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惱音信''' (? ~ ?) [목차] == 개요 == [[고구려]] 말기의 [[장수]]로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한 [[북한산성 전투]]에서 고구려군의 지휘관이었다. == 생애 == 661년([[보장왕]] 20년) 5월, 왕명을 받들어 [[말갈]]의 장수인 [[생해]](生偕)와 함께 [[신라]]의 술천성(지금의 [[경기도]] [[여주시]])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사들 돌려 [[북한산성]]을 20일 동안이나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온달]]장군 때와 달리 이 때 신라 주력군은 작년에 멸망한 백제 땅에서 한창 [[귀실복신]]의 백제부흥군과 싸우고 있었으므로 북부 전선이 비어있어 고구려 입장에선 영토를 늘리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때 뇌음신은 [[투석기|포차]]를 이용해서 돌을 날려 북한산성의 건물과 성벽을 파괴하였으나, 북한산성 성주였던 대사(大舍) 동타천(冬陁川)은 [[마름쇠]][* [[말(동물)|말]]과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땅에 깔아놓는 큼지막한 쇳바늘을 말한다.]를 바닥에 깔아서 적의 침입을 막고 성 안에 있던 사찰 안양사를 헐어서 거기서 나온 목재로 대충 급조한 망루와 노포를 설치하는가 하면 성안의 주민 남녀 2,800여명을 모두 동원하여 적과 싸우게 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어린이와 노약자까지 격려하여 20여 일을 버텼다고 한다. [[북한산성]]은 점차 식량이 떨어져 곧 뇌음신에 의해 함락될 것처럼 보였으나 때마침 고구려군의 진영을 향해 큰 별이 떨어지고 천둥과 비가 내리자 고구려군 역시 사기가 떨어져 싸움을 멈추고 돌아갔다. 이런 재난이 일어난 것에 대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북한산성 성주 동타천이 하늘에 빌었기 때문에, 삼국유사 태종춘추공조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는 김유신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 일어난 일이라고 하고 있다. 꼭 누구 기도 때문이 아니라도 미신적 믿음이 중요시되던 고대라 기상현상에 병사들의 사기를 고려해 퇴각했을 수도 있고, 혹은 악천후로 공성전 지속이 힘들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 전투가 있던 음력 5~6월경은 딱 초여름 [[장마철]] 시즌이다. 동서고금 장마철은 쳐들어가기 좋지 않은 계절이지만 고구려 입장에선 백제 흡수에 신라군이 시선이 쏠린 타이밍을 노린 빈집털이였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 대중매체 == * 드라마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에서는 배우 강신범이 2부에서 나와 무술대회에 참가, [[검모잠]], [[고돌발]]과 함께 [[연개소문]]과 의형제를 맺는다. 연개소문이 평가하길 뇌음신은 공명심이 심하며 질투가 많다고 하였다 이후 [[고구려-당 전쟁]]에서는 장군으로 참전해 현도성주가 되지만 성을 빼앗기고 패퇴한 뒤에 [[연개소문]]에게 가서 스스로 패장으로서 죄를 받기를 청한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그를 용서하고[* 애초에 워낙 불리한 싸움이었기에 배신이나 투항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작이 되었다.] 후에 다시 출정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고 한다. 처음엔 고구려의 [[명장]]이었으나 [[선도해]], [[신성(승려)|신성]]과 함께 고구려 멸망의 원흉으로 그려져 종국에 [[연개소문]]에게 참수된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심화되는 날림 각본+ 선택과 집중에 실패한 병맛 스토리의 희생양으로,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이전부터 떡밥을 던졌을 갈등 구조(연남생의 출신에 대한 갈등)가 종영하기 겨우 몇 화 전부터 엉성하게 묘사된다. * [[대왕의 꿈]]에서는 그냥 [[고구려]]를 위해 싸우는 장군으로 등장하며 [[연개소문]]이 사망한 후에 일어난 제3차 [[고구려-당 전쟁]]에서 동타천과 싸우다 전사한다 [각주] [[분류:몰년 미상]][[분류:고구려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