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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F0B10 0%, #FFFFFF 20%, #FFFFFF 80%, #DF0B10)" {{{#002664 '''네이트 맥밀란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include(틀:시애틀 슈퍼소닉스 영구결번)] ---- ||||||||||||<:> '''1994년 [[전미 농구 협회|NBA]] 올해의 스틸왕''' || ||<:>[[마이클 조던]]|| → ||<:>'''네이트 맥밀란'''|| → ||<:>[[스카티 피펜]]||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네이트 맥밀란 애틀랜타 감독 대행.jpg|width=100%]]}}} || ||<-2> {{{#c8ab37 '''시애틀 슈퍼소닉스 No. 10''' }}} || ||<-2> {{{#005837 '''{{{+2 너새니얼 맥밀런}}}[br]Nathaniel McMillan'''}}} || || '''생년월일''' ||[[1964년]] [[8월 3일]] ([age(1964-08-03)]세)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 '''출신지''' ||[[노스캐롤라이나]] 주 롤리 || || '''출신학교''' ||초완 대학교 (1982~1984)[br][[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1984~1986) || || '''신체''' ||196cm, 95kg || || '''포지션''' ||[[포인트 가드]] / [[슈팅 가드]] || || '''등번호''' ||'''10번''' || || '''드래프트''' ||'''1986 NBA 드래프트 2라운드 30순위[br][[시애틀 슈퍼소닉스]] 지명''' || || '''역대 소속팀''' ||시애틀 슈퍼소닉스 (1986~1998) || || '''지도자''' ||시애틀 슈퍼소닉스 어시스턴트 코치 (1998~2000)[br]시애틀 슈퍼소닉스 감독 (2000~2005)[br][[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감독 (2005~2012)[br][[인디애나 페이서스]] 어시스턴트 코치 (2013~2016)[br]인디애나 페이서스 감독 (2016~2020)[br][[애틀랜타 호크스]] 어시스턴트 코치 (2020~2021)[br]애틀랜타 호크스 감독대행 (2021)[br]애틀랜타 호크스 감독 (2021~2023) ||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의 농구인으로, 전 [[애틀랜타 호크스]] 감독이다. 평균 득점은 높지 않았지만 수비력만큼은 대단했고, 평소에도 팀 메이트들로부터 두터운 리더로 평가받은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또한 감독으로서는 주로 지역방어에 기반을 둔 수비 전술을 구사해왔다. 별명은 '''"Mr. Sonic"'''. == 일생 == === 선수 이전 === 저소득층용 주택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알지 못했으나 일을 열심히 한 어머니와 돌본 형 밑에서 돌봐주며 솔직한 성격을 지녔다. 고등학교 시절 스카우트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 초완 대학교로 진학했다가 3학년 때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로 편입한 후, 짐 발바노(1946~1993)[* 별명은 'Jimmy V'. 1980년부터 10년 동안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농구부 감독을 맡으며 1983년 NCAA 전국대회 당시 썰 베일리, 시드니 로 등 'Cardiac Pack'들을 이끌어 결승전에서 휴스턴대를 꺾은 뒤 우승 트로피를 따냈고, 맥밀란 외에 크리스 워시번과 처키 브라운 등 유망주들을 키우며 ESPN과 ABC 등지에서 농구 해설위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1989년 피터 골렌복 작가의 저서 《Personal Foul》을 통해 크리스 워시번의 SAT 미달 및 부정입학, 선수들의 경기 관람권 판매 등 온갖 비리가 폭로되면서 NCAA의 조사가 시작되어 1990년 전국대회 출전 금지 등의 징계를 받았고, 1989-90 시즌을 끝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1992년부터 골수암으로 투병하며 '지미V 재단'을 세워 암 연구 지원을 활성화시키도록 했으며, 1993년 3월 '아서 애쉬 용기와 박애상'을 받고 2개월 후 숨졌다.]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ACC]] 우승을 기록했고, 2년 연속으로 [[NCAA Division I 남자농구 챔피언십]] 준결승에 진출하며 베스트 8까지 이끌었다. === 선수 시절 === 1986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30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되어 입단 첫 시즌 때 선발 자리를 잡으며 평균 8.2어시스트를 찍었고,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전에서 2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어니 디그레고리오가 수립한 신인 기록을 세웠다. 특히 수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1993-94 시즌 스틸왕[* 팀은 NBA 전체 정규시즌 1위(63승 19패)를 기록했으나 플옵 1라운드에서 8위 [[덴버 너기츠]]에 2승 3패 [[리버스 스윕]]과 [[업셋]]을 내준다.]