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2000년생 현역 축구 선수, rd1=김정우(축구선수))]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CD313A 30%, #CD313A 70%, #B71D27)" {{{#ffffff '''김정우 관련 틀'''}}}}}} || || {{{#!folding ▼ ---- [include(틀:K리그2/감독)]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CD313A 30%, #CD313A 70%, #B71D27)" {{{#ffffff '''김정우의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성남 FC/역대 주장)] ---- [include(틀:안산 그리너스 FC 감독)]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CD313A 30%, #CD313A 70%, #B71D27)" {{{#ffffff '''김정우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4> {{{#333333,#cccccc '''둘러보기 틀 모음'''}}} || ||<-4> {{{#333333,#cccccc '''개인 수상'''}}} || || || || || || ||<-4> {{{#333333,#cccccc '''베스트팀'''}}} || || [[K리그1|[[파일:K리그1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ee3224; font-size: 0.9em" [[틀:2009 K리그 베스트 11|{{{#ffffff '''2009 K리그 베스트 11'''}}}]]}}} || || || || }}} ||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DDDDDD 0%, #FFFFFF)" {{{+1 {{{#000000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zIbpF.jpg |width=100%]]}}} || ||<-2> ''' 이름 ''' || '''{{{+1 김정우}}}[br]金正友 | Kim Jung-Woo''' || ||<|2><-2> '''출생''' ||[[1982년]] [[5월 9일]] ([age(1982-05-09)]세) || ||[[인천광역시]] || ||<-2>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2> '''신체''' ||185cm, 74kg || ||<-2>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상주 상무 피닉스|상무]] 시절에는 센터 포워드로 뛰기도 했다.] / ^^은퇴^^)[br][[축구 감독]] || ||<|3> '''소속''' ||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3~2005)'''[br]'''[[나고야 그램퍼스]] (2006~2007)'''[br]'''[[성남 일화 천마]] (2008~2011)'''[br]→ '''{{{-1 [[상주 상무 FC|광주 상무 불사조-상주 상무 피닉스]] (2010~2011 / ^^군 복무^^)}}}'''[br][[전북 현대 모터스]] (2012~2014)[br]→ {{{-1 [[알 샤르자 SC]] (2013~2014 / ^^임대^^)}}}[br][[바니야스 SC]] (2014~2015)[br][[BEC 테로 사사나]] (2016) || || '''코치'''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인천대건고등학교]][* [[인천 유나이티드]] U-18 구단] (2019~2020)[br][[안산 그리너스 FC]] (2023 / ^^수석 코치^^) || || '''감독'''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인천대건고등학교]] (2019~2020)[br][[안산 그리너스 FC]] (2023 / ^^감독 대행^^) || ||<-2> '''국가대표''' ||71경기 6골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2003~2012)^^ || ||<-3> '''정보 더 보기'''[br]{{{#!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가족''' ||1남 1녀 중 둘째, 부인 || || '''학력''' ||[[부평초등학교]] {{{-2 (졸업)}}}[br][[부평동중학교]] {{{-2 (졸업)}}}[br][[부평고등학교]] {{{-2 (졸업)}}}[br][[고려대학교]] {{{-2 (학사)}}} || || '''종교''' ||[[천주교]]([[세례명]] : 헤르마) || || '''등번호''' |||6[* [[알 샤르자 SC]], [[바니야스 SC]]], 7[* [[울산 현대 호랑이]] 2004 시즌, 2005 시즌], 8[* [[나고야 그램퍼스]], 2010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10 남아공 월드컵]]], 10[* [[상주 상무 피닉스]]], 14[* [[2004 아테네 올림픽]], [[성남 일화 천마]] 2009 시즌, [[광주 상무 불사조]], [[전북 현대 모터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15[*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16[* [[울산 현대 호랑이]] 2003시즌], 17[* [[2007 AFC 아시안컵 아세안]]], 18[* [[성남 일화 천마]] 2008 시즌], 88[* [[성남 일화 천마]] 2011 시즌] || }}}}}}}}}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감독|감독]]. 