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50년 출생]] ||<-2> [[파일:external/open.cyberoro.com/110703-mk-07(0).jpg]]|| ||<-2>
'''{{{+1 김희중 [br] 金熙中}}}''' || || '''{{{#white 직업}}}''' ||前 프로 [[기사(바둑)|바둑기사]][br]現 아마추어 바둑기사 || || ''' {{{#white 출생}}}''' ||[[1950년]] [[8월 5일]] ([age(1950-08-05)]세)[br][[경기도]] [[화성시]] || || ''' {{{#white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 {{{#white 입단}}}''' ||[[1969년]] || || ''' {{{#white 은퇴}}}''' ||[[1999년]] || || ''' {{{#white 단급}}}''' ||九단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프로[[바둑]][[기사(바둑)|기사]]. 현재는 아마추어에서 활약을 하고있다. == 역사 == 입단 후 1970년대 초에는 대회 우승도 몇 차례 차지했을 정도의 강자로, 특히 초창기 기왕전에서 몇 차례 우승하여 '기왕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다만 이후 [[조훈현]]의 등장으로 정상권에서는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특이점이라면 한국 최고의 대국속도를 자랑한 속기파로, '속기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였다. 역시 속기파였던 서능욱 九단과의 대국에서 시작 후 계가를 할 때까지 총 '''8분'''을 쓴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 방송기전을 제외한 메이저 기전의 제한시간이 각각 4~5시간 할 때였다.] [[서능욱|그만큼 너무 빠르게 둬서 대국이 너무 빨리 끝나버린 탓에, 입회인이 당황하기까지 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다만 그시대의 속기파들이 그렇듯이 [[떡상|속기가 잘 되는 날은 수가 번쩍번쩍 빛나지만]], [[떡락|그렇지 않은 날은 어이없는 수로 자멸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 빗대 동료기사들이 "어떤날은 백발백중, 어떤날은 백발구십중, 어떤날은 백발 십중 이걸 다 합치면 백발희중 아닌가~"하고 놀리기도 하였다고.. 또한 대국을 어이없는 수로 망친 뒤에는 "오늘도 사진을 찍고왔다"고 자책했는데, 이는 사진기의 효과음인 찰칵이 착각과 비슷해서. 주당으로도 유명해서 기왕전 우승상금[* 당시 웬만한 직장인 연소득보다 많았다고 한다.]을 술값으로 다 날린다든지, 술집에서 지인을 기다리며 하이네켄 맥주를 '''52캔'''을 마셨다든지(...) 하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다. 1999년 만 49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사유는 '일신상의 이유'였다고 하는데... 은퇴 이후에는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거나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며, 인터넷 바둑도 즐겨 둔다고. 2013년에는 아마추어 팀리그인 내셔널리그에 '''선수'''로 출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한바둑협회(아마추어 바둑협회)에서는 은퇴한 프로기사의 아마추어 대회 출전을 허용하고 있다. 실제 김희중 九단 역시 이전부터 간간이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고.] 2020년도 최근 프로기사와의 대국이라 함은 당연히 [[유창혁]] 사범과의 아마5강 쏘팔코사놀 끝장승부 대국이다.--결과는 좀 처참했지만(...)-- [[분류:화성시 출신 인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희중, version=15)] [[분류:바둑 기사/한국]][[분류:강릉 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