에 이어 1993-94, 1995-96시즌에는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렸다. 1995-96시즌에는 생애 처음으로 [[NBA 파이널]] 무대에 진출해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 [[시카고 불스]]와 [[1996 NBA 파이널]]에서 맞붙었으며 2차전과 3차전은 등 통증과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나서지 못했지만, 4차전은 부상에서 돌아와 [[마이클 조던]]을 마크하는 활약을 내세우며 전승 우승을 막을 수 있었다. 시리즈 최종 전적은 2승 4패. 1997-98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였으며 맥밀란이 사용했던 10번은 소닉스에서 영구결번이 되었다.[* 하지만 후신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가 시애틀의 역사를 계승하지 않음에 따라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태.] === 지도자 시절 === ==== [[시애틀 슈퍼소닉스]] ==== 선수 은퇴 후, 소닉스의 어시스턴트 코치에 취임하였으며 2000-01 시즌 중반 성적부진으로 감독직에서 경질된 폴 웨스트팔을 대신해 감독 대행을 맡으며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데 실패했지만, 정식 감독이 된 2001-02 시즌에는 새로 들어온 삼촌뻘 코치 딘 데모폴루스[* 1983년부터 17년간 템플 대학교 코치로서 존 체이니(1932~2021) 감독을 모신 바 있다.]로부터 지역방어를 터득해내 45승 37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당시 허용된 지역방어의 수혜자가 됐다. 2004-05 시즌에는 [[라샤드 루이스]], [[레이 앨런]] 등을 선발로 출전시키는 지도를 내세워 첫 노스웨스트 디비젼 우승을 달성했고 동시에 컨퍼런스 준결승에 진출하기까지 이르렀다.(5시즌 통산 212승 183패, 승률 .537)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2005-06시즌부터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감독으로 옮겨가 7시즌을 보냈으며, 이곳에서도 지역방어를 팀에 적용시켰다. 첫 시즌에는 텅 비어버리다시피 한 선수단 탓에[* 2000년대 초반 포틀랜드는 스타들은 많았으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하도 많이 일으킨다고 하여 'JailBlazers'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덕분에 팀성적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팀에서는 선수단을 대거 재편하고 재정비를 노렸다. 맥밀란이 부임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2할대의 승률에 그쳤으나, 2006년 드래프트 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뽑은 [[브랜든 로이]]를 받아 팀을 빠르게 정상궤도로 올려 놓으면서 매 시즌 승률이 올라갔고 2009년부터는 2011년까지 세 시즌 연속으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2008-09시즌의 .659를 정점으로 매년 승률이 떨어져 2011-12시즌에는 5할을 밑돌게 되자 결국 경질당하고 말았다.(7시즌 통산 266승 269패, 승률 .497) ==== [[인디애나 페이서스]] ==== 이후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코치를 맡던 맥밀란은 2016년에 재계약에 실패한 [[프랭크 보겔]][* 한 때는 [[르브론 제임스]]의 [[마이애미 히트]]와 자웅을 겨룰 정도의 강팀이었으나 에이스인 [[폴 조지]]의 부상 등으로 전력이 약화된 것을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감독 교체가 이루어진 것. 보겔은 이후 2020년에 [[LA 레이커스]]에서 감독으로서 우승을 차지했다.]을 대신하여 후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맥밀란이 감독으로 있었던 4시즌 동안 페이서스는 4번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2017-18 시즌에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3승 4패로 탈락한 것을 제외하면 전부 4패로 스윕패를 당했다. 팀 역시 5할 이상의 승률은 꾸준하게 거뒀지만 우승권에는 근접하지 못하고 플레이오프 중하위권 시드 정도를 오르내렸다. 계약 마지막 해인 2020년에는 감독직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들려올 정도로 위태했지만[* 가장 자리가 위태로운 감독 중 1순위로 손꼽혔다.][* 시즌 승률 .616으로 4번 시드를 획득한 만큼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애초에 인디애나의 목표는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시즌 이전까지 3번의 플레이오프에서 2번을 무기력하게 1라운드 스윕으로 내준 것도 컸다.] 정규시즌 종료 직전 구단은 소문과는 정반대로 그에게 1년의 연장계약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자리가 안전해지는 듯 했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5번시드 [[마이애미 히트]][* 인디애나를 이긴 마이애미는 파이널까지 올라가서 준우승을 차지.]를 상대로 4연패하며 또다시 스윕당하자 '''연장계약 10여 일만에 경질'''당하고 만다.(4시즌 통산 183승 136패, 승률 .574) ==== [[애틀랜타 호크스]] ==== 인디애나에서 경질당한 뒤 맥밀란은 코치로 [[애틀랜타 호크스]]에 합류했다. 그리고 첫 해인 2020-21 시즌 초반에 팀이 심각한 부진을 겪자(14승 20패, 승률 .412) 구단은 감독이던 로이드 피어스를 경질하고[*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트레이 영]]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과의 불화가 더 컸다.] 