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유괴살인]][[분류:제6공화국/살인사건]][[분류:1990년 범죄]][[분류:강남구의 사건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파일:김희성유괴살인범김무경.jpg]] [[1990년]] [[8월 26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강남구)|신사동]]에서 청담국민학교 3학년이였던 김희성 군(당시 9세)이 유괴, 살해된 사건이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38458_30435.html|검거 당시 뉴스]] [[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40201_30435.html|사형 구형 당시 뉴스]] == 전개 == 범인 김무경(당시 27세)은 본래 외판원으로 근무하였으나 실직한 뒤 애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씀씀이가 헤퍼서 500만원의 카드빚을 지고 있었다. 이에 김무경은 어린이를 유괴해 몸값을 받아낼 생각으로 1990년 8월 26일 신사동의 한 [[오락실]]에서 전자오락을 하던 김희성 군에게 접근하여 오락실값을 대신 내주는 등의 환심을 샀고 이후 [[롯데월드]]에 놀러가자고 피해자 김 군을 꾀어 집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서초구]] [[예술의전당]] 뒷산으로 데려가 살해했다. 김희성 군을 살해한 뒤 뻔뻔스럽게도 김 군의 집에 11차례 협박전화를 해 2천만 원을 요구하던 김무경은 강남구의 한 공중전화 부스에서 11번째 협박전화를 마치고 나오던 중 김 군 아버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김무경은 피해자인 희성 군이 나이에 비해 전자오락을 잘 하고 얼굴도 희고 반반한 데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집에 전자오락기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부잣집 아이일 것으로 생각하고 유괴했다고 밝혀 배금주의와 황금만능주의, 극단적 인명경시사상에 찌든 세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러나 정작 김희성 군은 건설회사 자재창고의 관리인인 아버지와 함께 창고 옆 5평 크기의 간이막사에서 어렵게 살아 왔다. 김 군의 아버지는 1988년 아내와 사별한 후 외아들인 김 군을 애지중지 길러 왔으며 창고지기 일을 하면서도 자식이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청담동에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당시만 해도 청담동이 21세기만큼 부촌은 아니었다. 지금도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일반 서민층들이 사는 다세대주택이나 연립빌라도 청담동에 많았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2000년 이후 들어 상가건물 등으로 재개발되었다.] 김무경이 김 군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동기인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가의 전자오락기도 아들이 오락을 좋아하자 무리해서 사 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재판과 결말 == 미성년자약취유인, 살인으로 구속기소된 김무경은 기소 20여일만에 [[사형]]을 선고받았고 1991년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 이후 [[삼중(승려)|삼중스님]]에 의해 [[불교]]에 귀의하여 성연이라는 법명을 받았으며 1994년 10월 6일 [[이득화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문승도 등과 함께 [[서울구치소]]에서 처형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