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노벨상 목록)] ||<-2> '''{{{+1 노벨평화상}}}[br]Nobel Peace Prize''' ||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60%]] || || '''주최 및 장소''' || 노르웨이 노벨위원회[br][include(틀:국기, 국명=노르웨이)] [[오슬로]] || || '''상금''' || 1000만 [[스웨덴 크로나|SEK]][br]89만 [[미국 달러|달러]][* 한화 기준 약 12억 7,244만 원.][br]^^(2022년 기준)^^ || || '''첫 시상년도''' || [[1901년]] [[12월 10일]] || || '''최근 수상자''' || [[파일:이란 국기.svg|width=30]] 나르게스 모하마디[br] ^^(2023년 기준)^^ || || '''링크''' || [[http://nobelpeaceprize.org|[[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5]]]] || [목차] [clearfix] == 개요 ==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가 시상하는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 다른 노벨상들과는 달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프레드 노벨|노벨]]이 평화상은 노르웨이에 권한을 이임했기 때문이다. 1901년의 첫 수상자는 [[국제적십자위원회]]를 창립한 [[스위스]]의 [[앙리 뒤낭]]과 국제 평화 연맹을 창설한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파시이다. 또한 학문적 성취와 무관하게 탈 수 있는 노벨상이기도 하다. 물론 전 세계가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학문적 성취에 준하는 국제적 업적을 달성해야 한다. 물론 과학자, 경제학자, 문학가가 평화상을 수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먼 볼로그, [[무함마드 유누스]], [[베르타 폰 주트너]], [[라이너스 폴링]]이 좋은 예.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려면 [[노르웨이]] 국회의원 최소 1인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 역사와 이야기들 == 1948년 [[마하트마 간디]]는 노벨 평화상의 유력한 후보였으나 수상자 발표를 얼마 앞두고 암살당했다. 노벨상은 발표 시점에 생존 중인 인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간디의 평화상 수상은 무산되었고, 그 해의 노벨평화상은 이례적으로 공석이 되었다. 노벨상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간디에게 사후 평화상 수여를 여러모로 검토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https://www.nobelprize.org/prizes/themes/mahatma-gandhi-the-missing-laureate|#]] [[전두환]]도 노벨평화상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30400329201005&ed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3-04&officeId=00032&pageNo=1&printNo=13056&publishType=00020|후보]]였다. 상을 받을 수는 없어도 추천까지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입법부의 의원이면 누구나 추천할 수 있다. 하도 독재 인사를 추천하는 것 때문에 [[2001년]]부터 '''[[노르웨이]] 국회의원'''으로 추천 가능 인원이 제한됐다. 노르웨이 국회의원한테 접촉해서 노벨상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아돌프 히틀러]]도 후보로 추천받은 적이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었던 [[https://en.wikipedia.org/wiki/Erik_Gottfrid_Christian_Brandt|E. G. C. 브란트]]라는 이가 추천했는데, 그에 의하면 [[지능적 안티|안티파]]로서 풍자를 위해 추천한 것일 뿐 진심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공동으로 추천한 노벨상 후보는 [[뮌헨 협정]]의 [[네빌 체임벌린]]이었다. [[https://www.nobelprize.org/prizes/facts/facts-on-the-nobel-peace-prize|#]] [[쿠르드족]] 학살을 명령한 [[윈스턴 처칠]]조차 자신이 노벨평화상 후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힘에 의한 평화]]에는 매우 인색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주역 중 하나인 [[윈스턴 처칠]]은 전쟁광에 가까운 과격파였기에 [[아돌프 히틀러]]의 위험성을 미리 통찰했다는 평과와는 달리 노벨평화상 대신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함께 냉전을 종식한 [[로널드 레이건]] 또한 받지 못했는데, 집권 초 군비 강화 정책과 [[이란 콘트라 사건]]이 마이너스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 논란 == 노벨상들중에서 [[노벨경제학상]]과 더불어 유이하게 논란이 많은 상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은 노벨상이다. 근본적으로 '[[평화]]'라는 주제로 상을 주는 것은 각 국가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다른 노벨상과는 달리 수상자의 업적의 평가가 각 구성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치적 수장들의 수상은 여러번 논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되어 상을 받은 [[헨리 키신저]]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으로 상을 받은 양쪽 수장[* 야시르 아라파트,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의 수상에 대한 비판이 많다. 1978년 [[안와르 사다트]][* 군부 독재자로 이집트에서 악명이 높았다.], 메나헴 베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좋게 평가될 수 없는 인물이다. 또한 극단적 시오니즘 테러 단체인 이르군(Irgun)간부이기도 했다.]