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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가게 되었다. 밀라노에서는 2001-02 UEFA 컵 4강, 2002-03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을 기록했다. [[2003년]]에 [[브레시아 칼초]]로 이적하여 [[2006년]]까지 활동했고 아스콜리 피키오 FC 1988에서 은퇴했다.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경력 ===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 1998년에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체사레 말디니]] 감독의 부름을 받아 처음으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아주리 군단]]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말디니 감독의 신임을 얻어 마침내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리아]]와 함께 B조에 속했다. 교체로 출전한 칠레와의 1차전에서 이탈리아는 전반 11분,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으나 전반 종료 직전과 후반 3분에 [[마르셀로 살라스]]에게 잇달아 골을 내주며 1 : 2 역전패를 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후반 39분, [[로베르토 바조]]의 [[페널티 킥]] 동점골 덕에 2 : 2로 간신히 비겼다. 뒤이어 2차전 카메룬과의 경기에서부터 선발로 출전한 디 비아조는 전반 7분에 [[로베르토 바조]]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한층 유리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후반전에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잇달아 2골을 터뜨리며 3 : 0 대승을 거두었다. 마지막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도 비아조는 크게 활약하며 오스트리아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이탈리아는 2 : 1 승리를 거두었다. 16강에서는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노르웨이]]를 만났고 비아조는 비에리에게 한방에 찔러주는 쓰루패스 도움을 기록하며 1 : 0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8강에서 개최국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를 만난 이탈리아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0 : 0으로 비겼고 결국 [[승부차기]]를 치르게 되었다. 4번 키커까지 양팀 모두 1명씩 실축해 스코어는 3 : 3이었던 상황이었다. 선축이었던 프랑스의 5번 킥커는 [[로랑 블랑]]이었고 킥을 깔끔하게 성공시켜 먼저 1점 앞서 갔다. 이제 이탈리아는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고 이탈리아의 5번 키커는 바로 비아조였다. 그러나 비아조의 킥은 골대 상단을 때리고 말았고 결국 프랑스가 [[승부차기]] 4 : 3으로 승리하며 이탈리아는 8강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경기 후 좌절하고 있던 비아조에게 [[1994 FIFA 월드컵 미국/결승|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적이 있던 [[로베르토 바조|바조]]가 위로해줬다.] 비아조의 첫 번째 월드컵도 여기서 막을 내렸다. ==== [[UEFA 유로 2000]] ==== 비록 [[승부차기]]를 실축하긴 했어도 루이지 디 비아조는 여전히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중한 자원이었고 [[UEFA 유로 2000]]에도 출전했다. 이 때 이탈리아는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튀르키예]],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벨기에]],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과 함께 B조에 속했다. 이탈리아는 1차전 상대 터키를 맞아 후반 7분, [[안토니오 콘테]][* 우리가 아는 그감독 이 맞다]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불과 10분 만에 터키의 오칸 부르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후반 25분, [[필리포 인자기]]의 [[페널티 킥]] 결승골 덕에 2 : 1 신승을 거두며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벨기에와의 2차전에선 전반 6분 만에 [[프란체스코 토티]]의 선제골로 앞서나갔고 후반 21분, 스테파노 피오레가 쐐기골을 터뜨리며 2 : 0 완승을 거두었다. 1차전과 2차전 모두 결장한 비아조는 3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부터는 선발 출전했고[* 이탈리아가 이미 2승을 기록하여 주전들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백업 선수들이 대거 선발로 출전했다] 전반 39분에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터뜨려 월드컵에 이어 유로에서도 득점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후반 32분에 스웨덴의 [[헨릭 라르손]]이 동점골을 넣으며 추격했지만 후반 43분,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결승골로 스웨덴마저 2 : 1로 꺾고 이탈리아는 3전 전승으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전 상대는 동유럽의 강호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루마니아]]였다. 다소 고전이 예상되었으나 이탈리아는 전반 33분, [[프란체스코 토티]]의 선제골과 전반 43분, [[필리포 인자기]]의 쐐기골을 묶어 루마니아마저 2 : 0으로 제압하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비아조는 교체 출전했다. 4강 상대는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였다. 