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국가의 내무행정부청, rd1=내무부)] [목차] [clearfix] == 개요 == 內務府[* 일반 행정을 담당하는 관서인 [[내무부]]는 內務部.] [[청나라]]의 통치기구. 내무부는 [[이번원]]과 함께 청대 중앙정치제도의 특징적 기구이다. 내무의 의미는 내무부의 내무가 아닌 궁내의 뜻으로써 [[고려]]의 [[액정국]]과 내시성, [[조선]]의 [[내수사]]와 [[내시부]], [[대한제국]]의 [[궁내부]], [[일본]]의 [[궁내청]](궁내성)처럼 내무부는 청대 [[궁중]]의 의식주 일체와 [[황실]] [[재정]]을 담당한 궁정 담당 관부이다. 입관 이전 궁정의 잡무를 처리하던 기구는 내부(內府)였다. 그 구성원은 상삼기의 보오이[* 한자식으론 포의. 청이 [[만주]]에 있을 당시 가내노비 [[신분]]이었으나 입관 이후 [[팔기제|기인]]이 지배층이 되며 함께 [[신분]]이 올라 중상층 정도의 위치를 차지했다. 상삼기의 보오이는 [[황제]]의 [[노비]](실제 사회신분으로서의 노비가 아닌 주종관계 의미)이므로 내무부를 담당하고, 그 외 팔기의 보오이 위치에 해당된 외니루는 자유민 신분이었다.]였다. 입관 이후 [[도르곤]]이 사망하고 [[순치제]]가 친정을 시작하며 [[왕권강화|황제권]]을 강화하려 할때 [[중국의 환관조직|환관조직인 명의 이십사아문(二十四衙門)을 모방하여 십삼아문을 창설하였다.]] [[대신]]들이 반대하자 그 수장을 [[허서리 소닌]](색니)에게 맡겨 [[환관]]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으로 강행하였다. 순치제 사후 4보정대신 체제에서 십삼아문은 폐지되고 대신 내무부가 창설되었다. 내무부라는 명칭을 쓴건 [[1679년]]부터지만 보정기간에 십삼아문의 환관을 대거 쫓아내 보오이들로 인원을 구성하였다. 수장은 내무부총관대신으로, 정3품이다가 [[옹정제]] 연간 정2품으로 올랐다. [[명나라|명]]의 [[실패]]를 [[교훈]]삼아 내무부 총관에는 [[환관]]을 앉히지 않았다. 내무부 산하에는 많은 기구가 있는데, 그 중 경사방(敬事房)은 [[환관]](태감)[* 명나라 시기 태감은 환관 중 고위급을 따로 지칭하였으나 청나라 시기에는 모든 환관을 태감이라 하였다.]과 [[궁녀]]를 관리하는 기구였고 그 수장은 정4품 총관태감으로 두었다. 경사방 총관태감은 황제가 황자 시절에 가까이 모신 태감이 임명되어 황제의 각별한 관심을 받으며 황제가 선물을 내려주기도 하였다. [[환관]], [[궁녀]]를 관리하는 경사방 총관태감이 태감 중 가장 높지만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양심전 태감의 [[권력]]이 더 강하기도 하였다. 환관에 대한 품급, 직무는 강희 연간을 거치며 체계화되었고 건륭 연간부터 환관은 4품을 넘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서태후 시기 이연영 등이 2품을 받으며 깨지게 된다. 내무부는 이전 왕조들과는 다르게 산하 기구를 통해 직접 [[무역]]에 관여하기도 하는 등 종래 관은 민과 이익을 다투지 않는다는 전통적 방침과는 거리가 멀었다. == 소속 기구 == 내무부는 [[크고 아름다운]] 관부로써 내무부 산하에는 50개가 넘는 기구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 경사방 : 환관 궁녀, 태감에 관한 사무, 궁중에 관한 모든 [[황제]]의 상유 취급, 의례 거행과 내무부 산하기관 사이 공문 전달 * 신형사 : [[팔기제|상삼기 기인]]에 대한 ~~[[코렁탕]]~~ 형옥 담당 * 광저사 : [[황제]]의 자산 관리. [[세관]]으로부터 영여라는 세를 받기도 함. * 영조사 : [[궁궐]]의 유지, 보수 책임 == 관련글 == * [[청나라]] * [[내수사]] * [[내시부]] * [[액정국]] * [[궁내부]] * [[궁내청]](궁내성) *~~[[내무부]]~~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내무부, version=52)] [[분류:전근대 중국의 통치 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