별명은 뼈.[* 본인은 정작 '뼈'가 들어가는 별명은 좋아하지 않는 편.]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쉐도우 스트라이커, 센터백까지 중앙에서 뛰는 포지션은 거의 다 소화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의 주역 중 하나다. == 클럽 경력 == === [[울산 현대 호랑이]] === [[부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차두리]], [[이천수]][* 여담으로 이천수와 김정우는 초-중-고-대 1년 선후배 관계이다.], [[최성국(1983)|최성국]] 등과 함께 이미 각급 대표팀을 들락날락 거리던 슈퍼스타급 유망주였다. 2003년 동기 최성국과 함께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계약금 3억에 [[울산 현대 호랑이]]로 입단했다. 신인 시절부터 리그에서만 34경기 1골 3도움을 기록, [[김정남(축구인)|김정남]] 감독의 신뢰 아래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올림픽 대표팀으로서 거의 1년을 보낸 2004년 18경기를 뛰었다. 특히 2005 시즌에는 [[이호(1984)|이호]]와 중원에서 짝을 이뤄 울산을 이끌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 [[나고야 그램퍼스]] === [[파일:attachment/Kim_Jung-Woo_Nagoya_Grampus.jpg]]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 형식으로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와 2년 계약했다.[* 나고야는 이 때 프랑스 리그의 메츠에서 뛰던 [[안정환]]까지 영입하려고 했으나, 안정환이 월드컵 대표팀 선발을 위해 독일 분데스리가의 뒤스부르크로 이적하며 좌절되었다.]나고야에서는 과거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주문받으면서 이전까지 김정우가 보여주던 플레이 외에도 다양한 것이 가능한 선수임을 증명했다. 특히 2008 시즌 스리백을 쓰는 팀에서 공미로 나오며 개막전 득점,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공격적인 재능을 뽐내며 대표팀에도 다시 차출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 [[성남 일화 천마]] === 2008 시즌 종료 이후 김정우는 FA로 풀려 [[PSV 아인트호벤]], [[레인저스 FC]], [[위건 애슬레틱]]과 이적설이 났으나 소문만 무성했고, 구체적인 제의는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당시 빵빵한 재정이 뒷받침되던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했다. 이때 울산 현대와 위약금 논쟁이 벌어지며 6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언급되며 2008년 내내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하지만 결국 울산이 위약금을 포기하면서 소송이 가라앉았다. 2009 시즌 팀을 떠난 김상식에 이어 주장을 맡으며 시즌 내내 [[마우리시오 몰리나]]와 함께 성남을 먹여살리다시피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ACL과 리그컵에 이어 트레블을 노리던 포항을 누르고 팀을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11월 말에 입대하며 12월에 펼쳐진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는 출전할 수 없었다. [* 재미있게도 전북을 먹여살린 수비형 미드필더는 성남의 리빌딩 과정에서 쫓겨난 김상식이었다.] === [[상주 상무 FC|광주 상무 불사조-상주 상무 피닉스]] (군 복무) === 광주 상무 입대 이후에도 활약을 이어갔고, 월드컵에도 출전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미드필더로의 활약을 이어가던 김정우는 2011 시즌 상무가 광주에서 상주로 이전하고 [[이수철]] 감독이 새로 취임하면서 포지션을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옮겼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 맡은 스트라이커 역할이었으나, 놀라운 재능을 보이면서 리그 15골(득점순위 3위), 컵대회 포함 18골을 기록했고, 명실상부 상주의 에이스로 꼽혔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태]]로 상주의 분위기가 겉잡을 수 없이 추락하면서 김정우의 활약도 같이 감소했으나, 이 시즌 그의 활약은 주목할 만했다. 2011년 9월 21일 부로 전역해서 성남으로 복귀했지만, 복귀전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에서 후반전 교체된 지 20분 만에 부상당해 시즌을 조용히 마감했다. === [[전북 현대 모터스]] === 2011년 시즌을 마치고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으며 연봉 15억 가량으로 K리그 최고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김정우의 전성기는 이 해가 마지막이었다. 