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명''' ||<(> 바르톨로뮤 부르게르시[br]Bartholomew Burghersh || ||<-2> '''생몰년도''' ||<(> 미상 ~ [[1355년]] [[8월 3일]] || ||<-2>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서식스]] 부르게르시 힐 || ||<-2>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런던]] || ||<-2> '''아버지''' ||<(> 로버트 부르게르시 || ||<-2> '''어머니''' ||<(> 모드 바들스미어 || ||<-2> '''형제''' ||<(> 스티븐, 헨리 || ||<-2> '''부인''' ||<(> 엘리자베트 드 베르됭 || ||<-2> '''자녀''' ||<(> 헨리, [[소 바르톨로뮤 부르게르시|바르톨로뮤]], 토머스, 조앤, 마가렛 || ||<-2> '''직위''' ||<(> 부르게르시 남작 || [목차] [clearfix] == 개요 ==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군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 == 생애 == 잉글랜드 왕국 서식스 부르게르시 힐 출신으로, 아버지는 초대 부르게르시 남작 로버트 부르게르시이고, 어머니는 초대 베들스미어 남작 바르톨로뮤 바들스미어의 자매인 모드 바들스미어이다. 형으로 스티븐, 동생으로 헨리가 되었다. 형 스티븐이 본래 부르게르시 가문 영지를 물려받을 예정이었지만 1310년경에 사망했고, 그가 후계자로 공인되었다. 동생 헨리는 링컨 주교가 되었다. 일찍이 제2대 베르됭 남작 티보 드 베르됭의 딸인 엘리자베트와 결혼했으며, 1320년경 장안이 사망한 뒤 아내가 유산을 성공적으로 물려받게 하기 위해 3명의 경쟁자들과 싸운 끝에 1328년에 최종적으로 승리했고, 이 덕분에 아내로부터 상당한 영지를 받을 수 있었다. 1317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참여했다. 1321년 외삼촌 바르톨로뮤 바들즈미어가 에드워드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주동했을 때, 그는 여기에 가담했다. 켄트의 리즈 성이 바르톨로뮤 바들즈미어의 아내인 마가렛 클레어의 주도로 에드워드 2세의 왕비 [[프랑스의 이자벨]]의 입성을 거부하고 일부 수비대가 왕비의 호위병을 향해 화살을 쏘기까지 하자, 에드워드 2세는 군대를 이끌겨 리즈를 포위했다. 리즈 성은 곧 함락되었고, 당시 리즈 성에 있던 바르톨로뮤 부르게르시는 체포되어 [[런던 탑]]에 수감되었다. 이후 바르톨로뮤 바들즈미어는 1322년 3월 16일 보로 브리지 전투에서 에드워드 2세에게 패배한 뒤 체포된 후 켄터베리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 참수되었다. 1326년 에드워드 2세가 프랑스의 이자벨 왕비와 이자벨의 연인인 로저 모티머의 주도로 폐위된 후 런던 탑에서 나올 수 있었으며, 도버 성의 수비대장과 5개 항구의 수호자라는 명예 직을 얻었다. 1330년 가을, 에드워드 3세는 이 직책을 [[윌리엄 드 클린턴]]에게 넘겼고, 대신 그를 폰티외의 상원의원과 트렌트 남부 숲의 감시인으로 삼았다. 바르톨로뮤는 에드워드 3세의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로서 중요한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 1329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를 찾아가 에드워드 3세가 가스코뉴 영주로서 파리로 와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게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부탁했으며, 뒤이어 아비뇽으로 가서 교황에게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교황청은 4년 동안 잉글랜드 교회 수입의 10분의 1을 에드워드 3세에게 넘기기로 했다. 이후 바르톨로뮤는 프랑스, 교황청, [[플란데런 백국]] 및 브라반트 대표단과 2번 이상 협상했다. 1337년 백년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십자군]]으로서 서약했다. 에드워드 3세는 교황에게 그를 이 서약에서 해방해달라고 요청해 승인을 받아냈다. 전쟁 발발 직후 서부 해안 제독이 되었고, 나중에는 런던 탑의 성주이자 왕실의 시종장이 되었다. 또한 에드워드 3세로부터 전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왕관과 기타 보석을 담보로 삼으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1341년 공성 무기 건설을 위한 목재 공급을 담당했으며, 의회에 왕을 위해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호소했다. 1346년 [[크레시 전투]]에 참여했으며, 1349년 [[그로스몬트의 헨리]]와 함께 [[가스코뉴]]에서 발발한 봉기를 진압했다. 1355년 프랑스로 진군하는 에드워드 3세로부터 왕국의 호국경으로 선임되었지만, 그해 8월 3일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링컨의 성 캐서린 예배당에 묻혔다. == 가족 == * 엘리자베트 드 베르됭: 제2대 베르됭 남작 티보 드 베르됭의 딸. * 헨리 부르게르시(? ~ 1348): 제2대 베이싱의 세인트 존 남작 존 휴의 딸 이사벨라와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 * [[소 바르톨로뮤 부르게르시|바르톨로뮤 부르게르시]](? ~ 1369): 3대 부르게르시 남작. * 토마스 부르게르시: 요절 * 조앤 부르게르시: 제2대 모훈 남작 존 모훈의 부인. * 마가렛 부르게르시: 요절 [[분류:영국의 귀족]][[분류:영국의 군인]][[분류:백년전쟁/인물]][[분류:135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