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에콰도르]][[분류:외교 정책]] [include(틀:상위 문서, top1=하이메 롤도스)] || [[파일:HMBCN2MBFVA7JGXX4JJWMX5364.jpg |width=365%]] || ||롤도스 독트린을 주창하는 대표적 인물 [[후안 과이도]]|| [목차] === 개요 === 롤도스 독트린은 에콰도르가 [[하이메 롤도스]]의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안데스 공동체]]에 제안한 인권 존중 교리이며 [[1980년]] [[9월 11일]]에 서명한 리오밤바 행동 헌장에 반영되어 있다.[* 리오밤바는 에콰도르에 위치한 지역 이름이며 이 지역에서 서명했다하여 리오밤바 행동 헌장이다.롤도스 독트린도 이 곳에서 써졌다.] === 내용 === >1조 국민의 자기결정 원칙, 내정 불간섭의 원칙,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편견 없이 대중적 추출과 정의된 참여적 성격의 민주주의에서 생성된 하위 지역적 정치 질서를 추구한다.[* 한마디로 서로 건들지 말고 각자 알아서 잘 지내자.] >2조 [[사회 정의]]의 원칙에 영감을 받아 여전히 존재하는 불공정한 구조의 변화를 허용하는 새로운 종합 개발 계획을 촉진한다. >3조 인간적,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에 대한 존중은[* 한 마디로 [[인권]]을 말한다.] 안데스 공동체 국가의 내부 행동의 기본 규범을 구성하며, 이를 방어하는 것은 국가가 따라야 하는 국제적 의무라는 엄숙한 약속을 반복한다.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는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인권]]이 무시될 경우 그 나라의 국정에 간섭할 수 있다는 뜻이다.] >4조 [[국제법]]에 규정된 평화적 절차를 통해 안데스 공동체 소속 국가 또는 안데스 공동체 소속 국가 간에 존재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해결을 촉진한다. >5조 아야쿠초 선언에서[* 페루의 [[아야쿠초]]에서 [[1970년대]]에 발표한 선언. [[시몬 볼리바르]]가 [[페루 독립 전쟁]]을 끝냈던 마지막 전투 아야쿠초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발표된 선언문이다. 내용은 대충 같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끼리 전쟁 하지 말고 서로 서로 돕고 살자는 얘기다.] 영감을 받아 일반적이고 완전한 군비의 축소에 효과적인 기여를 하고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위한 자원을 자유롭게 하는 하위 지역의 군비의 축소 과정을 촉진한다. >6조 국제 공존의 실질적인 규범으로서 천연자원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국가의 주권적 권리를 재확인한다. >7조 안데스 공동체의 가입 국가 중 한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위협이나 경제적 강압에 맞서 공동 경제 안보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연대하여 행동한다. >8조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는 정치 및 경제 문제, 특히 평화와 안보, 신국제경제질서에[* [[1970년대]]에 걸쳐 [[유엔무역개발회의]]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이 제안한 국제경제체제로 개발도상국에 [[선진국]]들이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관한 문제를 다른 라틴 아메리카 및 [[제3세계]] 국가와 협력하여 협상하는데 안데스 공동체 소속 국가의 더 큰 참여를 촉진한다. >9조 특히 경제, 사회, 노동, 교육, 문화, 기술 및 보건 분야에서 공통 정책을 채택하고 각 국가 법률을 근사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10조 국제 사회 정의의 원칙에 영감을 받아 카르타헤나 협정에서[* [[1969년]] [[5월 16일]] [[카르타헤나]]에서 서명된 국제법 조약으로, 이로 인해 안데스 공동체가 창설된다. 그러나 여러 의견의 불협으로 인해 성과 없이 파기될 수 밖에 없었다.] 확립된 상대적인 경제 발전이 덜한 국가에 대한 우대를 포함하여 회원국에 대해 공평한 혜택이 파생되는 방식으로 안데스 통합 계획의 도구를 적용한다. >11조 [[UN]] 기구 헌장에서 확립된 기본 원칙을 다른 국제 문서와 함께 적용하겠다는 안데스 약속을 준수함으로써 자유, 사회 정의 및 민주주의의 타당성에 기여한다. 미주기구 헌장,[* [[1948년]] [[4월 30일]] [[보고타]]에서 서명된 조약. 이 조약을 바탕으로 [[미주기구]]가 창설됐다.] [[세계 인권 선언]]; 국가의 경제적 권리와 의무 헌장;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확립에 관한 선언문에서; 1979년 5월 28일 카르타헤나 위임통치; 1979년 8월 11일 키토 선언; 1979년 10월 1일의 파나마법; 그리고 1980년 7월 29일 리마 선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