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 영화 감독]][[분류:뉴욕 시 출신 인물]][[분류:1887년 출생]][[분류:1980년 사망]][[분류:아일랜드계 미국인]][[분류:영국계 미국인]]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aoulwalsh.jpg|width=100%]]}}} || '''Raoul Walsh''' (1887. 3. 11. - 1980. 12. 31) >여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월쉬의 작품은 들쭉날쭉하지만, 영화가 어떻든 간에 나는 그만의 솜씨, 보는 이에게 전파되는 그의 정신이 담기지 않은 월쉬의 영화는 본 기억이 없다. >------- >- 데이브 커 (영화 평론가)[* [[http://annual-parallax.blogspot.com/2013/04/2013-4.html|출처]]] [목차] == 개요 == <화이트 히트>, <하이 시에라>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감독. == 상세 == 188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원래는 연극 배우로 경력을 시작했다.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그리피스]]의 조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으며, 최초의 장편 영화로 알려진 <[[국가의 탄생]]>에서 [[존 윌크스 부스]]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데뷔 이후로 감독과 배우를 겸업하였으며, <새디 톰슨> 같은 작품에서는 감독과 동시에 주연을 맡기도 했다. 그렇지만 훗날 교통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은 월시는 그 이후로 평생 동안 안대를 차고 살았으며[* 이는 훗날 월시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그는 이로 인해 배우 일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로 완전히 감독으로 전업하게 된 월시는 자신의 대표작이 되는 일련의 액션 영화들을 만들었으며, 1930년 <빅 트레일>에서 무명 배우 [[존 웨인]][* [[존 포드]]가 이 작품을 보고 웨인을 <[[역마차(영화)|역마차]]>에 캐스팅한 뒤 웨인은 본격적으로 스타로 떠오른다.]을 발굴하기도 한다. 1964년 <먼 트럼펫>을 만든 이후 은퇴하였으며, 1980년 세상을 떠났다. 평생 동안 감독한 작품이 100편이 넘으며[* [[IMDb]] 기준 140편.], 이로 인해 작품 세계가 상당히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편이다. 비슷한 세대의 감독인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 등에 비해 재평가가 많이 늦은 편이다. 그런 탓인지 [[태그 갤러거]]나 [[하스미 시게히코]] 같은 지지자들이 비평문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지도는 앞의 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도 최근 시네필들에게 점점 주목받고 있는 편. 서부극, 갱스터 영화, 로맨틱 코미디, 전쟁 등 온갖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만들었으며, 대부분의 작품에서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한다. 가히 [[하워드 혹스]]에 비견될 정도. 일반인들에게는 [[빌헬름 비명]]의 원조로 더 유명할 것이다. [[빌헬름 비명]]이 월시의 영화 [[먼 북소리]]에서 나왔기 때문. == 여담 == * 동생 조지 월시[* George Frederick Walsh. 1889 - 1981.]도 배우로 활약했다. 무성영화 시대엔 탑 빌링을 받는 주연급이었으며, 유성영화 시대엔 조연으로 나왔다. [[스펜서 트레이시]], [[조앤 베넷]] 주연의 <미 앤 마이 갤>(1932), [[월러스 비어리]], 조지 래프트 주연의 (1933) 등 형 라울 월시가 감독한 작품들에도 출연한 바 있다. == 작품 목록 == 작품 수가 100편을 넘는 관계로 대표작만 서술한다. * <바그다드의 도둑> (1924) * <빅 트레일> (1930) * <미 앤 마이 갤> (1932) * <[[포효하는 20년대]]> (1939) * <그들은 밤에 달린다> (1940) * <하이 시에라> (1941) * <그들은 부츠를 신은 채로 죽었다> (1941) * <추적> (1947) * <[[화이트 히트]]> (1949) * <콜로라도 테리토리> (1949)[* <하이 시에라>의 리메이크작.] * <거인> (1955) * <나자와 사자>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