[네르바]](외숙)||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제국]]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의 원로원 의원, 집정관. [[네 황제의 해]] 동안 제위에 있던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의 조카,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창건자이며 [[오현제]]의 첫 번째 황제 [[네르바]]의 외조카이며 그와 가장 가까운 남자혈육이다. 서기 82년 집정관을 지냈지만, 서기 9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의심을 받고 반역죄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외숙부 네르바에겐 오토 코케이아누스의 자녀를 비롯한 다른 혈육들이 있었으나 당시 정국, 네르바가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에 따라 네르바의 모든 재산, 제위를 얻지 못했다고 전한다. == 생애 == 서기 55년경, 페렌티움에서 세습 원로원 의원 루키우스 살비우스 티티아누스 오토와 그 아내로 공화정기부터 [[노빌레스]]였던 집안 출신 귀부인 코케이아 부부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네로 사후 즉위한 황제 중 한 명인 오토의 친형, 어머니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불알친구이며 집정관을 지낸 네르바의 손녀로 후일 황제가 된 네르바의 동복 여동생이다. 이런 부모를 둔 오토 코케이아누스는 일찍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 자녀가 없던 작은아버지 오토, 외삼촌 네르바 모두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두 사람은 유일한 혈육인 조카에게 자신들의 가문을 물려줄 생각을 했다. 작은아버지 오토는 황제에 오른 직후부터, 오토 코케이아누스를 양자로 입양해 제위를 물려주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오토 황제는 [[비텔리우스]]와의 대결에서 패배해 죽었다. 아버지는 비텔리우스가 죽이지 못하게 하여 목숨을 구했다. 그렇지만 아버지 루키우스 오토는 오토 코케이아누스가 14살이던 무렵인 서기 69년 세상을 떴다. 다행히 비텔리우스는 곧 몰락하고, [[베스파시아누스]]가 네 황제의 해를 정리하면서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의 관용 속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서기 69년 아버지와 숙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다. 부모 모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래에서 위세가 대단한 귀족 출신이고, 외삼촌 네르바가 플라비우스 왕조 존속 내내 이탈리아 출신 귀족들의 리더격 거물 정치인이라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서기 63년, 사제 중 총 24명의 소년만 오를 수 있는 살리 멤버에 선정됐고 이 경력을 시작으로 명예로운 경력을 무난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서기 82년 집정관까지 취임했다. 그렇지만 그는 곧 의심 많고 냉혹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견제를 받았다. 도미티아누스는 꼬투리 잡을 궁리를 했다가, 서기 96년 오토 코케이아누스가 숙부 오토의 생일을 기념해 축하했다는 누명을 씌워 그를 반역죄로 처형했다. 그가 죽은 그 해, 도미티아누스는 얼마 안 가 암살됐고 외숙 네르바가 원로원의 추대로 제위에 올랐다. [[분류:1세기 집정관]][[분류:96년 사망]][[분류:로마 제국 집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