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나사우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동음이의어, rd1=낫소, other2=바하마의 수도, rd2=나소)] '''{{{+2 Nassau}}}''' [목차] == 지명 == === 독일의 도시 === [include(틀:지도,장소=나사우 독일,너비=500px,높이=281px)] [[독일]] [[라인란트팔츠]]의 도시. [[네덜란드]]의 국부 [[빌럼 판오라녀|빌럼 1세]]의 가문인 오라녜나사우 가문 중 나사우가 이 지역 [[백작]]위에서 유래한다. [[룩셈부르크]]의 통치 가문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도 이 지역에서 유래했는데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이 [[나사우 가문]]의 장자 계열이고, 네덜란드 [[오라녀나사우 왕조]]가 차자 계열이다. [[영어]]로는 [[바하마]]의 [[나소]]와 철자가 같은데, 이는 바하마를 식민화했을 당시 [[잉글랜드 왕국]]의 왕 [[윌리엄 3세]]가 오라녜-나사우 가문이며 동시에 네덜란드 총독이었기 때문. === 독일의 지방 === 현 행정구역상 [[라인란트팔츠]]주와 [[헤센]]주에 걸쳐있던 지방. 깃발은 위부터 오렌지-청색-오렌지 삼색기였다. 1866년까지는 독립된 공국이었으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편을 들었다 패배하고,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어 같은 신세에 처한 헤센 선제후국과 같이 합쳐져 헤센-나사우 주가 되었다. 이 지역의 마지막 통치자 [[아돌프(룩셈부르크)|아돌프]]는 1890년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대공으로 즉위하여, 명목상의 나사우 공작위는 룩셈부르크 대공가에서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룩셈부르크 대공]]이 겸임) 나치 말기인 1944년에는 헤센-나사우 주가 쿠어헤센, 나사우 주로 분리되면서 한때 독자 행정구역(주도:[[비스바덴]])이 되었기도 했다. == 전함 == ||<-4> [[나사우급 전함|{{{#white 나사우급 전함}}}]] || ||[[나사우]]||[[베스트팔렌(함선)|베스트팔렌]]||[[라인란트(함선)|라인란트]]||[[포젠(함선)|포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MS_Nassau_NH_46827.jpg|width=100%]] === 제원 === ||전장||137m|| ||전폭||26.9m|| ||높이||8.1m|| ||기준배수량||18,570t|| ||최대출력||22,000hp|| ||최대속력||19.5kt|| ||항속력||10kt로 8,000해리|| ||무장||28.3cm 연장포 6기, 15cm 단장속사포 12기,[br] 8.8cm 단장속사포 16기(1915년에 철거),[br] 7.6cm 단장속사포 6기, 45cm 수중[[어뢰]]발사관 3기|| ||탑재기 수||없음|| ||승원||1,000명|| ||동형함||베스트팔렌, 라인란트, 포젠|| === 개요 === 나사우는 [[독일 제국 해군]] 최초의 [[드레드노트급]]인 [[나사우급 전함]]의 1번함이다. 당시 가상적국이던 [[영국 해군]]이 드레드노트를 준공시키자 이보다 약간 늦게 3년 후 준공시킨 함이기도 하다. 동형함으론 베스트팔렌, 라인하르트, 포젠이 있다. === 상세 === 나사우는 [[1907년]] 7월 22일에 [[빌헬름스하펜]] 해군공창에서 기공하여 1908년 3월 7일 진수 후 1909년 10월 1일에 완공했다. 1909년 10월 16일에서 나사우와 자매함 베스트팔렌은 빌헬름스하펜의 해군 조선소의 세 번째 도크 완공기념식에 참가한 후 이후 훈련에 종사했다. 1914년 7월 14일에 [[노르웨이]]로 향할 계획이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간의 [[사라예보 사건|충돌]]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되자 노르웨이 이동은 취소되고 [[북해]]에서 활동하면서 연합군 함선의 대응에 맞섰다. 1915년 8월에 독일 함대는 리가를 공략하여 러시아의 함대를 끌어내리기 위해 [[기뢰]]부설 작업에 나섰지만 [[러시아 제국 해군]]의 반격 및 기습으로 실패했다. 나사우는 8월 16일의 두 번째 작업에서도 반격을 받았지만 8월 21일까지 현지에서 버티며 기뢰부설 작업에 매진했다. 하지만 적 [[잠수함]]의 위협으로 인해 결국 해당 해역에서 철수했다. 나사우는 1916년 6월 1일에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했다. 나사우는 영국해군의 [[타운급 방호순양함|HMS 사우샘프턴]]을 포격했지만 큰 피해는 주지 못했다. [[듀크 오브 에든버러급 장갑순양함|HMS 블랙 프린스]]와 교전하다가 큰 손상을 입은 나사우는 11명의 사망자와 16명의 부상자를 낸 후 수리를 받았다. 이후 전쟁이 종료되자 나사우는 [[베르사유 조약]] 체결로 독일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보유가 금지되자 해체될 운명을 맞이했다. 당시 연합국이던 [[일본]]에 배상함으로 넘겨졌는데 [[일본 제국 해군]]은 노후화가 진행되고 손상이 많았던 나사우를 그대로 [[영국]]에 고철로 매각하여 1921년에 해체하였다. [[분류:동음이의어]][[분류:라인란트-팔츠]][[분류:독일의 도시]][[분류:나사우급 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