2012 시즌에는 잔부상에 시달리며 5골 2도움에 그쳤고 특히 팀이 상위스플릿에 진출한 리그 후반기에는 완전히 침묵하여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 임시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공백이었던 팀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김정우가 평범한 미드필더였다면 5골 2도움이 나쁜 성적은 아니겠지만 김정우에 대한 기대치는 국가대표와 상주에서 공격수로 뛰며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월등히 높아졌고, 그 기대치에는 못 미친 것이 사실이었다. 주전 센터백 조성환, 임유환, 심우연이 줄부상과 경고누적 등으로 빠지자 김상식과 함께 센터백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부상에 심리적 압박감까지 겹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심지어는 중간에 임유환과 더불어 무단이탈설이 돌기도 했다. === 말년 ===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 복귀 후 팀 리빌딩 과정에서 알 샤르자로 임대되었다. 전북 측에서는 아예 이적시키길 원했으나 워낙 연봉이 높아서 실패했다. 중동 이적 후에는 어느 정도 폼을 회복하여 팀의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는 데 이바지하며 13~14시즌 UAE 리그 베스트 11에 뽑혔다. 시즌 종료 후 아부다비를 연고로 하는 구단인 바니야스로 이적했다. 2015년 2월 부상으로 소속팀과 계약을 해지하였고, 태국의 BEC 테로 사사나로 이적하였다.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0365|기사]] 그러나 이적 직후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였다. [[2019년]] [[3월 22일]] [[벤투호/2019년#s-2.2.2|볼리비아전]] 하프타임 때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vod/index.nhn?category=amatch&tab=game&listType=game&date=20190322&gameId=20190322A01A190322&teamCode=&playerId=&keyword=&id=523443&page=1|은퇴식]]이 열렸다. == 국가대표 경력 == [[파일:축구선수 김정우.jpg]] '''[[허정무호]]의 숨은 주역'''으로[* 사실 숨은 주역이라는 말 자체가 좀 아이러니한게, 당대에도 대다수의 축구팬들이 김정우가 해주는 역할과 중요도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뒤에 더 부각된 것은 사실이나 아예 묻혀서 못알아봤던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부평고 선배 김남일의 뒤를 이어 대표팀 중원을 책임졌던 살림꾼. 2003년, 울산 현대 입단 이후 당시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올라서면서 가치가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2004 아테네 올림픽]]때는 멕시코전에서 통쾌한 중거리슛 득점으로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도움을 주었다. 국가대표팀 데뷔는 2003년 10월의 [[오만 쇼크|오만]]과의 [[2004 AFC 아시안컵 중국|2004 아시안컵]] 예선에서 첫 출장하였다. 이후 [[김남일]], [[이호(1984)|이호]], [[백지훈]] 등과 중앙 미드필더 주전 경쟁을 벌였지만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예비 명단에만 포함되었고, 최종 명단에서는 탈락하였다.[* 선수 본인의 회고로 TV로 --술 한잔 하면서-- 경기는 봤다고 한다.] [include(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이후 절치부심하여 월드컵 이후 [[핌 베어벡]] 체제에서 중용받으면서 경험치를 쌓은 끝에 2007년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였다.[* 당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안정환, 김남일 등 기존 유럽파 및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들 모두 부상 및 부진으로 인해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2000년대 이후 역대 최악의 전력으로 대회를 꾸려가게 되었다.] 조별리그 2차전 바레인전 어이없는 백패스로 인해 팀의 패배의 원흉이 되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다음 경기인 개최국 인도네시아와의 3차전에서 엄청난 빈공으로 답답한 축구를 하던 중 [[이천수]]가 상대 수비를 헤집고 내어준 패스를 다이렉트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넣으면서 8강 진출에 기여했다. 이는 김정우의 A매치 데뷔골이기도 하다. 대회 내내 공격형 미드필더 내지는 중앙 미드필더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 베어벡호의 황태자로 부상하며 대한민국의 아시안컵 3위에 기여했다. 2008년 허정무호 출범 이후에도 대표팀 주축 선수로 부상한 이래 안티가 꽤 많았다. 