의 경우도 비슷하다. *1906년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러일전쟁]]의 원활한 해결'에 대한 공로를 내세워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대한제국]]의 자주 독립이 미국-일본 사이의 야합인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결과 [[일본 제국]]에 빼앗겨 수많은 한국인들의 피를 대가로 했다. *[[우드로 윌슨]]도 [[민족자결주의]]와 [[국제 연맹]]을 제창했다는 이유로 1919년 평화상을 받았다. 물론 민족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패전국에 합병됐던 나라에게만 해당됐던 얘기지, 승전국의 [[식민지]](예를 들어 [[인도]], [[한국]][* [[3.1 운동]]이 바로 이 민족자결주의 선언에서 영향을 받은 운동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승전국인데다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었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문서 참고. *[[이오시프 스탈린]]도 [[제2차 세계 대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내용으로 1945년과 1948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도 노벨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1974년에는 일본의 전 총리 [[사토 에이사쿠]]가 비핵 3원칙을 확립해서 수상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당시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가 정적 사토를 회유하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소문도 있다. *1973년 [[파리조약]]으로 [[베트남 전쟁]]을 휴전하고 미군을 철수시킨 공로로 베트남의 레득토와 미국의 [[헨리 키신저]]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상 역사상 최악의 수상자로 꼽히는데 레득토는 자기 조국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고, 키신저는 캄보디아 폭격을 포함해 국무장관 재임 시절 전쟁 범죄와 인권 탄압으로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레득토의 말대로 1975년 사이공 함락으로 전쟁이 끝난다. 키신저는 반전 시위대를 우려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사이공 함락 후 상을 반납하려 했지만 노벨위원회가 거부했다. 그리고 50년 만에 공개된 것에 따르면 당시 노벨위원회는 그해 초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체결된 평화협정이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협정의 주역이었던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레 둑 토 북베트남(월맹) 정치국원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https://m.yna.co.kr/view/AKR20230112058100009?section=international/all|#]]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 뒤 노벨위원회 위원 5명 중 2명이 항의의 뜻으로 사퇴했다.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루마니아]] 태생 [[유대인]]계 미국 작가 엘리 비젤(1928~2016)도 논란이 컸다. [[홀로코스트]]를 고발한 책자와 수기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시오니즘]]을 옹호는 그렇다고 쳐도 [[팔레스타인]] 학살을 두둔했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해 제2차 세계 대전 전사자 추모 무덤을 참배한 걸 [[나치 독일]] 참배라고 비난하다가 강제 징집자 전사 무덤 참배를 나치라고 하면 서독 모두가 나치라는 주장이라는 비난으로 까였다. 늘그막에는 같은 유대인인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사기로 많은 재산을 잃었다. *80, 90년대에는 [[레흐 바웬사]](1983), [[데즈먼드 투투]](1984), [[달라이 라마]](1989), [[미하일 고르바초프]](1990), [[아웅 산 수 지]](1991), [[넬슨 만델라]](1993), [[류샤오보]](2010), [[드니 무퀘게]]&[[나디아 무라드]](2018)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마다 적절하게 상이 주어졌다. [[동티모르]]의 [[독립운동가]]들과 아일랜드 평화 협상을 타결한 사람들에게도 상이 주어졌다. *2000년에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시 노벨평화상을 받는 과정에서 로비 등의 문제가 논란이 된 사례가 있는데, 다만 희한하게도 한국에서 들어온 로비에는 '''주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노벨연구소에서 직접 밝힌 내용이다. 이와는 별개로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대법원 판결로 확인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쟁점화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16년 군나르 스톨셋 전 노벨위원회 부위원장(2000년 당시의 직함)은 "당시 국정원 주도로 이루어진 노벨상 캠페인이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확정짓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이 사건을 당시 알았더라면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지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https://www.nrk.no/urix/stalsett_-_-hadde-vi-visst-det-vi-vet-na_-hadde-ikke-kim-dae-jung-fatt-nobels-fredspris-1.13262773|#]] 또한 2020년 [[뉴욕 타임스]]에서 뽑은 "의문의 노벨평화상"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하는 등 대내외적인 논란이 있다. 