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fff {{{+1 '''랜디 듀크 커닝햄'''}}}[br]'''Randy Duke Cunningham'''}}} || ||<|2> '''출생''' ||[[1941년]] [[12월 8일]] ~ ||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 || '''복무''' ||[[미합중국 해군]](1967~1987)|| || '''최종 계급''' ||[[미합중국 해군|해군]] [[중령#s-3|중령]][* Commander] || || '''주요 이력''' ||미 해군 [[에이스(전투조종사)|에이스 파일럿]] || || '''주요 참전''' ||[[베트남 전쟁]] || || '''주요 서훈''' ||해군 십자 훈장 [br] 은성 훈장 (2회) [br] 상이군인훈장 ([[퍼플 하트]]) [br] 항공 훈장 (15회) || [목차] [clearfix] == 개요 == || [[파일:Warner_cunningham_driscoll_zumwalt.jpg]] || || 왼쪽부터 당시 해군장관이었던 존 워너, 랜디 커닝햄, 그의 RIO 윌리엄 드리스콜, 당시 해군참모총장 [[엘모 줌왈트]] || 랜디 '듀크' 커닝햄은 [[미합중국 해군]] 항공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유일한 에이스'''이자, 전역 후 [[미국 하원|미합중국 연방 하원의원]]을 8선 역임했지만, 대규모 비리 사건을 저질러 명예를 모두 잃고 의원직 사임, 징역 8년의 수감생활을 겪었다. == 생애 == === 군 입대전 ===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미주리 대학교]]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고등학교 체육교사 생활을 하다가 1967년 미합중국 해군에 입대, 항공장교가 되었다. === [[베트남 전쟁]] === 항공장교가 된 후 주 기종을 [[F-4 팬텀 II]]로 받았으며, 베트남 전쟁에 파견된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USS 아메리카에 배치되어 첫 전투 비행을 했다. 그후 본토로 배치되어 후일 [[탑건]] 스쿨이 되는 해군전투기병기학교(Fighter Weapons School)과정을 수료했다. 1971년, 해군 대위 커닝햄은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USS 컨스텔레이션의 [[F-4 팬텀 II]] 비행대 VF-96 '파이팅 팰콘즈'에 배치되어 다시 베트남 전장으로 향했다. RIO(후방석 조종사)[* WSO(Weapon system officer, 화기관제사)라고도 칭하나 주로 해군보다는 미 공군식 별칭으로 'Wizzo'라 발음한다. 복좌식 항공기의 후방석에 탑승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세부적인 임무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윌리엄 '아이리시' 드리스콜 중위와 한 팀이 된 그는 1972년 1월 19일, [[MiG-21]] 한 대를 [[AIM-9]] 미사일로 격추하면서 첫 격추 스코어를 올렸다. [[1972년]]에 베트남전 최후의 대규모 항공작전인 [[라인배커 작전]]이 발동되면서 공중전도 더 자주 벌어지게 되었다. 1972년 5월 8일, 커닝햄-드리스콜 콤비는 [[A-6]] 공격기 편대를 호위하던 작전 중 [[MiG-17]] 한대를 격추하여 두번째 킬 스코어를 올렸다. ==== 에이스의 날 ==== || [[파일:F-4_USN_56.jpg|width=100%]] || || F-4J "Showtime 100" 일련번호 15-5800 [br] VF-96 USS 컨스텔레이션 [br] 1972년 5월 10일 MiG-17 3기 격추 || || [[파일:쇼타임100 하세가와.jpg]] || || 커닝햄의 마지막 교전을 다룬 그림. [br] [[하세가와(모형 메이커)]] 플라모델 박스아트이다. || 1972년 5월 10일, 커닝햄-드리스콜 콤비는 본래 VF-96 비행대장의 기체였던 콜사인 'Showtime 100' F-4J 전투기로 출격했다. 이날 미, 해공군은 북베트남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대규모 폭격작전을 발동하여 다수의 전투기, 공격기를 출격시켰으며, 이 공격대를 저지하기 위해 북베트남군도 다수의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날 미 공군에서도 [[스티브 리치]]대위가 첫 격추를 달성했지만 당시 격추기수 3기이던 로버트 로지 소령이 4기째 격추를 달성한 직후 격추당해 전사하고 그의 WSO이던 로저 로처 대위는 탈출해 23일간 북베트남군의 눈을 피해 정글을 헤매다가 미군에 구조되었다.] 당시 커닝햄 부대의 임무는 하이동 철도 폭격 임무였으며, 커닝햄의 전투기는 AIM-7 스패로우 2발, AIM-9 사이드와인더 4발, 록아이 클러스터 폭탄 6발로 무장한 상태였는데 록아이 6발을 목표 지점에 투하한 후 함께 출격한 A-7 공격기 편대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MiG-17 한 대가 공격대에 달려들었고 커닝햄은 이 MiG-17과 싸워 격추시켰다. 그때 또 다른 MiG-17이 동료 F-4를 추격하는 것을 보고 그 미그를 추격해 4번째 킬 스코어를 올렸다. 그때 또 다른 [[MiG-17]]이 끼어들었다. 그 적기는 녹색과 갈색의 위장무늬를 하고, 기수에 13개의 킬마크와 3020이라는 기체번호가 그려져 있었다. 커닝햄-드리스콜 콤비는 그 기체가 미군들 사이에 소문으로 퍼진 북베트남의 에이스 [[무덤 대령]]일 것으로 짐작했고, 과연 그 MiG-17은 뛰어난 기동성으로 커닝햄을 거의 잡을 뻔 했다. 