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jesda.com/bobeaton.jpg]] '''Robert James "Bob" Eaton''' [목차] == 개요 == 로버트 제임스 이튼, 줄여서 밥 이튼(Bob Eaton)은 [[미국]]의 전 [[기업인]]이다. == 생애 및 상세 == 1940년 2월에 [[미국]] [[콜로라도 주]] 부에나비스타(Buena Vista)에서 태어났으며, [[캔자스]] 주 아칸소 시티(Arkansas City)에서 생활했다. 1963년에 [[캔자스 대학교]]의 공학과에서 B.S 학위를 따 냈으며,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대학생 협회인 카파 시그마 협회(Kappa Sigma Fraternity)에서 활동했다. [[제너럴 모터스|GM]]에 입사한 그는 1973년에 수석엔지니어로 승격했으며, [[제너럴 모터스|GM]]의 새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인 X-바디 플랫폼[* [[쉐보레 사이테이션]], [[폰티악 피닉스]], [[올즈모빌 오메가]], [[뷰익 스카이락]]에 적용되었다.]의 설계를 지휘한 경력이 있다. 1982년에는 [[제너럴 모터스|GM]] 사내의 선행엔지니어링(Advanced Engineering) 부서의 부사장으로 자리잡았으며, 1988년에 [[제너럴 모터스|GM]] 유럽지부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제너럴 모터스|GM]] 유럽지부에서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고, 마침 [[크라이슬러]] 내에서도 [[리 아이아코카]]가 후계자를 찾는 과정에서 [[밥 루츠]]를 대신할 사람을 찾다가 이튼을 [[크라이슬러]] 내부로 1993년에 [[스카우트]]했다. 이 때 [[밥 루츠]]는 [[크라이슬러]]의 부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처음에는 [[밥 루츠]]가 실망해서 퇴사를 결심하려다가 이튼의 설득으로 계속 일하게 되었다.[* 이튼은 또한 루츠와 자신의 역할이 가능한 한 겹치지 않도록 했다.] [[크라이슬러]]의 회장으로서 밥 이튼은 수익성을 중점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다. [[밥 루츠]]가 [[프랑수아 카스탱]][* [[AMC]]/[[지프]]와 [[르노]] 출신의 프랑스계 임원으로, [[르노 9]]/[[르노 11|11]]과 [[지프 체로키]], [[닷지 바이퍼]], [[이글 비전|크라이슬러 비전]]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을 비롯한 개발 팀 임원들과 같이 상품성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한편, 이튼은 부품 설계부터 납품업체 선정까지 이르는 개발 과정에서의 철저한 비용 절감을 지향해 회사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려고 했다.([[http://www.allpar.com/ed/2006/purge.html|#]]) 이 때문에 [[크라이슬러]]는 디자인과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선보이면서도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 중 이익을 많이 낼 수 있었고, 언론에서도 크라이슬러와 함께 이튼과 루츠를 꾸준히 조명해왔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측의 내구성과 품질에서 비용이 과도하게 깎이다 보니 품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때문에 제품의 평판이 퇴색하고 보증수리 비용이 급증하는 문제가 생겼다. ([[http://www.allpar.com/neon/engineering.html|##]]) 동시에 그는 핵심 인력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도 신경을 썼고, 목표를 주되 방법을 임원들 각자에게 맡기는 "참여주의식 경영", 그리고 "팀워크"를 내세우는가하면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해 의욕을 불어넣는 데 기여했다.([[http://blog.naver.com/junbeomkim/150034169580|###]]) 밥 이튼은 또한 1998년에 [[다임러 AG]]와 합병을 주도해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창설에 기여하기도 했다. 마침 이튼은 전 세계의 자동차 생산대수가 수요를 넘어가고, 인터넷과 전화가 주요 판매 체계로 자리잡아가고, 시판용 하이브리드 및 연료전지차의 개발 활성화와 같은 급변하는 정세를 크라이슬러가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크라이슬러를 2000년까지 세계 일류 자동차 회사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적까지 있었다.([[http://blog.naver.com/woosa7/20019794661|#]]/[[http://www.allpar.com/history/general.html|##]]) 거기에 1995년에는 [[리 아이아코카]]가 억만장자인 [[커크 커코리언]]과 손을 잡고 회장 자리를 되찾으려고 하는 사건까지 벌어지자, 그는 마침 미국 시장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상용차 업체들을 인수해 가던 [[다임러 AG]]와 손을 잡고 회사를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크라이슬러다임러벤츠", 혹은 "크라이슬러다임러"로 회사를 명명하고 싶어했지만 다임러 측의 제안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었고, 그는 1998년에 회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이튼은 2000년 9월에 [[쉐브론]](Chevron)의 이사진으로 뽑혔으며, 인터네셔널 페이퍼(International Paper)의 이사진으로도 자리잡은 적이 있었다. 2003년 기준으로는 [[플로리다]] 주 네이플스(Naples)에서 배우자와 같이 살고 있으며, 캔자스 대학교 기금 협회(University of Kansas Endowment Association)의 이사진으로 남아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창설로 회사를 말아먹었다"는 이유로 최악의 경영진 중 하나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하고 있으며, ([[http://jalopnik.com/the-ten-worst-auto-executives-ever-1571853848|#]]/[[http://fortune.com/2013/04/03/historys-10-worst-auto-chiefs/|##]]) 1990년대 [[크라이슬러]] 차량들의 품질 문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밥 루츠]]는 2013년에 새 자서전을 내면서, 이튼에 대해서 "다임러크라이슬러 창립 건으로 부당하게 평판을 날려먹었다 정도지, 경험있고 겸손하며 자신감 있는 사람이었다"며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했었다.([[http://fortune.com/2013/06/04/straight-talk-from-bob-lutz-on-6-auto-ceos/|###]]/[[http://www.autonews.com/article/20130506/OEM02/305069965/in-lutzs-view-eaton-did-a-bang-up-job-at-Chrysler|####]]) [[리 아이아코카]]는 은퇴 후 벌어진 일들을 회상하며 "로버트 이튼 말고, [[밥 루츠]]에게 회장 자리를 주었어야 했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분류:미국의 남성 기업인]][[분류:1940년 출생]][[분류:채피 카운티 출신 인물]][[분류:캔자스 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