그전까지 붙박이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남일 팬들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해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까지 진출했던 조원희 팬들에게 특히 욕을 많이 먹었다. 결정적인 찬스 상황을 내주기 전에 끊어버리는 역할도 하기에 카드 수집도 많은 편이고, 대표팀에서 쓰는 '''홀딩을 쓰지 않는 시스템'''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아 더욱 까인다. 사실 허정무호 시기 김정우 이상의 선수는 없었다. 김남일은 30줄에 접어든 나이, 수원과의 갈등과 해외진출로 부침을 겪는 와중에 폼이 하락했고, 조원희는 EPL에서 벤치만 달구며 폼이 급격히 하락했고 결국 잊혀진 선수가 되었다. 게다가 김남일, 김정우와 달리 공격 전개능력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김두현은 애초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라 수비 능력을 기대할 수 없었고 당시 기대주로 떠올르던 [[신형민]], [[김재성(축구)|김재성]]은 실력이나 경험이 아직 일천했다. 2006년 대표팀에서 주목받던 이호와 백지훈 등은 전술이나 폼의 문제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지 않았다. 일례로 2010년 2월 14일 열린 동아시안컵 일본전을 보면 김정우가 퇴장당하자마자 한국의 중원은 피지컬에서 열세인 일본 상대로도 줄곧 밀렸다. 당시 [[구자철]]과 김재성, 신형민은 김정우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순간적인 역습 기회를 살린 김재성의 쐐기골이 없었다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허정무호에서 중원의 중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대표팀의 주축을 [[양박쌍용]]으로 기억하지만, 대표팀의 진짜 에이스는 김정우였다. 2010 월드컵 대회 당시 4경기 다 선발은 김정우, 기성용이었으나 김정우는 4경기 풀타임을 다 뛰었던 반면 기성용은 매경기 교체아웃이 된 것만 봐도 둘 사이 비중의 차이는 명확했다. 기성용의 수비력은 국가대표 생활 내내 안 좋았지만 신인이었던 이 시기는 더욱 안 좋았고 셀틱 이적하고 나서 폼도 좀 떨어졌던 시기여서 공격의 다변화를 꾀하는 카드였다. 따라서 김정우에게 주어진 부담이 굉장히 컸다.[* 기성용이 그때는 수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형들 따라서 뛰었다고 밝힌 인터뷰가 있다. 사실 기성용의 발전한 수비력이라는 것도 그냥 최대한 뒤로 물러나면서 공간과 각을 지키면서 아군 선수를 기다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다 아군 선수가 상대방과 다투다가 흘러나온 볼을 채는 걸로 인터셉트 스탯을 채우는 식이다.] 김정우-기성용 라인은 김정우가 전천후로 뛰어다니면서 수비, 압박, 연결에 힘을 쓰는 가운데 기성용이 조용형-이정수등의 국가대표 센터백을 보좌해 가며 특유의 시야와 짧고 길고를 가리지 않는 정확한 패스능력으로 공격루트의 다변화를 꾀하는 식이었다. 2009년 11월 열린 [[덴마크]] 국가대표와의 평가전에서 '''덴마크의 미친개''' [[크리스티안 폴센]]을[* 당시를 직접 보지 않은 팬들은 누군지 잘 실감이 안 나겠지만 샬케, 세비야, 유벤투스, 리버풀을 거쳐갔던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에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입지를 가진 선수였다.] 상대해서 발라버리는 기염을 토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몇 주 앞두고 벌어진 몇차례 평가전에서 그를 저평가 해온 팬들도 눈치챌 만큼 기량이 급상승한 모습을 보여주며 국가대표팀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include(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특히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펼쳐진 스페인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도 좋은활약을 보여주었는데 당시 스페인 대표팀 라이트백이였던 세르지오 라모스가 경기이후 가장 기억이 남는 선수로 김정우를 뽑았다. 강팀과 상대하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으며, 상대 미드필더들을 씹어먹으며 중원을 장악하여 폼이 처참하게 떨어진 [[기성용]]의 구멍을 훌륭히 메꾸었다. 단점으로 지적받던 카드수집도 태클실력이 늘어났는지 상당히 줄었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그 '''[[메시]]'''를 태클하며 공을 종종 뺏는 대활약을 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도 박지성과 함께 중원의 핵심 역할을 책임졌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광주 상무]] 소속으로 계급은 일병이었다.[* 당시 그의 경기를 보던 모부대에서는 국가연주가 나올적에 그가 거수경례자세로 서있자 괴성을 지르면서 그를 응원하였다.] 그러나 2012년 전북 이적 이후부터 점점 하향세를 그리면서 더 이상 국대에서는 볼 수 없는 선수가 되었다. 