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압스부르고 가문]][[분류:스페인의 군인]][[분류:화폐의 인물]][[분류:서출]][[분류:1547년 출생]][[분류:1578년 사망]][[분류:네덜란드 총독]][[분류:레겐스부르크 출신 인물]]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펠리페 4세의 사생아, rd1=돈 후안 호세)] [include(틀:역대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총독)] ||<-2> '''{{{+1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br]Don Juan de Austria'''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n_Juan_d%27Austria_1.jpg|width=100%]]}}} || || '''이름'''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br](Juan de Austria)|| || '''출생''' ||[[1547년]] [[2월 24일]][br][[레겐스부르크]]|| || '''사망''' ||[[1578년]] [[10월 1일]] (31세)[br][[나뮈르]]|| || '''아버지''' ||[[카를 5세]]|| || '''어머니''' ||바바라 블룸베르크|| [목차] [clearfix] === 개요 === [[스페인]]의 장군. [[레판토 해전]]의 신성 동맹 함대 총사령관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해전 당시 만 24세.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의 [[사생아]]로 [[펠리페 2세]]의 이복동생이다. 다만, 펠리페 2세와는 나이 차이가 20살이나 나고 펠리페 2세의 장남인 [[돈 카를로스]]보다도 2살 어리다. === 생애 === 1546년 카를 5세가 평생 숙원이었던 개신도들의 박멸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기 위해 5만의 스페인 대군을 이끌고 16년 만에 독일에 왔을 때([[슈말칼덴 전쟁]], 1546년~1547년) 독일 현지([[레겐스부르크]])에서 만난 미모의 여인이자 [[오페라]] 가수인 바바라 블롬베르크(Barbara Blomberg)[[https://www.kleio.org/de/geschichte/stammtafeln/vip/barbara_blomberg/|#]]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독일인인 어머니와 떨어져 스페인에서 살았다. 유년기의 이름은 헤로니모(또는 헤로민). 성인이 될 때까지 어머니와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카를 5세와도 생전에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카를 5세가 스페인 왕위와 신성 로마 황위에서 물러나 수도원에서 은거하고 지내던 만년 시절이었으므로, 아버지 카를 5세를 만났을 때는 후안의 나이 10세쯤이었다. 성장한 이후에는 어땠는지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적어도 처음에는 이복형 펠리페 2세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부터 펠리페 2세가 후안에게 매우 친절했고 심지어는 사생아지만 왕족이라는 걸 알려주며 이후의 교육을 챙겨줄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심지어 후안이 전투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다 부상을 당하자, "너의 몸을 소중히 아낄 줄 알아야 한다."라고 꾸짖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낼 만큼, 펠리페 2세는 동생을 아꼈다.[* 다만 정식 왕족으로는 인정 받지 못했고 스페인의 대귀족 집단인 Grandee에 소속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후 젊은 나이에 [[레판토 해전]] 신성 동맹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선임되었고, 스페인과 베네치아, 그리고 교황청 간의 입장 차이를 잘 조율하였을 뿐 아니라, 오스만과의 전쟁에 소극적이었던 펠리페 2세의 뜻과 달리 적극적으로 전쟁을 이끌어 대승을 거두는 전공을 세웠다. 역사학자들은 돈 후안의 리더십 없이 신성 동맹 연합군의 승리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참고로 그가 총사령관으로서 대승을 이끌었던 레판토 해전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오스만 제국에게 그리스도교 세계가 거둔 첫번째 승리였다. 레판토 해전의 성과만 보더라도 장조카 [[돈 카를로스]]를 포함하는 펠리페 2세의 정식 후계자들보다 여러 면에서 능력이 좋았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이후엔 어쨌건 왕족이라는 특성상 궁중암투 의심을 받는 여러 사건들을 겪는 와중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재임하다 젊은 나이에 [[전염병]]으로 요절했다. 향년 31세. === 여담 === * 훗날에 만난 어머니 바바라는 그의 아버지가 카를 5세가 아니라 당시 자신이 만나던 다른 남자였다고 털어놓았다는 얘기가 있다. 외모상으로도 후안이 합스부르크 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합스부르크 혈통이라고 무조건 주걱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마리아 테레지아]]만 해도 주걱턱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합스부르크의 주걱턱은 친척 간의 결혼 때문에 형성된 것이므로 완전 외부의 유전정보를 가진 바바라가 섞이면서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 [[돈 카를로스]]가 자신의 아버지인 펠리페 2세를 살해하려 한 음모에 휘말릴 뻔한 적도 있다. 정신 장애를 앓던 돈 카를로스는 펠리페 2세를 살해하고 플랑드르의 왕이 되겠다는 계획을 삼촌인[* 삼촌이긴 하나 돈 카를로스가 돈 후안보다 두 살이 많았고 비슷한 나이대였던 탓에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돈 후안에게 밝히며 협조해달라고 말한 것. 그러나 이 역모는 돈 후안 본인이 펠리페 2세에게 먼저 알려서 수습할 수 있었다. * 과거 템페스트 용병단이라는 모바일 게임의[*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형 RPG이다.]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적이 있다. 다만 본명은 후안이 아닌 '프로스페로'로, 후안은 용병단장으로서 사용하는 가명이며 아버지 [[카를 5세]]는 [[메리 튜더]]로 인해 성정이 흐트러지고 나라가 피폐해지자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용병단을 조직한 것으로 묘사된다. 최후에는 카를 5세를 쓰러뜨리지만 메리 튜더는 엄청난 처세술을 보여 전쟁은 끝끝내 멈추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엔딩을 맞는다. * 원래는 [[스페인 해군]]의 이지스함 [[알바로 데 바잔급]]의 6번함 이름이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로 정해질 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6번함은 건조가 취소되고 말았다.[* 같이 취소된 5번함은 뒤늦게 건조를 재개해, 2000년대 후반에 취역했다. 5번함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