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가톨릭 성인]][[분류:정교회 성인]][[분류:성공회 성인]][[분류:270년 출생]][[분류:343년 사망]] [[그리스어]]: Ἅγιος Νικόλαος, Νικόλαος ὁ Θαυματουργός (기적의 니콜라오스) [[라틴어]]: Sanctus Nicolaus [[영어]]: Saint [[니콜라스|Nicholas]] (of Myra) [[이탈리아어]]: San [[니콜라|Nicola]] (di Bari) [[프랑스어]]: Saint [[니콜라|Nicolas]] (de Myre) [[독일어]]: Sankt 또는 Heiliger [[니콜라우스|Nikolaus]] (von Myra) [[러시아어]]: [[주교|Святитель]] [[니콜라이|Николай]] [목차] == 개요 == [[그리스도교]]의 [[성인]]으로, 4세기 [[로마 제국]] 미라 지방[* 지금의 [[터키]] 안탈리아 주 뎀레 근방]의 [[대주교]]였다. 270년 3월 15일 [[소아시아]] 리키아 지방 파타라에서 출생, 343년 12월 6일 소아시아 리키아 지방 미라에서 사망했다. 축일은 [[12월 6일]]이며,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회]]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공경받고 있다. 유해가 [[이탈리아]]의 바리에 안장되었다 하여 '바리의 성 니콜라오'라고도 불리며, [[한국 가톨릭]]에서의 정확한 표기는 '미라의 성 [[http://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today=&today_tmp=&ctxtCommand=&ctxtLogOn=&ctxtSexcode=&ctxtChukday=&ctxtGaladay=&Orggubun=101&ctxtHigh=&ctxtLow=&ctxtChecked=Checked&oldrow=&curpage=1&ctxtOrder=++name1%2Cgaladaym%2Cgaladayd+&ctxtOrderType=&ctxtSaintId=205&ctxtSCode=&ctxtSearchNm=니콜라오&ctxtChukmm=&ctxtChukdd=&ctxtPosition=&ctxtCity=&PSIZE=20|니콜라오]] 주교'이다. [[그리스]]와 [[러시아]], [[어린이]], [[세일러|항해사]], [[어부]], [[상인]], 방송인, [[약사]], [[궁수]], [[전당포]] 주인, 무고한 사람, 뉘우친 [[도둑]]들의 [[수호성인]]이다. [[대한민국]]에는 성 니콜라오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마포구 아현동 소재)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중구 정동 소재)[* 주교좌 [[성모 마리아]]와 [[니콜라오|성 니콜라]] 대성당]이 있다. == 생애 == 성 니콜라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어렸을 때 양친을 여의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그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썼다고 한다. 더 많은 선행을 하고 싶었던 성 니콜라오는 [[그리스도교]]에 입교해 [[사제(성직자)|사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사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미라의 대주교가 사망하고, 후임자를 정하기 위해 기도하던 다른 [[주교]]들에게 '다음 날 가장 먼저 교회에 올 니콜라오가 나의 마음에 드는 인물'이라는 [[야훼|하느님]]의 계시가 내려졌다. 정말로 다음 날 아침에 33세의 니콜라오가 가장 먼저 성체조배를 하러 교회에 들어왔고, 그가 바로 그 인물이라는 것을 안 [[주교]]들이 다이렉트로 그를 주교좌에 착좌시켰다. 성 니콜라오는 어안이 벙벙해서 당연히 사양했지만, 하느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순명하여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아직 신앙의 자유가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주교가 되자마자 [[로마 제국]]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를 받아 체포되고 투옥되는 날도 있었지만, 10여 년에 걸친 힘든 시기를 끝까지 버텨내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이르러 자유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정교회]]와 [[가톨릭]] 신앙의 쇄신과 이교도의 개종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또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여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이단]] [[아리우스파]]를 단죄하는 데 기여했다. 이 과정이 조금 [[어둠에다크에서 죽음의데스를 느끼며|전설의 레전드]]적이다. 성 니콜라오스가 제1차 세계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의 따귀를 때렸다가 콘스탄티노스 황제가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하면서 감옥에 가뒀는데, 하루는 밤에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환영이 그 앞에 나타나 [[성경]]과 오모포리온[* ὠμοφόριον(omophorion). 가톨릭의 '팔리움'과 같은 [[전례복]] 중 하나다. 목과 어깨에 두르는 양털 띠로, 오모포리온은 팔리움보다 폭이 더 넓다.]