이후 2013년에는 중동으로 진출하여 당시 중앙 미드필더 경쟁에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지난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억하던 팬들은 82년생으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까진 충분히 폼을 유지할 수 있을거라 생각되었기에 급격한 몰락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점에서 분명 주목도가 떨어졌고, 더불어 급격히 떨어진 폼 때문에 남아공 월드컵 이후 사라져버려 오랫동안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비판은 좀 받을지언정 확고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담당해주는 정우영이 나타나며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남아공 월드컵 시절의 김정우를 이을만한 퍼포먼스는 보이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며 오랜 시간 국대에서 느껴지던 김정우의 공백을 잘 메워줬다. == 지도자 경력 == === [[인천대건고등학교]] 감독 === 2019년 3월 고향 팀인 [[인천 유나이티드]]의 U-18 팀인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첫 시즌부터 K리그 주니어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모두 3위를 차지했으며 전국체전에서 우승도 차지하는 등 좋은 성과를 냈으며, 2020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 [[안산 그리너스 FC]] 코치-감독 대행 === 2021년 11월 29일,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임종헌(축구)|임종헌]]과 함께, 대학 시절 은사인 [[조민국]] 감독이 부임한 [[K리그2]] [[안산 그리너스 FC]]의 코치로 선임되었다.[[http://naver.me/55H7Il31|#]] 2022 시즌 기존의 수석 코치였던 임종헌이 감독 대행을 거쳐 감독으로 승진하면서 김정우 또한 수석 코치로 승진하였다. 하지만 시즌 중반 임종헌 감독이 선수 선발 비리 문제로 경질되면서 수석 코치였던 김정우가 감독 대행으로 6월 25일 [[충남 아산 FC]]전을 이끌었다. 이후 송한복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면서 안산 구단을 떠났다. == 플레이 스타일 == 본래 공격형 미드필더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도어 락 축구의 달인인 [[김정남(축구인)|김정남]] 감독 밑에서 수비적인 롤을 많이 맡으면서 균형잡힌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큰 키에 비해선 몹시 마른 체형이지만, 몸싸움 잘하고 터프하며 시야 또한 넓었다. 특히 패스커트의 달인수준인데 상대의 패스길목을 파악하고 미리 위치를 차지하고 뛰어드는 타이밍이 일품으로 태클로 볼을 뺐는 것이 아니라 커트로 수많은 공격권을 가져왔다. 또한 괜찮은 중거리 슛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애당초 공미 출신이라 당시 한국수미 중 몇없는 볼간수가 가능한 미드필더였다. 다만 큰 키에 비해 헤딩경합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다. 많은 활동량과 투지 그리고 영리한 축구지능으로 중앙 개싸움에 능하고 특히 커팅능력이 우수하면서 3선에서는 볼간수가 가능한 딥 라잉 미드필더 또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라고 볼 수 있다. 중앙 미드필더로 우승을 경험한 이후 팀을 옮겨다니며 여러 롤을 맡게 되는데 나고야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고, 성남에선 공격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오갔으며, 베어백호에선 공격형 미드필더,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김동진과 함께 와일드카드로 참가)에서는 다시 중앙 미드필더, 허정무호에서는 전천후 중앙 미드필더 역할, 상무에선 쉐도우 스트라이커, 전북에선 임시로나마 센터백까지 겸했다. 초기에는 다소 거친 플레이 스타일 탓에 카드캡터 소리를 들었으나 경험이 쌓인 이후에는 개선되었다. 유사시 공미 역할도 해줄 수 있는 패싱력과 깡마른 몸과 전혀 상이한 뛰어난 경합 능력으로 감독들의 사랑을 받았다. == 여담 == * [[이천수]]와 동향인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김정우가 부평초-부평동중-부평고 1년 후배다. 게다가 1년 터울로 [[고려대학교 축구부|고려대]]를 거쳐 [[울산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것도 같다. 김정우에게 이천수는 제일 어려운 선배라고 한다. * [[샤다라빠]]는 김정우에게 '''골레처'''[* 대런 플레처+ 해골. 사실 플레처도 EPL 최상위권 팀의 주전 중미라는 위상에 비해 몸이 마른 편이다.]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 [[포르셰]]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 [[풋볼 매니저]] 2011 11.21 패치에서 EPL 중상위권에서 주전 먹을 능력치를 가지는 공미로 등장해서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상무에 있어서 2년 후에 온다. 