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프랑스의 화학자]][[분류:프랑스의 의사]][[분류:1742년 출생]][[분류:1806년 사망]][[분류:프랑스의 자살한 인물]][[분류:총기에 죽은 인물]][[분류:셰르 출신 인물]] [목차] == 개요 == Nicolas Leblanc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외과의. 염화나트륨 즉, [[소금]]을 원료로 하여 [[탄산나트륨]]을 제조하는 르블랑 법을 고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 생애 == 르블랑의 아버지는 [[용광로]]에서 하위 관리직을 맡고 있었으나 1751년에 사망했다. 이로 인해 르블랑은 가족과 가까운 사이였던 [[의사]]와 같이 살았고, [[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1759년, 자신을 돌봐주던 의사도 사망하자 그는 [[프랑스 파리]]의 외과 대학[* 원래 외과의는 내과의에 비해 천대를 받았어서 칼을 다룰 줄 아는 이발사가 외과의를 겸업(일명 이발외과의사)한 것이 시초였으나, 르블랑이 태어날 무렵인 1740년대에는 이발사의 외과의 겸업이 금지되고 일부 의과대학에 외과 과정도 개설되고 외과 아카데미도 창립되어 외과의 인식과 외과의의 지위가 많이 상승한 시기였다.]에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외과]]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개업을 하고 [[결혼]]도 했으나, [[병원]] 운영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서 1780년에 [[오를레앙 공 루이 필리프 2세]]의 개인 [[주치의]]가 되었다. 한편, 1775년 프랑스 과학[[학회]]에서는 [[소금]]으로 탄산나트륨을 제조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이에게 상금을 주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당시 유럽은 급속한 [[공업]]화를 거치며 원료로서 탄산나트륨이 많이 필요했다. 특히 [[유리]]생산에 필수적이었다. 1791년 르블랑은 연구를 통해 소금에서 탄산나트륨을 제조하는 르블랑법을 고안하는 데 성공했다. 1단계에서는 소금과 [[황산]]을 섞어서 800~900도까지 가열해서, 염화수소를 분리시켜 [[황산나트륨]]만이 남는다. 그 다음 2단계에서는 1단계에서 생성된 황산나트륨을 잘게 부수고 [[목탄]]과 [[석회석]]을 넣어 섞은 후 다시 용광로에서 가열해서 탄산나트륨을 생성하는 식이었다. 르블랑은 과학학회에서 상을 받았으며 오를레앙 공의 도움으로 1년간 320톤의 탄산나트륨을 생산하는 공장까지 차렸다. 그러나 1793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후원자였던 오를레앙 공은 [[처형]]되고 공장은 몰수당했다. 거기다가 혁명정부에서는 상금 지급까지 거부했다. 1802년에 [[나폴레옹]]이 공장을 돌려주었지만 그 때는 르블랑이 공장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실의에 빠진 그는 1806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오히려 르블랑법의 진가를 알아본 나라는 [[영국]]이었다. 윌리엄 조시란 [[영국인]]은 르블랑법의 연구를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후, 1807년에 영국에서 최초의 탄산나트륨 제조 공장을 건립했다. 르블랑법은 한동안 탄산나트륨 제조를 독점했으나 생산과정에서 형성되는 염화수소 때문에 기구 부식이 심해서 비용이 많이 들고 환경오염 문제까지 있어서 1861년 [[벨기에]]의 화학자 [[솔베이]]가 고안한 솔베이법의 도입 이후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