그러나 강력한 엔진을 가진 팬텀 쪽이 에너지 파이팅에서 우위를 점했고, 결국 커닝햄은 그 MiG-17을 격추하여 다섯번째 킬 스코어를 올리고 [[에이스(전투조종사)|에이스]] 파일럿에 등극했다. 그러나 모함으로 귀환 도중 북베트남군의 [[SA-2]] 지대공미사일이 날아왔고, '쇼타임 100'은 적기를 격추한 전투기들이 모함 상공에서 행하는 '빅토리 롤'도 못해보고 결국 격추되고 말았다. 커닝햄과 드리스콜은 비상탈출에 성공하여 미 해군 구조헬기에 구조되어 모함으로 돌아왔으며, 미 해군의 유일한 베트남 전쟁 에이스로 영웅시되었고 해군십자훈장(Navy Cross)을 받았다. 베트남전 유이의 에이스인 공군의 [[스티브 리치]]보다 더 유명세를 탔는데, 차곡차곡 킬 스코어를 쌓아간 리치에 비해 커닝햄은 5월 10일 하루에 무려 3기의 적기를 격추했으며 그 중 1기는 적 에이스였다는 점에서 더 극적인 요소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커닝햄은 [[탑건]] 교관 직을 맡았으며, 탑건에서 활동하는 가상적 비행대 VF-126 비행대장을 거쳐 1987년 해군 중령으로 최종 전역했다. || [[파일:12515_F-4J_main2.jpg]] || || [[아카데미과학]] 프라모델 || 커닝햄의 탑승기 '쇼타임 100'은 수많은 회사에서 모형으로 나왔으며, 마지막 상대인 MiG-17 3020번기의 모형도 많은 회사에서 출시되어 있다. || [[파일:attachment/게임북/info.jpg]] || 또한 커닝햄의 5월 10일 전투비행은 일본 코분샤(光文社)에서 [[게임북]]으로 출간되었으며 한국에도 번역 출판되었다. === 연방 하원의원 === 군에서 전역한 후 한동안 영화, TV 등에서 군사자문으로 활동하다가, 공화당에 입당하여 1991년 샌디에고 지역구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8선 의원으로 공화당 중진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실제 정책 활동을 활발히 한 편이고 그만큼 비판도 많았다. 우선 그는 [[사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정치인 중 하나였던 탓에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샥스핀]] 제조 목적으로 [[상어]]의 지느러미를 자르는 행위에 대한 금지 법안인 'Shark Finning Act'를 의회에 통과시키는 데에 거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부분에선 좌우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였지만 문제는 '''상어 지느러미를 자른 자에게 사형을!'''을 일괄적으로 주장하여 비난을 다소 받기도 했다. 미국 내 수꼴 집단인 [[티파티]]와 죽이 아주 잘 맞는 편이었으며 국기 훼손 및 모독에 대한 법안, 이른 바 'Flag Desecration Act' 법안을 일부 공화당 의원들과 밀어붙인 적이 있다. 심지어는 국기를 모독한 죄에 대해서도 최고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했다. 물론, 연방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하술한 비리 사건으로 인해 그는 전쟁영웅이자 나름 잘 나가던 정치인에서 범죄자로 전락한 불명예스런 인물이며 미 해군 출신자에게 그의 이름을 거론했다가는 별로 좋은 소리 못 들을 확률이 높다. === 비리 사건 === 2005년, 커닝햄은 자신의 집을 한 군납업자에게 팔았는데,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판 것을 언론이 알게 되면서 주택 매매를 가장한 뇌물이 아닌가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 조사 결과 드러난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커닝햄은 하원 중진이고 전쟁영웅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악용해, 미국 국방부와 계약을 맺으려는 군납업자들에게 브로커 노릇을 해주고 한 건당 최소 14만 달러, 최고 80만 달러라는 거액의 뇌물을 받아왔던 것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0&aid=0000338926|#]] 심지어는 이 뇌물 거래에 포터 고스 당시 [[CIA]] 국장까지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고스 국장이 사임했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290488|#]]. 커닝햄 본인도 2005년 하원의원직을 사임한 후 2006년 재판에서 징역 8년 4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235775|#]] 2013년 6월, 8년 형기를 꽉 채우고 출소했으며, 비리로 모은 재산도 전부 추징되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아칸소에 거주하고 있으며, 2021년 1월 20일 랜디 커닝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조건부 사면을 받게되었다. [[분류:미국의 군인]][[분류:베트남 전쟁/군인]][[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1941년 출생]][[분류:로스앤젤레스 출신 인물]][[분류:미주리 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