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귀족)] ||<-2> [[조선귀족|'''{{{#ffffff 조선귀족 남작}}}''']][br]'''{{{+1 김영철}}}[br]金永哲 | Kim Yeong-cheol'''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m_Yeong-cheol.jpg|width=100%]]}}} || || '''이름''' ||<(> 김영철 (金永哲) || ||<|2> '''출생''' ||<(> [[1841년]] ([[헌종(조선)|헌종]] 7) [[7월 11일]] || ||<(> [[한성부]] 서부 반송방 미동[br](현 [[서울특별시]]) || || '''사망''' ||<(> [[1923년]] [[3월 21일]] (향년 81세) || || '''본적''' ||<(> [[경성부]] 체부동 || || '''본관''' ||<(> [[광산 김씨]] (光山) || || '''자''' ||<(> 문경 (文卿) || || '''직업''' ||<(> [[관료]], 정치가 || || '''종교''' ||<(> [[유교]] (성리학) || || '''작위''' ||<(> [[조선귀족]] [[남작]] || || '''약력''' ||<(> [[이조판서]], [[형조판서]][br][[공조판서]], [[예조판서]][br][[한성판윤]], 시종원경 || || '''비고''' ||<(> [[친일인명사전]] 등재 || [목차] [clearfix] == 개요 == 김영철(1841 - 1923)은 [[이조판서]]와 시종원경, [[조선귀족]] [[남작]]을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관료]], [[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자(이름)|자]]는 문경(文卿),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이며 [[본적]]은 [[경성부]] 체부동이다. == 생애 == [[1841년]] ([[헌종(조선)|헌종]] 7) [[7월 11일]], [[한성부]]에서 [[김보현(1826)|김보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김보현(1826)|김보현]]은 [[여흥 민씨]] 일파에 속한 인물로 [[명성황후]]와 여흥 민씨가 집권하던 시기 고위직을 지냈고 김영철 역시 요직을 역임했다. 김보현은 선혜청 당상, 경기도 관찰사 등을 지내지만 [[1882년]], [[임오군란]] 때 당시 선혜청 당상이었던 [[민겸호]]와 함께 구식 군인들에게 살해당했다. [[1872년]], 과거에 급제해 병조정랑을 맡으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고 여흥 민씨 세력에게 신임을 받아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이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 등을 역임했다.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10년]]에는 70대의 고령으로 기로소에 들어갔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술국치]]에 협력한 원로 관료로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23년]] [[3월 21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남작 작위는 그의 아들 김영수에게 습작되었다. 이후 [[2002년]] 발표된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다. [각주] [[분류:조선귀족 남작]][[분류:양주시 출신 인물]][[분류:이조판서]][[분류:예조판서]][[분류:공조판서]][[분류:형조판서]][[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김씨]][[분류:조선의 문관]][[분류:1841년 출생]][[분류:1923년 사망]][[분류:수구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