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모레아 군주)] ||<:> '''[[왕호|제호]]''' ||||<(> 없음 || ||<:> '''[[성씨|성]]''' ||||<(> 팔레올로고스(Παλαιολόγος) || ||<:> '''[[휘]]''' ||||<(> 디미트리오스 || ||<:> '''[[종교]]''' ||||<(> [[기독교]]([[정교회]]) || ||<:> '''생몰년도''' ||<(> 1407년 ~ 1470년 || ||<:> '''재위기간''' ||<(> 1453년 ~ 1460년 || [목차] == 개요 == [[마누일 2세]]의 [[아들]]이자, [[요안니스 8세]]와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의 [[형]]으로, [[모레아 전제군주국]]의 군주. 동시에 [[콘스탄티노스 11세|형]]이 남긴 [[동로마 제국|제국]]의 [[모레아 전제군주국|찌꺼기]]를 차지하기 위하여 [[원담|원수와 손잡고 형제를 공격한 매국노]]이다. == 생애 == 디미트리오스는 [[1407년]]에 [[로마 황제|동로마 황제]] [[마누일 2세]]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황제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형들이 많아서 제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평화로울 때 태어났다면 [[황족]]으로써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 안락한 삶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당시 제국이 처한 상황은 그에게 순탄치 않은 운명을 부여했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제후|제후국]]인 [[모레아 전제군주국]][* 모레아는 그 당시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가리키던 명칭이었고, 모레아의 군주는 '[[데스포티스]]'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테살로니키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사방에서 [[이슬람 제국|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에게 포위당하여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상태였다. 디미트리오스의 [[아버지]]인 마누일 2세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교황]]을 비롯한 서방 세력에게 원조를 요청하기도 하고, [[티무르]]의 [[앙카라 전투|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란 역부족이었다. [[1422년]] 디미트리오스는 마누일에게서 림노스 섬을 통치할 것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하고 [[1423년]] 헝가리의 [[지기스문트]]에게로 향했고, 맏형인 요안니스 8세가 황제로 즉위한 지 2년 후인 [[1427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왔다. 이후 [[1448년]]에 요안니스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자, 그는 황제의 자리를 놓고 다섯째 형인 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와 분쟁을 벌였는데, 콘스탄티노스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트 2세]]의 지지를 받아 '''콘스탄티노스 11세'''라는 이름으로 즉위했다. 그 후 디미트리오스는 정식으로 미스트라스의 [[데스포티스]]가 되었다. 콘스탄티노스는 [[마누일 2세|아버지]]와 [[요안니스 8세|형]]이 했던 것처럼 망해가는 제국을 살리기 위해 헌신했으나, [[1453년]]에 있었던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마지막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2,200여년을 이어온 로마 제국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 로마인들의 영토는 콤네노스 가문이 통치하고 있는 [[트라페준타 제국]]을 제외하면 디미트리오스와 토마스가 다스리던 모레아가 유일했으나, 두 형제는 [[로마 제국|제국]]의 잔재를 유지하지도 못했고, 콘스탄티노스처럼 명예롭게 죽지도 못했는데, 이는 그들의 내분 때문이었다. 그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하기는 커녕, 상대방을 축출하여 모레아의 단독 통치자가 되고, 명목상의 [[로마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내분을 벌였는데, [[1460년]]에 디미트리오스는 동생을 축출하기 위해 [[동로마 제국|조국]]과 [[콘스탄티노스 11세|형]]의 원수인 [[매국노|오스만 제국을 끌어들였다.]] 결국 술탄 [[메흐메트 2세]]와 디미트리오스의 연합군 앞에서 견디지 못한 토마스는 [[이탈리아 반도|이탈리아]]의 [[교황령]]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디미트리오스는 술탄의 제후로서 모레아의 단독 통치자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토사구팽]]당해 [[아드리아노플]]에서 연금되는 상태가 되어 모레아 전제군주국은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이후 디미트리오스는 권력에 눈이 멀어 나라를 팔아먹은 죄값인지, 연금당한 상태에서 10년 동안 비참하게 살다가, [[1470년]]에 사망했다. 반면, 토마스는 [[로마]]에서 [[교황]]의 보호를 받으며 비교적 안락한 삶을 보낼 수 있었는데, 비록 멸망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동로마를 [[로마 제국]]으로 여기는 것은 서방 세력도 마찬가지였기에, 교황은 그에게 명목상으로나마 황제 대접을 해주었다. 이후, 토마스는 [[1465년]]에 로마에서 사망했고, 명목상의 로마 황제 및 모레아 전제군주 칭호는 그의 아들인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가 승계했다. 그리고 안드레아스는 생계를 위해 황제의 칭호를 [[프랑스 왕국|프랑스]]의 [[샤를 8세]]와 [[스페인]]의 [[이사벨 1세]], [[페르난도 2세]] 등에게 팔아넘겼는데[* 안드레아스가 황제 자리까지 팔 정도로 가난해진 것은 그가 방탕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애초에 교황에게 지원받은 생활비가 너무 적어서,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학자]]들도 있다.], 칭호를 사들인 [[프랑스 왕국|프랑스]]와 [[스페인]]의 왕들은 실제로 칭제하지 않았기에, 허울 뿐인 [[로마 황제]] 자리는 [[작위 요구자|형식적인 계승권]]마저 흐지부지되며 소멸했다. [[분류:동로마 제위 요구자]][[분류:망국의 군주]][[분류:모레아 군주]][[분류:오스만 제국/인물]][[분류:팔레올로고스 가문]][[분류:1407년 출생]][[분류:147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