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러시아어 단어]] [[분류:스탈린 시대]][[분류:스탈린주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ekulakisation_in_the_USSR_V_3.jpg]] [목차] == 개요 == 라스쿨라치바니예(Раскулачивание)란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소련]]에서 일어난 [[쿨라크]](부농)와 그들의 가족에 대한 정치적 억압·체포·추방 그리고 처형을 일컫는 표현이다. 당시 부유한 농민들을 [[쿨라크]]로 낙인찍어 계급의 적으로 간주했는데 이로 인해 180만 이상의 농민이 강제추방을 당했다고 한다.[* Robert Conquest, Preface, The Great Terror: A Reassessment: 40th Anniversary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007. p. xvi][* Nicolas Werth, Karel Bartošek, Jean-Louis Panné, Jean-Louis Margolin, Andrzej Paczkowski, Stéphane Courtois, The Black Book of Communism: Crimes, Terror, Repression,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hardcover, 858 pages][* Lynne Viola The Unknown Gulag. The Lost World of Stalin's Special Settlements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hardback, 320 pages] == 상세 == 이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반혁명에 맞서 싸우고 농촌에까지 사회주의 이념을 이룩시키는 것이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책은 소련의 농업집단화를 이루는 것과 농민들을 국가의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을 동시에 성취하려 했다. 1929년 스탈린은 '''쿨라크 계급에 대한 청산'''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Stalin, a biography by Robert Service, page 266] 스탈린이 발표한 구체적인 내용을 아래에 적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제 쿨라크에 대해 단호한 공격을 가할 기회를 얻었다. 그들 계급을 제거하고, 할당량은 [[콜호스]](집단농장)와 소브호스(국영농장)에서의 생산으로 대체하겠다.[* Stalin, a biography by Robert Service, page 266][* 스탈린은 훗날 "[[대조국전쟁|독일과의 전쟁]]보다 [[라스쿨라치바니예|농민과의 전쟁]]이 더 두려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이는 확인되지 않은 야사이다. 허나 그가 얼마나 부농과의 투쟁을 중시했고 또 공포를 느꼈는지 알 만한 대목.] 이 정책에 대한 최종결정은 1930년 1월 "포괄적인 집단농장화 지역에서의 쿨라크와 그들의 가족에 대한 제거를 위한 조치"라는 결의안에서 공식화되었다. 모든 쿨라크는 세 가지 부류로 분류되었다. 1. 지방의 [[내무인민위원회|비밀 경찰]]의 결정으로 투옥되거나 처형될 부류들. 1. 재산을 몰수한 뒤 [[시베리아]],북방 지역,[[우랄 산맥]] 혹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추방될 부류들. 1.거주하는 집을 몰수하고, 같은 부류의 쿨라크들이 거주하는 지구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끌려갈 부류들.[* Robert Conquest, Preface, The Great Terror: A Reassessment: 40th Anniversary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007. p. xvi] 이러한 행각들은 소련 인민위원회의 경찰국의 비밀 경찰 국장인 [[https://en.m.wikipedia.org/wiki/Yefim_Yevdokimov|예핌 예브도키모프]](1891–1940)[* 사망 년도를 보면 눈치채겠지만 [[예조프]] 라인이었던 예브도키모프는 막상 자신도 1938년 체포되어 1940년 처형당함으로써 제 명에 못 죽었다. 이후 스탈린 격하기인 1956년 복권.]에 의해 조직 및 농민의 검거와 대량 처형을 감독하게 되었다. 이러한 쿨라크에 대한 탄압과 강제적인 집단농장화, 여기에 다른 탄압 정책 등이 결합되어 결국 소련의 대부분 지방에서 대기근이 발생해 [[홀로도모르]]의 500만 사망자를 포함해[* Robert Conquest, Preface, The Great Terror: A Reassessment: 40th Anniversary E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007. p. xvi] 적어도 '''1,450만'''의 농민이 죽었다고 한다. 이 여파는 소련 바깥에서도 알려졌는데 1941년 H.R 니커보커라는 미국의 기자가 쓴 책을 봐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최소로 잡을 경우의 추정치 500만 정도의... 한꺼번에 혹은 몇 년 이내에 죽어버렸다.(It is a conservative estimate to say that some 5,000,000 [kulaks] ... died at once, or within a few years.)[* Knickerbocker, H.R. (1941). [[https://books.google.co.kr/books?id=RwGwpIBHhgcC&lpg=PR2&pg=PA133&redir_esc=y&hl=ko#v=onepage&q&f=false|Is Tomorrow Hitler's? 200 Questions On the Battle of Mankind]]. Reynal & Hitchcock. pp. 13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