첫시즌 기준으로 2년 후면 나이 서른…. FM 2012에서도 탈 K리그 급의 능력치를 이어갔다. 대략 FM 2014까지는 한국 국대에서도 주전 급의 능력치를 보유했으나, 이 후 폼이 떨어지면서 FM에서도 자연스럽게 능력치가 하향되었다. 시리즈가 17까지 나온 현 시점에서는 예전에 비하면 많이 하락했다. * 배우 한혜경과 2014년 2월 8일에 결혼하였다. [[http://star.mt.co.kr/stview.php?no=2014020511342728505&type=3|기사]] * 2018년 11월 29일, 유튜브 [[꽁병지tv]]에 출연, 근황을 전해왔다. 선수 시절에 가정에 소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은퇴 후 온전히 육아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하지만, 안산 그리너스에서 코치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https://youtu.be/OtK9bWFSmTU|풀버젼]]. * 2010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청와대 ]]오찬 당시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충성]] 경례구호와 [[거수경례]]와 [[일병]] 김정우 [[관등성명]] 복창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는 [[국군체육부대]]의 특별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민간인]]인 다른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악수를 하면 된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당시 군인 신분인 김정우의 상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거수 경례를 해야 한다. [[대통령]]과 악수 할 때 '[[관등성명]]'을 잊어서도 안된다.] 김정우는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면서 겸손해 했다고. 군인 인사의 FM을 보여 줬다는 평이 많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7/2010070701684.html?outputType=amp|#]] * A매치에서 71경기[* 은퇴식 기준은 70경기 이상.]를 뛰었기 때문에 최근에 대표팀 은퇴식을 치러주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자식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다. 2019년 3월22일 볼리비아전에서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vod/index.nhn?category=amatch&tab=game&listType=game&date=20190322&gameId=20190322A01A190322&teamCode=&playerId=&keyword=&id=523443&page=1|은퇴식]]을 치르기로 결정났다. * 우루과이의 레전드 공격수 [[디에고 포를란]]이 2010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과 김정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언급했다. * 현역 시절에는 뼈정우로 불릴 정도로 마른 모습이었지만 은퇴한 후 살이 좀 쪄서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오랜만에 그를 본 사람들은 몰라볼 정도. * [[기성용]]이 꼽은 같이 뛰기 좋았던 미드필더 파트너로 꼽은 선수이기도 한데,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기성용에게 앞으로 나가서 하고 싶은거 다 하라고 말하고, 뒤에서 굳은 일을 맡아줬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_vRJm-rAWC8| [히든초대석] 기성용이 직접 말하는 빌드업과 전술 (프리미어리그, K리그, 대표팀) ]] == 관련 문서 == * [[축구 해외파 선수들]] [[분류:1982년 출생]][[분류:2003년 데뷔]][[분류:2016년 은퇴]][[분류:부평구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감독]][[분류:울산 현대/은퇴, 이적]][[분류:나고야 그램퍼스/은퇴, 이적]][[분류:성남 FC/은퇴, 이적]][[분류:성남 FC/역대 주장]][[분류:상무 축구단/전역]][[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은퇴, 이적]][[분류:샤르자 FC/은퇴, 이적]][[분류:바니야스 SC/은퇴, 이적]][[분류:폴리스 테로 FC/은퇴, 이적]][[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8 베이징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축구 와일드카드]][[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미드필더]][[분류:중앙 미드필더]][[분류:안산 그리너스 FC/역대 감독]][[분류:감독 대행/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