여기서 뉴욕 타임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적지 않은 업적으로 뽑혔던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가 현재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남북은 여전히 전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김정일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은의 통치 아래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언급했다.[[https://www.google.com/am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0/11/16/JWUNRNGVUZALRJQYWLRW7ZU4IA/%3foutputType=amp|#]] 물론 김대중 본인은 민주운동으로 후보에 14번이나 추천받기도 했고, 동티모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선 것도 수상 이유에 포함되었으므로 입체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있다. *2009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상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빌 클린턴]]을 제외한 [[지미 카터]] 이래 모든 [[민주당(미국)|민주당]] 행정부의 지도자들은 평화상을 한 번씩 받게 되었다. 그래봐야 카터와 오바마밖에 없지만.[* 다만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 부통령|부통령]]이었던 [[앨 고어]]가 2007년에 수상했다. 단 부통령의 정체성보다 환경운동가로서의 정체성으로 받은 것이 크다. 고어는 대통령선거 낙선 후에 정치계를 사실상 떠나고도, 노벨상 수상 시까지 환경운동만큼은 계속 했다. 심지어 노벨상을 받고 나서도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다. 즉 환경운동에 대한 그의 평생을 바친 열의가 위대하다고 인정받아서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 것 때문에 노벨평화상은 신뢰를 잃고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특히 오바마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바마가 당선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걸 받음? 뭘 했는데?" 라고 반응할 정도로 미지근했다. 오바마 본인도 조금 당황한 듯하다. --혹자는 "eh, he got rid of bush(에이, 쟤가 [[조지 W. 부시|부시]]를 쫓아냈잖아)"로 모든 걸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못된 농담인 게 부시는 이미 재선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미국 법제상 3선 출마가 불가능한지라 오바마와는 상관이 없다.] 몇몇 사람들의 말로는 "아직 한 일의 결과도 안 나왔는데 받아도 너무 이르게 받았다" 라는 듯. --논문 발표도 안 했는데 노벨상 받는 거랄까.--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미국에서 그렇게나 멸시 천대를 받던 [[흑인종]]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이 하나만으로도 인종평등에 대한 커다란 상징이 되었기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오바마가 [[전략무기감축협정#s-6|신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체결하는데 성공하여 평화상을 받아간 밥값은 충분히 했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감축하는데 성공한 협정은 START I과 New START 밖에 없다. 이 정도면 충분히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 맞다.] 어느 정도 수긍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후 프리즘 폭로 사건,예멘 내전에서 저지르는 전쟁범죄 등을 예로 들며 여전히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2010년에는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와 관련된 인사인 [[류샤오보]]가 수상했다. 그런데 이분은 '''감옥'''에 있으며, 앞으로 나오기도 힘든 상황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못 믿겠다는 반응이었지만, 실제로 확정되어 버리자 [[중국 공산당]]이 뒤집어지고 중국의 [[높으신 분들]] 위주로 난리가 났으며, 수상 발표가 난 뒤 '우리는 이번 노벨평화상을 인정할 수 없다.' 라면서 국제문제로까지 만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참류가 수상한 이후 중국에서 류의 가족, 친지, 지지자 등 2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출국금지 크리를 먹였는데 그 이유는 노벨상을 대신 받는 걸 못하기 위해서라고. 2010년 12월 10일.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 본인은 물론, 류샤오보의 모든 가족, 친척들과 인권운동가 등 수백여명을 출국금지를 시켰기 때문에, 결국 노벨평화상 수상은 공석으로 진행되었다. 노벨위원회 측에서는 타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인권 운동가에게 대리수상을 시켰을 수도 있지만, 특별히 상징적으로 빈 의자에다 노벨평화상 메달을 수여하였다. 빈 자리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1935년 나치 독일 시절에 수상한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처음이며, 현장에 참여했던 인원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3분 동안 기립박수를 쳤다.[* 그러나 이 류샤오보도 까고 보면 수상 자격이 있나 의심스러울 만큼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자세한 건 해당 인물 항목으로.] 게다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2012년 12월에 발표된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류샤오보가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부터 26개월째 아무런 법적근거도 없이 아내를 [[https://ko.wikipedia.org/wiki/가택_연금|가택연금]]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전화, 인터넷도 모두 차단한 채 외부와의 접촉을 금하게 하고 있고, 24시간 10여명의 건장한 감시자들에 의해 철통같은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연금은 2017년 류샤오보가 사망[* 사망 직전 석방되어 군 병원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생을 마쳤다.]