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Korean Air Flight 803 ||<-2> '''{{{#fff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1989년]] [[7월 27일]]|| || '''유형''' ||조종사 과실|| ||<-2>{{{#!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32.665057 13.181300 &zoom=9, 너비=100%, 높이=240px)]}}} || || '''발생 위치''' ||[[리비아]] [[트리폴리]]|| || '''기종''' ||[[DC-10#s-5.4|DC-10-30]]|| || '''운영사''' ||[[대한항공]]|| || '''기체 등록번호''' ||HL7328|| || '''출발지''' ||[[김포국제공항|서울 김포국제공항]]|| ||<|2> '''경유지''' ||[[태국]] [[돈므앙 국제공항|방콕 돈므앙 국제공항]]||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제다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 || '''도착지''' ||[[트리폴리 국제공항|리비아 트리폴리 국제공항]]|| ||<|2> '''탑승 인원''' ||승객: 182명|| ||승무원: 18명|| ||<|2> '''사망자''' ||항공기: 75명|| ||지상: 4명|| || '''생존자''' ||125명|| [목차] [clearfix] == 개요 == [[파일:attachment/KE80301.jpg|width=295]] [[파일:attachment/KE80302.jpg|width=295]] [[파일:attachment/KE80303.jpg|width=295]] [[파일:attachment/KE80304.jpg|width=295]] 1989년 7월 27일 서울발 [[대한항공]] 803편 DC-10-30 여객기가 트리폴리 공항에 접근 중 추락한 사고.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200명 중 75명, 그리고 지상에 있던 4명 등 모두 79명이 숨졌다. == 사고 경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dfsd.jpg|width=100%]]}}} || || ▲ 사고 6개월 전 [[이타미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의 모습. [[https://flyteam.jp/photo/1495976|사진출처]] || 사고기는 [[미국]]의 [[맥도넬 더글라스]]사가 1973년 9월에 제작했고 125번째로 생산하였으며[* 시리얼 넘버는 47887.] 이듬해인 1974년 11월에 지금은 사라진 [[태국]]의 민영 항공사였던 에어 시암(에어 시암 시절 기체 등록부호는 HS-VGE)에 인도되었으며[[https://www.planespotters.net/airframe/mcdonnell-douglas-dc-10-30-hl7328-korean-air-lines/ej49l8|#]] 1977년 2월 [[대한항공]]이 중고로 3,450만 달러에 도입해 운항 중이었던 [[DC-10|DC-10-30]] 여객기(기체 등록부호 HL7328)였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9072800099214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9-07-28&officeId=00009&pageNo=14&printNo=7202&publishType=00020|「DC-10」어떤 기종인가]](1989년 7월 28일자 매일경제신문 14면).] 사고 이틀 전인 7월 27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태국]] [[돈므앙 국제공항|방콕]]과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제다]]를 경유하여 [[리비아]] [[트리폴리 국제공항|트리폴리]]까지 운항하는 정기 여객편이었다. 사고기는 트리폴리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접근 중 동쪽 활주로 끝 3.6km 전방에 있는 지상 장애물과 충돌한 뒤 대파되었다. 당시 활주로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서 시정 거리가 240m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후 [[블랙박스]] 분석 등을 통해 원인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사고기가 말썽이 많기로 악명 높은 [[DC-10]]이어서 기체 결함의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조종사가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 조종사는 기착지인 제다로부터 트리폴리 공항의 [[계기착륙장치]]가 고장난 상태였다는 항공 공시를 수신한 상태였다. 또 사고 20~17분 전 트리폴리 관제소로부터 시정이 800m에서 50m로 악화되어 있다는 기상정보를 제공받았으며 이에 따라 다른 항공기들은 인근 [[몰타]] 등으로 모두 회항한 상태였다. 이때는 시정이 1,600m 이상이 되어야 [[NDB]]와 육안에 의지하여 착륙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기 조종사들은 일단 NDB 방식으로 착륙을 강행하되 행여나 ILS가 작동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고도 200피트(60.96m)까지 강하해 본 뒤 여의치 않으면 복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ILS의 작동 여부와 활주로 확인 등에 신경쓴 나머지 계기판을 소홀히 하여 정상적인 강하 속도인 분당 700피트(213.4m)의 3배에 달하는 분당 2,000피트(609.6m)로 급강하하고 있었고 어어 하다가 복행할 기회를 놓친 채 지상물에 충돌해 버린 것이었다. 당시 기내에서는 "안 보입니다. 위험합니다", "좀더 내려가 보자. 그래도 안보이면 돌아가자" 등등의 대화가 오갔으며 사고 7.7초 전에는 [[GPWS]]가 작동하였다. 