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려 응양군 상장군]][[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1363년 사망]] [include(틀:고려사)] ---- ||||<:>'''{{{#white 고려의 간신배}}}''' || ||<:>
'''{{{#white 이름}}}'''||<(> 김용(金鏞) || ||<:>'''{{{#white 출신지}}}'''||<(> 고려 안성[* 현 대한민국 경기도 안성시.] || ||<:>'''{{{#white 사망지}}}'''||<(> 고려 계림부 감옥[* 현 대한민국 경북 경주시.] || ||<:>'''{{{#white 생몰년}}}'''||<(> ? ~ 1363 || [목차] [clearfix] == 개요 == >'''"[[공민왕|가마에 타시는 분]]을 놀래키지 말라."''' >---- >[[흥왕사의 변]]을 일으킨 뒤 임금이 죽지 않음을 확인한 후 한 말. 《고려사》 발췌. [[고려]] 후기의 [[무신]]. [[공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반역]]을 꾀한 [[간신]]. 고려 말에 대해 [[일반인]]의 인식이 다른 시대보다 덜해서 넘어가는데 '''사실 [[한국사]]에서 손꼽히는 희대의 [[간신배]] 중 한 명이다'''. 1363년 [[흥왕사의 변]]을 일으킨 주범이었지만 토벌군을 이끌고 온 [[최영]]에게 진압된 후 체포되었고, 사지가 찢기는 극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 생애 == [[공민왕]]이 [[원나라]]에 사실상 [[인질]]로 묶여있을 때부터 그를 모시면서 같이 지냈기 때문에 왕의 총애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 그럼에도 벌을 받지 않는 등 권세가 대단했는데 그 중에서 심각한 악행은 '''정세운 [[암살]] 사건'''이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세운(고려)|정세운]]과 [[안우]]가 [[홍건적]] 토벌에서 큰 공을 세우자 왕의 명령을 사칭해[* 정세운을 죽이라는 것이 마치 왕의 뜻인것마냥 교지까지 꾸며냈다.] 안우를 시켜 정세운을 암살하고는 안우 역시 상관을 죽인 죄를 물어 제거해버린다. 그 후 이 일을 알고 있었던 [[이방실]], [[김득배]] 등을 비롯한 사건에 연관된 이들을 대부분 살해하는 짓을 벌였다. 정세운을 비롯한 이들은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낸 [[명장]]들[* 안우, 이방실, 김득배를 이른바 '''고려 3원수'''라고 부른다.]이었지만 김용의 흉계에 휘말려 실로 허망한 최후를 맞았고, 이 때문에 당시 [[백성]]들이 매우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이 사실을 들킬까 두려워 당시 오빠 [[기철]]의 죽음('''[[병신정변]]''')으로 고려에 크나큰 분노를 느끼던 [[기황후]]와 내통하여 [[덕흥군]]을 왕으로 세울 계획을 짠 다음 공민왕이 [[흥왕사]]에 머무르는 걸 기회로 삼아 난을 일으켜 당시 [[문하시중]]이었던 홍언박[* [[홍륜]]의 할아버지] 등을 비롯한 수많은 [[관리]]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공민왕과 닮은 [[얼굴]]이었던 환관 [[안도치]]가 대신 미끼가 되어 희생하면서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무렵 [[반란]] 소식을 듣고 [[최영]]이 관군을 이끌고 오면서 되려 사면초가에 몰리게 되자, 김용은 오히려 최영한테 먼저 가서 관군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부하]]들을 자기가 직접 죽여버린 다음 마치 진압하고 공을 세운 것 마냥 위장해 빠져나가려 했다. 공민왕은 김용이 설마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터라 김용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으며 그를 1등 [[공신]]으로 책봉했다. 그러나 김용이 정작 도망가다가 체포된 그의 부하들을 국문하지 않자 점점 의심을 사게 되었고, 결국 [[임견미]] 등이 반란군을 국문하면서 그들이 모든 것을 실토하여 모든 진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다. 체포된 김용은 이 와중에도 >"나는 단지 시중 홍언박 등을 제거하려고 했을 뿐 역심은 없었다." 라고 변명했으나 임견미가 >"그렇다면 전하의 침전에 누워있던 안도치는 왜 죽였냐?" 고 반문하자 반박을 하지 못했고 결국 [[역모]]죄로 극형에 처해졌다. 목과 사지가 잘려 죽었고, 목은 [[개성시|개경]]의 저잣거리에 내걸렸다. 김용은 간신이었지만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부터 그를 호종해온 [[신하]]였고 공민왕의 신뢰를 받아온 최측근이었다. 이에 반역을 저지른 것이 들통난 후에도 공민왕은 >"김용이 그립다." 며 탄식하고는 했다고 《[[고려사]]》에 전한다. 다만 [[임용한]]은 김용의 행동이나 공민왕의 이 발언을 근거로 이 사건은 공민왕이 김용을 이용해 일으킨 [[친위 쿠데타]]로 보고 있으며 정세운, 안우, 김득배, 이방실 등 [[군부]] 실력자들과 홍언박 같은 부담스러운 원로 대신들을 김용을 이용해 [[숙청]]하고 난 후 모든 책임을 김용에게 뒤집어 씌워 김용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은 공민왕의 음모였다는 것.[* 비슷한 사례로 북한 김정일이 벌인 [[심화조 사건]]이 있다.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채문덕을 내세워 자신의 세습에 반대하는 간부들을 죽인 후 채문덕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채문덕도 죽였다.] 훗날 [[신돈]]도 이렇게 공민왕에게 이용당해 악역을 맡은 후 그에게 버림받아 숙청당했으며 [[홍륜]][* 홍언박의 손자]과 [[최만생]]이 공민왕을 암살한 것도 공민왕이 신하를 악역으로 이용하고 나서 팽하는 짓에 당하기 전에 선수를 치자는 심정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이다. 다만 추측의 영역일 뿐이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사료(역사)|사료]]가 딱히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김용 사후 최측근 세력이 크게 사라진 공민왕의 [[권력]] 기반은 당시 공민왕 입장에서도 너무 부실한 게 뻔했으므로[* 특히 김용을 통해 제거한 세력 중에 하나가 또 다른 측근이자 호종공신이었던 정세운이었다. 껄끄러운 정적을 제거하는 동시에 권력 기반의 절반 정도를 날려버리는 큰 모험이었던 셈이다.] 그 동기야 공민왕 탓이든 아니든 간에 흥왕사의 변만큼은 김용 본인이 일으킨 반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쪽이 더 많다. == 대중매체에서 == * 1983년작 [[KBS1]] 드라마 <[[개국(드라마)|개국]]>에서는 배우 [[이치우(1939)|이치우]]가 연기했다. * 2005년작 [[MBC]] 드라마 <[[신돈(드라마)|신돈]]>에서는 배우 [[윤철형]]이 연기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용, version=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