한 후에도 풀리지 않고 있었다. 이후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는 그가 죽은 지 1년이 지난 2018년 7월이 되어서야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후 독일로 망명했다. 중국 민간단체가 이에 대항해 [[공자평화상]]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국제적으로 무시당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대만]]에서조차 무시당한다. 결국 이 상은 중국 정부에 의해 폐지.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2012년에는 [[유럽 연합]]이 수상했는데, [[유로화 사태]] 등으로 인해 유럽 전체가 분란에 휩싸인 가운데 유럽연합 자체에 대해 적대적인 여론이 점점 커지는터라 부적절한 수상이라고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 수상한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의 티그라이 지역 군사작전이 나옴에 따라 다시 노벨 평화상 이미지가 갈수록 구겨지고 있는 상태이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016556?sid=104|#]] *1996년 공동 수상자인 카를로스 벨루 주교는 동티모르에서 아동 성학대를 하던 게 2022년 드러났다. 로마 교황청은 이걸 숨기는데 급급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가 수상했던 것이 7년 이후로는 튀니지도 사회혼란 이유로 대통령 중심 독재체제로 가고 있어서 사실상 [[아랍의 봄]]이 완전히 끝났다는 평이 나왔는 실정이다. * 2022년 수상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3국에서 공동 수상을 한게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비판을 받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려는 의도와 달리, 세 국가가 같은 [[슬라브족]] 국가라는 [[대러시아]] 프로파간다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크라이나 측 수상자인 시민자유센터는 [[푸틴|공동의 적]]과 싸운다는 의미라고 선을 그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어떠한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 [[노벨평화상/수상자|역대 수상자]]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벨평화상/수상자)] [include(틀: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 한국인 수상자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노벨상/한국의 분야별 현황)] 한국인 수상자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상세 내용은 [[노벨상/한국의 분야별 현황]] 참조. == 기타 == * 한 개인이 아닌 집단이 받는 경우도 있다. 1910년의 국제 평화국, 1917년, 1944년, 1963년의 [[국제적십자위원회]],1977년의 [[국제앰네스티]], 1999년의 [[국경 없는 의사회]], 2001년의 [[유엔|UN]], 2007년의 IPCC(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2012년 [[유럽연합]], 2013년 화학무기금지기구(OPCW(Organis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 2015년의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등이 좋은 예이다. *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리뉴얼되기 이전, 광화문점 입구에는 여러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캐리커처를 국가별로 진열해놓고, 한 자리는 "한국인 수상자를 기다립니다"라는 문구를 써 놓고 비워뒀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김대중]]의 캐리커처가 들어가게 되었고 '다음 수상자를 기다립니다' 라는 문구가 다시 써졌다. * 관련 사진 자료 [[파일:attachment/teresa.png|width=400]] 1979년 수상자 [[마더 테레사]].[* 왼쪽 인물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오른쪽 인물은 [[낸시 레이건]] 영부인이다.] [[파일:external/static.guim.co.uk/Aung-San-Suu-Kyi-in-Oslo-008.jpg|width=400]] 1991년 수상자 [[아웅산수지]] 여사.[* 수상 당시 아웅산수지 여사는 [[미얀마]]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였고, 가족이 대신 수상했다. 사진 속의 모습은 수지 여사가 복권된 후인 2012년.] [[파일:attachment/mandela.png|width=400]] 1993년 수상자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F. W. 더클레르크]] 전 대통령. [[파일:김대중_노벨상.jpg|width=400]] 2000년 수상자 [[김대중]] 전 [[대한민국 대통령]]. [[파일:external/www.nobelprize.org/xiaobo_chair_photo.jpg|width=400]] 2010년 수상자 [[류샤오보]]. 본인이 [[중국 정부]]에 의해 감금되어 있는 상태여서 상징적인 의미로 빈 의자를 놓고 수상식을 진행했다. [[파일:external/i.dawn.com/548846c635afd.jpg|width=400]] 2014년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파일:external/ichef.bbci.co.uk/_85990910_85990909.jpg|width=400]] 2015년 수상자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노동계 대표인 총노조, 산업계를 대표하는 산업·무역·수공업연맹 시민단체인 인권연맹 법조계의 변호사회 등 4개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기구.] [[분류:노벨상]][[분류:평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