맥밀란을 임시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맥밀란 취임 직후 애틀랜타는 곧바로 8연승을 내달리는 등 교체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맥밀란 부임 후 총 27승 11패, '''승률 .711'''[* 동부 1위 필라델피아의 시즌 승률(.681)보다 높다!]) 덕분에 10권 언저리에서 머물던 팀성적은 최종순위 5위로 뛰어오르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여유있게 성공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가 [[뉴욕 닉스]]로 정해지자 맥밀란은 "사무국은 닉스의 활약을 기대할 것이다."라는 발언을 하였고[* [[뉴욕|미국 최대의 도시]] 연고팀 + 8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이니 흥행보증수표가 따로 없긴 하다.] 결국 2만 5천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편파판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기싸움으로 먼저 선수를 친 것. 몇십 년 전부터 NBA 감독들이 종종 써먹던 방법이다.] 덕분인지 시비가 될 정도의 편파판정은 받지 않았으며 호크스는 닉스를 4승 1패로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닉스의 에이스 [[줄리어스 랜들]]을 아예 안 보일 정도로 무력화시켰으며 랜들을 대신 해 에이스 역할을 하던 [[데릭 로즈]]마저도 4차전부터는 봉쇄시키는 등 좋은 공격과 수비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214945|맥밀란의 수비 분석(매니아)]] 2라운드에서는 동부 1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맞았지만 1차전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며 기분좋은 출발을 하더니 4차전에서는 18점차로 뒤지던 경기를 역전시키며 잡아낸데 이어 5차전 원정에서는 무려 26점차[* 전반 종료기준 역대 3번째 점수차이 역전 : 22점(40-62)]를 뒤집으며 대 역전승을 거뒀다. 필라델피아의 [[닥 리버스]]의 경직된 벤치 로테이션을 파고들었으며 [[샤킬 오닐|핵-어-]][[벤 시몬스|시몬스]] 작전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6월 20일에는 7차전까지 잡아내면서 '''팀을 컨퍼런스 파이널로 진출'''시켰다. 시리즈 동안 감독 간의 수싸움에서도 리버스보다 우위를 가져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3번 시드 [[밀워키 벅스]]와 맞섰다. 하지만 주축선수들의 잇따른 부상[* 에이스 [[트레이 영]]이 심판의 발을 밟으면서 발목을 심하게 다쳤고 [[보그단 보그다노비치]]는 무릎부상으로 돌파 공격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등의 여파에 2승 4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사실 부상 탓을 하긴 뭐한게 벅스는 팀 내 비중이 트레이 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무릎부상으로 5, 6차전에 결장하는 악재를 겪었다. 그나마 호크스는 [[캠 레디시]]가 시리즈 중간에 돌아와서 힘을 보태기라도 했지만...] 그럼에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거둔 덕분에 호크스의 플레이오프는 호평을 받았으며 뛰어난 지도력을 보인 맥밀란 감독 역시 덩달아 주가가 올랐다. 덕분에 시즌 종료 후 맥밀란은 호크스과 4년의 계약을 맺으며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22-23 시즌 도중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경질되었다. == 수상 내역 == || '''수상 내역''' || ||[[파일:NBA 로고.svg|width=10]]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2회 (1994, 1995)[br][[파일:NBA 로고.svg|width=10]] NBA 스틸왕 (1994) || == 여담 == * 포틀랜드에서 감독으로 재직하던 당시 [[하승진]]을 지도한 바 있다. 하승진을 밀워키로 트레이드시킨 감독이지만 하승진은 맥밀란 감독에 대해 친절하고 신사적이며 선수들에게 용기를 주는 감독이라 이야기하며 매우 좋게 평가한다. 반면 밀워키에서 하승진에게 방출통보를 한[* 방출은 단장/사장 등의 프런트 선에서 결정되었을 것이고 스토츠는 결과 통보만 했을 것이다. 선수단 구성은 프런트의 고유 권한/업무이고 당시의 스토츠처럼 경력도 얼마 안 되고 스타 출신도 아닌 감독들은 여기에 개입할 수조차 없다.] 테리 스토츠 감독[* 얄궂게도 맥밀란의 후임 포틀랜드 감독이 된다.]은 하승진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당시 하승진은 개막 전 트레이닝 캠프에서 부상당하고 시즌 전에 방출되었기 때문에 스토츠와 별다른 시간을 보낸 적도 없을 것이고, 2년간 교류한 맥밀란과 달리 "날 방출한 작자" 정도 이미지 밖에 남을게 없다.] [각주] [[분류:미국의 농구 선수]][[분류:미국의 농구 감독]][[분류:롤리 출신 인물]][[분류:1964년 출생]][[분류:1986년 데뷔]][[분류:1998년 은퇴]][[분류:NBA 영구결번 선수]][[분류:포인트 가드]][[분류:슈팅 가드]][[분류:시애틀 슈퍼소닉스/은퇴, 이적]][[분류:원클럽맨/농구]][[분류: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역대 감독]][[분류: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역대 감독]][[분류:인디애나 페이서스/역대 감독]][[분류:애틀랜타 호크스/역대 감독]][[분류: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