이경기부터 비아조는 선발로 출전했고 이탈리아는 네덜란드의 공격 축구에 시종일관 밀리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탈리아는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카테나치오]]를 발동해 네덜란드의 맹공을 차단하며 버텨냈다. 결국 120분 동안 이탈리아는 네덜란드의 맹공을 막아내고 또 막아내며 0 : 0 무승부를 거두었고 승부는 [[승부차기]]로 가리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에서 비아조는 1번 키커로 나서게 되었다. 2년 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5번 키커로 나섰다가 실축한 아픈 경험이 있는 비아조로선 더욱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웃었다. 이탈리아의 1번 킥커로 나선 비아조는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그리고 [[프란체스코 톨도]] 골키퍼가 네덜란드의 1번 키커 [[프랑크 더부르]]의 킥을 막아내며 한 층 더 경기는 유리해졌다. 뒤이어 이탈리아의 2번 키커 잔루카 페소토가 골을 성공시켰지만 네덜란드의 2번 키커 [[야프 스탐]]은 허공으로 난사하며 스코어는 2 : 0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3번 키커 [[프란체스코 토티]]가 대담한 [[파넨카 킥]]으로 [[에드빈 판데르사르]] [[골키퍼]]를 농락하며 킥을 성공시켜 점수는 3 : 0으로 벌어졌고 이제 네덜란드의 3번 키커 [[파트릭 클라위버르트]]가 실축하면 이탈리아의 승리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클라위버르트는 킥을 성공시켰고 점수는 3 : 1로 좁혀졌다. 이탈리아의 4번 킥커는 주장 [[파올로 말디니]]였다. 말디니가 킥을 성공시키면 이제 승부는 끝이 나는데, 그만 말디니의 킥이 [[에드빈 판데르사르]]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이제 네덜란드의 4번 키커가 골을 성공시키면 이탈리아는 먼저 3점을 앞서가고도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된다. 네덜란드의 4번 키커는 파울 보스펠트. 네덜란드로서는 보스펠트가 반드시 킥을 성공시켜야 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톨도]]가 보스펠트의 킥을 막아내며 이탈리아의 3 : 1 승리로 끝이 났고 무려 32년 만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탈리아의 결승전 상대는 바로 2년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였다. 2년 전 [[승부차기]]로 석패하며 8강에서 주저앉아야 했던 이탈리아로서는 반드시 지난 날의 빚을 갚아야 했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홈구장 [[스타디온 페예노르트]]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비아조는 선발로 출전했고 이탈리아는 전반전을 0 : 0으로 마친 뒤 후반 10분, 마르코 델베키오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그리고 카테나치오로 프랑스의 맹공을 막아내며 정규시간 90분이 다 지날 때까지 1 : 0 리드를 유지하고 있었고 추가시간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이탈리아가 32년 만에 유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듯했다. 그러나 종료 직전 [[실뱅 윌토르]]에게 기습적인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막판 1분을 버티지 못해 연장전으로 승부가 이어졌고 연장 전반 13분,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기습적인 [[골든 골]]을 허용하며 허무하게 우승컵을 놓치고 말았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UEFA 유로 2000]]이 끝난 후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이 부임했는데 루이지 디 비아조는 트라파토니 신임 대표팀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한데다 본인의 기량도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대표팀 주전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동안 대표팀에서 공헌한 바가 컸기에 다시 한 번 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그의 2번째 월드컵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 때 이탈리아는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멕시코]]와 지난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던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 그리고 남미의 처녀 출전국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에콰도르]]와 함께 G조에 속했다. 비아조는 에콰도르와의 1차전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고 전반 27분에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2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1도움을 기록해 팀의 2 : 0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교체 되었고 결국 나머지 경기에서는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이탈리아는 크로아티아와의 2차전 경기에서 후반 10분,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으나 후반 28분에 [[이비차 올리치]]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불과 3분 후에 밀란 라파이치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1 : 2 역전패를 당했다. 