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대구 비산동 쌍환두대도1.jpg]] [[https://blog.naver.com/stagezoom/220585289597|사진 출처 : 달성토성 복원과 달성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 [목차] == 개요 == 1971년 [[대구시]]의 유물 조사 시행 결과 [[비산동(대구)|비산동]] 고분군 제37호분에서 발견된 5세기 중엽 [[신라]]시대 [[환두대도]].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대구 비산동 쌍환두대도2.jpg]] 함께 발견된 다른 [[환두대도]]들과 함께 전시된 모습. 1971년 출토된 [[대구광역시|대구]] 지역의 [[환두대도]]로, 비산동 고분군 제37-2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유물의 제작 연대는 5세기 중엽(서기 400년대)이다. 비산동 37호분에서는 [[대구 비산동 출토 금동관]] 2점을 시작으로, 유리목걸이(琉璃頸飾)·금제굵은고리드리개(金製太環垂飾)·은제허리띠(銀製銙帶) 등의 장신구, 세잎고리자루큰칼(三葉環頭大刀)·세고리자루칼(三環頭刀)·쇠도끼(鐵斧)·쇠낫 등의 이기류, [[재갈]]·말띠드리개·말띠꾸미개(雲珠) 등의 마구류와 각종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고, 제2돌덧널에서는 백화수피관모(白樺樹皮冠冒)·금동제조익형관식(金銅製鳥翼形冠飾)·금제가는고리귀고리(金製細環耳飾)·은제허리띠(銀製銙帶)·금동제신발(金銅製飾履) 등의 장신구, 세잎고리자루큰칼(三葉環頭大刀)·세고리자루칼(三環頭刀)·쇠도끼·쇠낫 등의 이기류, 말안장(鞍橋)·재갈·말띠드리개·발걸이 등의 각종 마구류와 각종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렇게 비산동 37호분에서는 쌍환두대도를 포함하여 5세기 중엽 신라시대 유물 약 8천여 점이 쏟아져 나왔다. 큰 환두대도 암수 두 자루가 서로 붙은 모습인데, 각 머리 부분에는 [[신라]] 특유의 삼엽문을 넣었다. 부모 환두대도의 옆에는 작은 새끼 칼집을 두 개씩 만들고 그 안에 작은 [[단도]]을 하나씩 넣었기 때문에, 이 칼 한 세트에는 도검이 여섯 자루가 장비된 것이다. 원래는 황금으로 칼집 전체를 장식했으나 오랜 세월의 여파로 인해 색을 잃고 떨어져나간 부분이 많다. 5세기 [[대구광역시|대구]] 지역의 도검 양식 및 [[신라]]의 금속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대구박물관 소장품]] [[분류:대구광역시의 문화재]] [[분류:환두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