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명''' ||<(> 로베르 드 보드리쿠르[br]Robert de Baudricourt || ||<-2> '''생몰년도''' ||<(> 미상 ~ [[1454년]] || ||<-2> '''출생지''' ||<(> [[프랑스 왕국]] 보드리쿠르 || ||<-2> '''사망지''' ||<(> [[프랑스 왕국]] 보드리쿠르 || ||<-2> '''아버지''' ||<(> 리보 드 보드리쿠르 || ||<-2> '''어머니''' ||<(> 마르그리트 드 오네이 || ||<-2> '''아내''' ||<(> 카트린 드 산시, 알레아르드 드 샹블, 알려지지 않은 여인. || ||<-2> '''자녀''' ||<(> 본, 자케트, 잔, 장, 마르그리트, 알릭스, 리보 || ||<-2> '''직위''' ||<(> 보드리쿠르, 블레즈, 뷔시, 소르시의 영주 ||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잔 다르크]]를 처음 대면한 뒤 [[샤를 7세|도팽 샤를]]이 있는 시농으로 보내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 생애 == 보드리쿠르, 블레즈, 뷔시, 소르시의 영주로, 아버지 리보 드 보드리쿠르는 [[기사(역사)|기사]]이자 왕의 시종이었고, 어머니 마르그리트 드 오네이는 프랑스 왕세자 [[루이 10세|루이]]의 아내였던 마르그리트 드 부르고뉴와 넬탑에서 불륜 관계를 맺다가 나중에 발각되어 형제 고티에 드 오네이[* 루이 왕세자의 동생인 [[샤를 4세|샤를 왕자]]의 아내인 블랑슈 드 부르고뉴와 불륜 관계를 맺었다.]와 함께 [[교수척장분지형]]에 처해진 필리프 드 오네이의 손녀이다. 1415년 프랑스 왕국에 직접 종속된 바르 공국과 [[로렌 공국]]의 경계에 있는 보쿨뢰르 성의 대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앙주 공작 [[앙주의 르네]]의 외교, 군사 고문이자 시종장을 역임했다. 1420년부터 1429년까지 친구이자 동맹인 코메르시의 영주 로베르 드 사르브뤼크의 도움을 받으며 잉글랜드-부르고뉴 연합군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 그러던 1428년 5월, 16세의 소녀 [[잔 다르크]]가 그를 찾아와서 시농에 있는 [[샤를 7세|도팽 샤를]]을 만날 수 있도록 수행원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로베르는 이 평범한 농부의 딸이 미쳤다고 여겨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중에는 문전박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와서 설득했고, 보쿨뢰르 주민들에게 호소해 그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로베르는 잔이 마귀가 씌었다고 의심하고 [[구마]] 의식을 할 수 있는 [[사제]]를 보내 시험해 보게 했다. 이때 잔은 사제를 반갑게 맞아들여 [[고해성사]]를 해 의심을 풀게 했다. 여기에 장 드 메스와 베르트랑 드 플뤼니를 비롯한 기사들이 잔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로베르는 잔을 괜히 보냈다가 도팽 샤를로부터 질책받을 것을 우려해 보내길 꺼렸다. 그러던 중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 근처에서 도팽을 따르는 군대가 큰 패배를 겪을 것이며, 자신을 보내지 않으면 오를레앙을 잃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얼마 후 [[루브레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참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로베르는 마음이 흔들렸다. 이 시기에 로렌 공작 샤를 2세가 잔에게 호기심을 품었다. 그는 잔에게 안전통행증을 발급하고 그녀를 직접 만났다. 그는 어린 소녀가 프랑스를 구원하리라는 오래된 예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잔과 대화를 나눈 뒤 잔의 모험을 응원하며 말 한 필과 여비를 주었다. 로렌 공작까지 잔을 지지하자, 그는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1429년 2월, 로베르는 시농에 전령을 보내 잔 다르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뒤, 잔을 위해 추천서를 써주었으며, 장검과 말 한 필을 더 사주고 호위대까지 제공했다. 일부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잔 다르크를 보내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가라! 가서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와라!" 이후에도 보쿨뢰르 성주이자 앙주의 르네의 시종장을 맡고 있던 그는 1431년 앙주의 르네와 보데몽 백작 앙투안 드 보데몽이 로렌의 상속을 놓고 전쟁을 벌였을 때 참여했다가 그해 7월 2일 볼뉴빌 전투에서 참패를 면치 못하고 가까스로 빠져나갔다. 이후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으나 1454년 2월에서 8월 사이에 보드리쿠르에서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 가족 == * 카트린 드 산시 * 본 드 보드리쿠르(1425 ~ 1474): 에르하르트 폰 짐니히의 부인. * 알레아르드 드 샹블: 마농빌의 여성영주. * 자케트 드 보드리쿠르(1425 ~ 1477): 하루에 영주이자 [[루이 11세]]의 고문 및 시종인 앙리 드 레농쿠르의 부인. * 잔 드 보드리쿠르(1433 ~ 1453): 보베, 라로슈기용의 영주, 앙주와 브로방스의 세네샬을 역임한 루이 드 보베의 부인. * 장 드 보드리쿠르(1433 ~ 1499): 보드리쿠르, 블레즈, 라 포쉬, 소루쉬 영주, 1480년 부르고뉴 총독. * 마르그리트 드 보드리쿠르(1433/1438 ~ 1501): 작센퐁텐 남작 조프루아 드 생밸린과 초혼, 기사 클로드 드 브라반트와 재혼. 그녀가 첫 결혼에서 얻은 딸 카트린 드 생벨린이 나중에 보드리쿠르 가문의 재산 대부분을 상속받았다. * 알릭스 드 보드리쿠르: 시몽 드 바솜비에르의 부인. * 알려지지 않은 여인 * 리보 드 보드리쿠르(? ~ 1489년 이전): 딸 클로드 드 보드리쿠르는 루브로이와 오트리의 영주 클로드 드 루브로이의 부인이 되었다. [[분류:프랑스의 귀족]][[분류:프랑스의 군인]][[분류:1454년 사망]][[분류:보주 출신 인물]][[분류:백년전쟁/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