그리고 멕시코와의 3차전에서는 전반 34분, 하레드 보르헤티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불리한 경기를 펼쳤고 0 : 1로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 지속되었으나 후반 40분에 터진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골로 간신히 1 : 1 무승부를 거두며 1승 1무 1패의 전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해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16강에 간신히 올라와서 개최국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과 만났고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선제골을 넣었고, [[잔루이지 부폰]]의 괴물같은 선방을 보여주었으나 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설기현]]에게 동점골을, [[안정환]]에게 [[골든 골]]을 허용하며 1 : 2 역전패를 당하며 16강에서 무릎을 꿇었다. 디 비아조의 월드컵 역시 여기서 막을 내렸다. == 지도자 경력 == 비아조는 2011년 7월 25일에 이탈리아 U-20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이후 2013년 7월 2일에 데비스 마냐 감독의 후임으로 U-21 대표팀 감독으로 승진했다. 그가 이끄는 이탈리아 U-21 대표팀은 2015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노렸다. 이 때 이탈리아는 포르투갈, 스웨덴, 잉글랜드와 함께 B조에 속했다. 1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전반 29분 도메니코 베라르디의 [[페널티 킥]] 골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11분, 욘 알베르토 구이데티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후반 41분에 이삭 키세 텔린에게 페널티 킥 역전골을 허용하며 1 : 2 역전패를 당했다. 그리고 2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0 : 0으로 비긴 뒤 3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안드레아 벨로티의 선제골과 마르코 베나시의 멀티골에 힘입어 3 : 1 승리를 거두었으나 포르투갈과 스웨덴이 1 : 1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스웨덴과 1승 1무 1패 동률을 이루고도 승자승 원칙에서 밀리며 조 3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2개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다음 대회인 2017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절치부심했는지 지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독일과 역시 지난 대회 올림픽에 출전했던 덴마크 그리고 체코와 함께 죽음의 조인 C조에 속했는데 이 때 이탈리아는 1차전에서 덴마크를 2 : 0으로 격파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2차전 체코와의 경기에서 1 : 3으로 패배하며 다시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의 영원한 밥인 독일을 1 : 0으로 잡아내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4강에서 스페인에 1 : 3으로 패배해 우승에는 실패했다. 이제 다음 대회는 이탈리아와 산마리노에서 개최되고 이 대회에서 4강 안에 들면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얻게 된다. 과연 이탈리아가 개최국의 자존심을 살림과 동시에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출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리고 2017년 11월 13일,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서 예선 탈락한 후 무려 60년 만에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치욕을 맛보게 되었다.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이 사태의 총책임자인 [[잔 피에로 벤투라]]를 즉각 경질하였고 후임자가 선임되기 전까지 U-21 대표팀 감독인 비아조에게 감독 대행을 맡겼다. 이 때 비아조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유럽)/스웨덴 vs 이탈리아|밀라노 쇼크]]의 책임을 지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베테랑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을 다시 대표팀에 소집시켰다. 이탈리아는 3월 평가전에서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맞붙었는데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탈리아는 졸전 끝에 0 : 2로 패배했고 잉글랜드와도 1 : 1 무승부를 거두며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5월에 [[로베르토 만치니]]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비아조는 다시 U-21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2020년 2월, 레오나르도 셈플리치가 물러난 최하위 [[SPAL]]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리그 15경기에서 1승밖에 거두지 못하고 결국 강등되고 말았다. [[분류:1971년 출생]][[분류:로마 출신 인물]][[분류:이탈리아의 축구선수]][[분류:이탈리아의 축구감독]][[분류:SS 라치오/은퇴, 이적]][[분류:AC 몬차/은퇴, 이적]][[분류:포자 칼초/은퇴, 이적]][[분류:AS 로마/은퇴, 이적]][[분류: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분류:브레시아 칼초/은퇴, 이적]][[분류:아스콜리 칼초 1898 FC/은퇴, 이적]][[분류: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감독 대행/축구]][[분류:SPAL/역대 감독]][[분류: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분류: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