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Nariz.jpg|width=100%]] || || 이름 ||아우바루 로페스 칸사두 "나리스"[br](Álvaro Lopes Cançado "Nariz") || || 생년월일 ||[[1912년]] [[12월 8일]] || || 사망년월일 ||[[1984년]] [[9월 19일]] (향년 71세) || ||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1968-1992).svg|width=28]] [[브라질 군사정권|브라질 연방공화국]] || || 출신지 ||[[브라질 제1공화국|브라질 합중 공화국]] 우베라바 || || 포지션 ||풀백 || || 신체조건 ||174cm | 70kg || ||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30-1932)[br][[플루미넨시 FC]] (1933-1934)[br][[보타포구 FR]] (1934-1941) || || 국가대표 ||4경기 (1937-1938) || [목차] [clearfix] == 개요 ==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 겸 [[의사]] == 생애[*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 === 선수 생활 === ==== 클럽 ==== 나리스는 1930년부터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3시즌간 33경기, [[플루미넨시 FC]]에서 2시즌간 46경기를 뛰었고 [[보타포구 FR]]에서 7년을 더 보냈다. 보타포구에서는 165경기 출전, 2골의 기록을 남겼다.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 나리스는 비공식 경기인 [[SE 파우메이라스]]와의 경기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데뷔 경기를 가졌다. 그의 국가대표팀 공식 데뷔전은 [[1937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아르헨티나|1937년의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칠레]]전이었고 이 대회에서 나리스는 3경기에 출전했다. 나리스는 축구 선수로 활동하면서 [[의학]] 공부를 마무리지었고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이듬해 열린 월드컵]]이 열릴 때에는 [[의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선수 겸 팀닥터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 월드컵에 참가했고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슬로바키아]]와의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8강 이후#s-2.5|재경기]]에 출전했다. ~~그 전경기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8강 이후#s-2.2|보르도의 전투]]라 나리스는 많이 바빴을거다~~ === 이후 === 나리스는 은퇴 후 [[보타포구 FR]]에서 팀닥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는 1984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뒷이야기 == * 그의 고향인 우베라바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 * 나리스의 두 아들은 모두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 수상 == === 선수 === ==== 클럽 ====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 2회: 1931, 1932([[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2회: 1934, 1935([[보타포구 FR]]) ==== 국가대표 ==== * [[FIFA 월드컵]] 3위 1회: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1938]] * [[CONMEBOL 코파 아메리카|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37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아르헨티나|1937]] [각주] [[분류:1912년 출생]][[분류:1984년 사망]][[분류:브라질의 축구선수]][[분류:브라질의 의사]][[분류:수비수]][[분류:아틀레치쿠 미네이루/은퇴, 이적]][[분류:플루미넨시 FC/은퇴, 이적]][[분류:보타포구 FR/은퇴, 이적]][[분류:브라질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분류: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참가 선수]][[분류:1937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아르헨티나 참가 선수]][[분류:자살한 축구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