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남연군묘.jpg]] [목차] == 개요 == 南延君墓 / Tomb of Prince Namyeongun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山)에 있는, 왕족인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의 묘소다. 남연군은 [[흥선대원군]]의 부친이며, 조선왕조 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 1대 황제인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친조부다. 남연군 묘역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으며, 묘 앞에 있는 비석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현재 이 무덤이 자리잡은 곳은 본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며 무덤자리에는 절의 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남연군의 아들인 흥선대원군이 부친의 묘소를 이 자리로 안장할 때 가야사와 석탑을 모두 철거하고 그 자리에 부친을 안장하였다고 한다. 대원군의 말에 따르면 [[풍수지리]]가 뛰어난 곳이라고 하여 이 곳을 부친의 묘소로 정하였다고 한다. 다만 이 때 없어진 절이 가야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남연군묘가 생기기 100여년 전에 가야사는 이미 완전히 소멸해서 터만 남아 있었고, 인근에 있었던 절들이 가야사의 이름을 모칭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한 대표적인 인물인 김기석은 이하응이 불지른 절을 묘암사로 봤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710603|"대원군이 불태운 절 가야사 아니다"]] [[무덤|묘]]는 [[비석]]과 봉분 방식으로 되어있는 묘소로, 역사적으로 이 곳은 독일인 오페르트의 [[도굴]]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기도하다. 독일 출신으로 인류학자를 자칭하던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1868년 이 무덤에 잠입하여 보물을 도굴하려고 하였다가 근처 백성들에 의해 발각되어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대원군에게 척양(斥洋)의식과 [[쇄국]]정책을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남연군묘 도굴사건에 대한 내용은 [[오페르트 도굴 사건]] 참조.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남연군의묘|한국어 위키백과: 남연군의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2950&cid=46622&categoryId=46622|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남연군의 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05412&cid=63071&categoryId=63117|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남연군의 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692&cid=42840&categoryId=42852|답사여행의 길잡이 4 - 충남: 남연군 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0138&cid=43723&categoryId=43728|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5 충청도: 천하의 길지 남연군 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29197&cid=42856&categoryId=42856|대한민국 구석구석: 남연군의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97576&cid=40942&categoryId=37404|두산백과: 남연군의 묘]] ==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3,00800000,34&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남연군의묘 (南延君의墓)]]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1822)의 묘이다. > >대원군 이하응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장했으며, 이장한지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났는데 그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 >그 후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으며, 이 일로 대원군이 서양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 >묘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무덤 주변에서 조선시대의 기와가 많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분류:충청남도의 무덤]][[분류:충청남도의 기념물]][[분류:예산군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