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갈리아 황제)] [include(틀:역대 로마 30인 참주)] ||<-2> [[파일:라엘리아누스.jpg|width=100%]] || || '''이름''' ||울피우스 코르넬리우스 라엘리아누스[br](Ulpius Cornelius Laelianus)|| || '''출생''' ||미상|| || '''사망''' ||[[269년]]|| || '''직위'''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사령관|| || '''반란 대상''' ||[[포스투무스]]||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반란자. [[갈리아 제국]] 황제 [[포스투무스]]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목숨을 잃었다. == 행적 == 기원은 전해지지 않으며 그를 언급한 고대 문헌들조차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거론한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그를 롤리아누스(Lolianus)라고 기술했고, [[아우렐리우스 빅토르]]는 그를 엘리아누스(Elianus)라고 지칭했다. 오직 고고학자들이 1800년대에 찾아낸 화폐에서만 그의 전체 이름이 확인된다. 이 화페에서는 '울피우스(Ulpius)'라는 명칭이 기재되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그가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 정복된 [[다키아]] 속주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트라야누스 황제의 이름 중 하나인 '울피우스'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269년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사령관이었던 그는 모군티아쿰(오늘날 [[독일]] [[마인츠]])에서 갈리아 제국 황제 [[포스투무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화폐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269년 2월이나 3월에 반란을 일으켰고 한 달 뒤에 콜로니아 아그리피나(오늘날 [[독일]] [[쾰른]])을 장악하고 동전을 추가로 생산했지만, 5월 또는 6월에 포스투무스에게 진압되었다고 한다. 포스투무스는 모군티아쿰을 공략하고 라엘리아누스를 붙잡아 처형했다. 그러나 모군티아쿰을 [[약탈]]하려는 부하들을 막았다가, 격분한 그들에게 피살되었다. 라엘리아누스는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가 기재한 갈리에누스 시대의 '30명의 참주'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분류:갈리아 황제]][[분류:269년 사망]][[분류:30인 참주(로마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