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대한 우크라이나인)] ||<-2> '''{{{+1 레샤 우크라인카}}}[br]Леся Українка'''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Lesya_Ukrainka_portrait.jpg|width=100%]]}}} || [목차] [clearfix] === 개요 === 1871 ~ 1913 본명 : 라리사 페트리우나 코사치크빗카(Лариса Петрівна Косач-Квітка) [[우크라이나]]의 시인, 작가. === 생애 === 1871년 작가인 올하 페트리우나 코사치의 딸로 태어났다. [[우크라이나어]] 외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불가리아어]] 등 '''10개(!)''' 국어를 이해할 줄 알았으며 '''8세(!)''' 때에 첫 시를 발표했다. 1879년 가족과 루츠크로 이주했으며 1884년 [[르비우|리비우]]에서 발행된 문학 잡지에 <은방울꽃>이라는 제목의 시를 게재하면서 문학계에 등단했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타라스 셰우첸코]], [[이반 프란코]]의 영향을 받았으며 시인의 외로움, 사회적 소외감, 우크라이나 민족의 자유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 또 우크라인카는 [[러시아 제국]] [[차르]] 전제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의 [[마르크스주의]]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1902년에는 《[[공산당 선언]]》을 우크라이나어로 번역했다. 결국 1907년에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었고 석방된 뒤에도 러시아 경찰의 감시를 계속 받았으며 5년 후 휴양지였던 [[조지아]]의 수라미에서 질병으로 사망했다. 시집, 서사시, 희곡 등의 작품을 남겼다. === 기타 === [[흐리우냐|우크라이나 200흐리우냐]] 지폐의 인물이다. 사회주의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소련 시절에도 우크라이나의 문학위인으로 알아주었던지라 러시아 곳곳에도 레샤 우크라인카의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는데, [[드니프로 아파트 미사일 공격]]이 벌어져 다수의 민간인들이 사망하자, 익명의 러시아인들이 몰래 이 기념비에 꽃을 놓아 추모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러시아 경찰들은 미리 그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기념비에 꽃을 놓는 순간을 기다려 이 사람들을 체포하고 있다고 한다. [[분류:우크라이나의 작가]][[분류:1871년 출생]][[분류:1913년 사망]][[분류:화폐의 인물]][[분류:지토미르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