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관련 문서, top1=태조(레), top2=똣동-쭉동 전투)] [include(틀:명나라의 대외전쟁)] ||<-3> {{{+1 '''남산 봉기[br]藍山起義'''}}} || |||||| [[파일:람썬 봉기.png]] || || '''시기''' ||<-2>1418년 ~ 1427년 || || '''장소''' ||<-2>[[베트남]] 전역 || || '''원인''' ||<-2>[[명나라]]의 대월 지배 || || '''교전국''' ||{{{+1 [[후 레 왕조|남산기의군]]}}} ||{{{+1 [[명나라|명(明)]]}}} || || '''지휘관''' ||'''[[레러이]]'''[br]딘레[br]응우옌씨[br]리찌엔[br]도비[br]여래[br][[진고(대월)|진고]][br]여석 ||'''[[왕통]]'''[br]참장[br]마영[br]진흡[br]이량[br]이안[br]왕안로[br]이경 || || '''병력''' ||수 천명 ||약 10만 명 || ||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 || '''결과''' ||<-2>여리 세력의 대승, 대월의 독립. || || '''영향''' ||<-2>'''대월 재건''' || [목차] [clearfix] == 개요 == [[교지(명)|명나라의 대월 식민 지배]]에 맞서 [[레러이]]를 비롯한 베트남 호족들이 일으킨 대 항명 봉기. 1418년부터 1427년까지 지속되었다. == 상세 == === 전개 === 1400년 [[쩐 왕조]]의 [[소제(쩐)|소제]]는 권신이자 외척인 [[호꾸이리]]에게 황위를 찬탈당했고 이를 계기로 베트남은 왕조가 교체되는 찬탈극이 일어났다. 호꾸이리가 즉위함에 따라 이 시기의 대월을 [[호 왕조]]라 구분한다. 명목상 주군국인 [[명나라]]의 [[영락제]]는 호꾸이리의 찬탈을 명분으로 베트남을 침공했고 패배한 호꾸이리와 그의 아들 [[호한트엉]]은 끌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명은 베트남을 주(州) 단위로 편입해 [[교지(명)|교지]]라 명명했는데 이때부터 대대적인 베트남인 탄압 정책을 펼쳤다. === 항쟁 시기 === 명나라의 가혹한 세금과 착취, 강제 동화 정책, 무자비한 학살로 베트남인들은 불만이 쌓여가다가 나중에는 참다못해 폭발하기 시작했고 교지엔 수많은 폭동이 일어났다. 대부분은 명군에게 진압되었으나 단 하나, 1418년 2월 7일 지방의 호족 출신이였던 [[태조(레)|레러이]]가 평정왕(平定王)을 자칭하고 모든 반명 폭도들을 결집하고 명과의 대전쟁을 선언한다. 레러이 세력은 처음에는 전면전으로 싸웠으나 명군의 반격으로 참패하여, 결국 [[게릴라]]로 명군과 맞섰다. 이는 당시 명군이 레러이 세력보다 수와 질적으로 압도적이였기에 전면전에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아 베트남의 습한 기후, 상대적으로 해박한 지리 정보로 맞서는게 효율적이였기 때문이다. 낙수로 유인해 복병으로 명군을 물리친게 첫 승리였고 영산(靈山), 남산을 거점으로 명군과 대치했다. 이후 예안에 주둔하던 명군을 격퇴하고 서서히 대월 고토를 수복해갔으며 결정적으로 1426년 [[똣동-쭉동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통]]에게 조서를 받고 멸망한 [[쩐 왕조]]의 후예로 추정되는 [[진고(대월)|쩐까오]]를 황제로 세워 명나라에게 책봉을 요구한다. 명은 결국 교지를 포기하고 쩐까오를 안남국왕에 정식 책봉함으로써 남산봉기는 종결되었다. == 참고 항목 == * [[https://zh.wikipedia.org/wiki/%E8%93%9D%E5%B1%B1%E8%B5%B7%E4%B9%89|蓝山起义]] == 관련 항목 == * [[명월전쟁]] * [[똣동-쭉동 전투]] * [[교지(명)]] * [[후 쩐 왕조]] * [[호 왕조]] * [[후 레 왕조]] [[분류:명나라/전투]][[분류:베트남의 역사]][[분류:중국-베트남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