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나폴레옹/26인 원수)] ||<-2> {{{#ffd700 ''' {{{+1 제1대 알뷔페라 공작, 루이가브리엘 쉬셰}}}[br]Louis-Gabriel Suchet, 1er Duc de Albufera'''}}}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attachment/루이 가브리엘 쉬셰/쉬셰.jpg|width=100%]]}}} || ||<-2> <'''Le maréchal de la guerre d'Espagne'''>[br]'''스페인 전쟁 원수'''[br]<'''El Hombre justo'''>[br]'''[[정의의 편|정의로운 사나이]]''' || || {{{#ffd700 '''생몰년도''' }}} ||[[1770년]] [[3월 2일]] ~ [[1826년]] [[1월 3일]] || ||<#002654> {{{#ffd700 '''신체''' }}} ||174cm || || {{{#ffd700 '''출생지''' }}} ||[[프랑스 왕국]] [[리옹]] || || {{{#ffd700 '''국적''' }}} ||[[프랑스 왕국|[[파일:프랑스 왕국 어기.svg|width=20]]]] [[프랑스 왕국]]→[[프랑스 제1공화국|[[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width=20]]]] [[프랑스 제1공화국]]→[[프랑스 제1제국|[[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width=20]]]] [[프랑스 제1제국]]→[[부르봉 왕정복고|{{{#!wiki style="display: inline-flex; width: 20px; padding:1px;background:rgba(45,47,52,.2); vertical-align: middle" [[파일:프랑스 국기(1814-1830).svg|width=100%]]}}}]] [[부르봉 왕정복고]] || || {{{#ffd700 '''계급''' }}} ||제국 원수([[프랑스 제1제국]]) ||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때의 [[프랑스군]] 장군이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이 임명한 26인 [[원수(계급)|원수]] 중 한 명. 초대 알뷔페라 [[공작(작위)|공작]]. == 생애 == 리옹의 비단 방직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으려 했으나 1792년 국민 방위군 기병대에 자원해 [[프랑스 혁명전쟁]]에 참전하면서 군인이 되었다.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발휘해 빠르게 승진했으며 1793년 대대장으로 프랑스 툴롱 공방전에 참가했고 [[1797년]] 오스트리아 [[티롤]], 1797년 [[스위스]]에서 복무해 [[기욤 마리 안 브륀]]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1799년]] 7월 [[이탈리아]]의 바르텔레미 카트린 주베르 휘하의 사단장과 참모장이 되었다. 1800년에는 [[앙드레 마세나]]에 의해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알프스 산맥]] 횡단 작전에 이바지했고 1800년 6월 14일 [[마렝고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1805년에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아우스터리츠]], [[독일·폴란드 원정|잘펠트 전투]], [[독일·폴란드 원정|예나]], 푸우투스크, 오스트로우엥카 등지에서 복무했고 1808년 3월 19일 [[백작]] 작위를 받았다. 곧 [[스페인]]에 배속되어 [[1809년]] 6월 14일 마리아에서 영국군을 섬멸하고 1810년 4월 22일 레리다에서 다시 영국군을 패배시켰다. [[1812년]] [[스페인]] [[발렌시아(스페인)|발렌시아]]를 점령하고 알뷔페라 다 발랑시아 공작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의 점령지를 모두 내주고 프랑스로 후퇴했다. 왕정 복고로 [[루이 18세]]가 그를 [[귀족]]에 봉했으나 [[백일천하]] 때 나폴레옹을 지지하자 [[1815년]] 귀족 자리에서 박탈되었다. 한편 쉬셰는 나폴레옹의 [[원수(계급)|원수]]들 중에서 몇 안 되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반도 전쟁]] 당시 다른 원수들이 매우 부진한 반면에, 그는 영국군에게 패배의 치욕을 수차례 안겨줘 '스페인 전쟁 원수'라고 불렸다. 여담으로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은 오메라(o'mera) 박사에게 "가장 뛰어난 장군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굳이 꼽자면 쉬셰라고 답했다. 또한 한 때는 [[앙드레 마세나]]라고 생각했었지만 마세나는 [[백일천하]] 때 나폴레옹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기에 그를 거의 죽은 사람으로 간주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분류:프랑스 제국 원수]][[분류:프랑스의 공작]][[분류:1770년 출생]][[분류:1826년 사망]][[분류:페르 라셰즈 묘지 안장자]][[분류:리옹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