그러나 기장은 이미 무리한 착륙 강행으로 마음을 정하였으며 관성이 붙은 비행기가 재상승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보면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8년 후 같은 회사에서 일어난 참사]]'''와 놀랄 만큼 흡사한 패턴이다. 이는 물론 조종사 개인의 잘못도 크지만 근본적으로 당시 '''대한항공의 기업 풍토'''에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고기의 조종사는 사고가 나기 10년 전인 1979년에도 [[돈므앙 국제공항|방콕]]에 비가 퍼 붓자 다른 항공기들은 [[미얀마]] 등으로 회항했지만 착륙을 강행하여 무사히 착륙시킨 전력이 있었고 '역시 베테랑은 다르다'는 박수를 받았다던데... 그 때 '''규정을 어겨 가면서까지 착륙을 강행한''' 그를 징계했더라면 이 참사를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언론에서는 당시 군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민항기를 조종하면서도 '''[[똥군기|군인 정신을 못 버렸다]]'''고 꼬집기도 했다. 군인이라면 당연히 임무가 자신의 안위보다 우선이어야겠지만 민항기 조종사들은 아무리 적은 위험이라도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803편 사고가 일어나기 8일 전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가 터진 탓에 DC-10의 대한 거부감이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 뒷이야기 == * 803편의 승객과 승무원 199명 중 10명(리비아인 7명, 일본인 3명)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인이었으며 대부분 현지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었다. *사고 기체의 [[조종사]]들은 귀국 후 [[과실치사상죄|업무상과실치사상]] 및 항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형사절차)|구속]] 기소되었다. 제1심에서 김호준 [[비행기 기장|기장]]은 [[금고(형벌)|금고]]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최재홍 [[부기장]]과 현규환 [[항공 기관사]]도 각각 [[집행유예]] 등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거쳐 확정되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데 왜냐하면 사고를 유발한 조종사들은 대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형법에 따른 처벌이 이루어지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사고의 경우는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음에도 조종사들이 생존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된 드문 사례이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당시 [[현대건설]] 전무)이 [[리비아]] 발전소 건설 관련으로 전력청 장관을 만나는 출장을 가기 위해 사고기에 탑승했다가 생존했으나 한쪽 눈 주위 근육이 떨리는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당시 사고기에 현대건설 직원들도 타고 있었는데 김 전무가 "현대, 뛰어내려!"라고 외쳐서 직원들이 탈출했고 그 덕에 상당수가 생존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정몽헌]] 회장이 2003년 8월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에 "당신 너무 자주하는 윙크 버릇을 고치세요"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농담이었다고 한다. *[[객실 승무원]] 출신으로 임원까지 승진한 걸로 유명한 이택금 전 [[대한항공]] 상무도 당시 사고기에 승무 중이었다. 당시 의무 실장으로 구조 작업에 참가한 사람에 따르면, 그녀 역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승객들과 부하 직원들에게 치료 순서를 양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평생 가장 잊지 못할 일로 이 사고를 꼽았으며 이후 비행 업무에 복귀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그나마도 이 사고에서 생존한 승무원 중에서는 가장 빠른 복귀였으며 끝내 복귀하지 못한 승무원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하필 같은 날 [[울릉도]]를 출발해 경북 영덕 강구 헬리포트로 향하던 우주항공 소속의 S-58JT(등록부호 HL9239) [[울릉도 관광 헬기 추락 참사|관광 헬기가 추락하여 승객 13명이 숨지고 6명이 구조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불과 취항한 지 3일 만에 벌어진 사고였다. *탑승자 중 생존자인 이용수가 2019년 현장르포 특종세상에 출연해서 당시 이야기를 짤막하게 전했다. == 관련 문서 == 한국 조종사들의 전형적인 착륙 고집이나 [[권위주의]](고압적 상하관계)가 영향을 끼친 사고. *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 [include(틀:대한민국의 대형 참사)] [[분류:대한항공/사건 사고]][[분류:리비아의 교통사고]][[분류:1989년 항공사고]][[분류:악천후로 인한 항공사고]][[분류:조종사 과실로 인한 항공사고]][[분류:재외한국인 사건사고]][[분류:한국-리비아 관계]][[분류:DC-10/사건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