을 주었고, 다음 날 간수가 그의 모습을 보니 분명히 없었던 오모포리온을 두르고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이를 본 모든 사람들이 니콜라오에게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고, 그는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성 니콜라오를 표현한 [[정교회]]의 [[이콘]] 중에도 이 일화에 의해 오모포리온을 두른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루는 미라 지방의 주민들이 기아에 허덕일 때 식량이 가득 실린 배 여러 척이 폭풍에 밀려 해안에 밀려왔는데,[* 이집트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가던 양곡 수송선이었다고 한다.] 성 니콜라오는 선장들에게 식량을 기증해 줄 것을 부탁했고 선장들은 마지못해 식량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출항 준비를 하려 하니, [[오병이어의 기적|분명히 나누어 주었던 식량이 전혀 줄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한 푸줏간 주인이 고기로 속여 팔기 위해 소금창고에 어린아이 3명을 가두어두었다가 토막내어 팔려는 것을 꿈에서 보고는 아이들을 구출해 주어 어린이의 수호성인이 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선원들의 목숨을 많이 구해주었다는 일화 때문에 항해사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에 처할 위기를 맞은 3명의 청년을 변호하여 누명을 벗어주거나 모함을 받아 죽게 된 고관들을 살려주는 등, 자칫하면 죄인을 변호하여 함께 위기를 맞을 수 있었음에도 용기있게 나서서 무고를 증명해주었다는 의미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기도 하였다. 성 니콜라오는 73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에도 [[전구(기독교)|전구]]를 통해 기적을 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망하는 순간에도 시신에서 [[성유]]가 흘러나와 그것으로 많은 병자들이 치유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성인의 유해는 1087년 [[이탈리아]]의 바리로 이장됐으며 끊이지 않는 기적 때문에 아예 순례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 산타 할아버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8px-Sinterklaas_2007.jpg]]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현재의 산타클로스는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의 이미지에 성 니콜라오의 대표적인 일화에서 유래된 전통을 덧씌운 결과물이라고도 한다.] 어느 집의 세 딸이 너무 가난해 결혼을 할 수가 없어 사창가에 팔릴 위기를 맞았는데, 그 소식을 들은 니콜라오는 그들이 무사히 시집을 갈 수 있게 돕고 싶었지만 요란스럽게 생색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밤에 맏딸이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갈 수 있을 만큼의 황금을 담 너머로 조심스럽게 놓고 갔다. 그 다음날에는 둘째 딸 몫의 황금을 놓고 갔고, 두 딸을 구제할 수 있게 된 그들의 아버지는 셋째 날에는 대체 누가 이런 선행을 베푸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샜다. 니콜라오는 그 날도 셋째 딸 몫의 황금을 놓고 가려다 그만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고, 그는 제발 비밀로 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알게 모르게 소문이 퍼졌다. 산타클로스 전설은 12세기 [[프랑스]]의 [[수녀]]들이 축일 전날인 [[12월 5일]]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유럽]]의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성인의 축일인 [[12월 6일]]에 가족 중 한 명이 성 니콜라오의 분장을 하고 나타나 착한 어린이를 칭찬하고 나쁜 어린이를 혼내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St. Nicholas를 ''''신터 클라스'''(Sint-Nicolaas→ Sinter Claes→ Sinterklaas)'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영어 문화권에 퍼지면서 묘하게 바뀌고 [[크리스마스]] 행사와 결합한 것이다. 산타클로스가 입은 옷의 [[빨간색]]은 본래 [[주교]]([[추기경]])의 [[수단(의복)|수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기타 == 영국 존무어 대학 안면연구소에서 복원한 성 니콜라오의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65054&path=201612|얼굴 복원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산타클로스인 이미지로 익숙한 전형적인 북서유럽인의 얼굴이 아니라 전형적인 [[중동]]계 백인 혹은 [[그리스인]]의 외모에 더 까깝다. == 실존 인물 == * 교황 [[니콜라오 1세]] * 교황 [[니콜라오 5세]] * [[정진석(추기경)|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한국의 2번째 추기경 * [[니콜라오 두미트루]] - 축구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