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민주정의당 제12대 국회 전국구)] [[파일:김영작.jpg]] * 金榮作 * [[1941년]]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정치인. [[국민대학교]] 교수 및 [[제1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호는 덕은(德隱)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본관은 [[김해 김씨|김해]]이다. == 상세 == 1941년 [[경기도]] [[여주시|여주군]] 출생. [[1959년]]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외교학전공)]]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발발한 [[4.19 혁명]]에 문리대 시위대의 일원으로서 참여하였다.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외교학과]] 졸업 후, 도일하여 [[도쿄대학|도쿄대]] 법학정치학연구과 과정에 진학하여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박사과정 재학 당시 부친이 [[월북|월북자]]였기 때문에 [[조총련]] 관계자가 이를 미끼로 이용하여 접촉, [[니가타]]에서 밀선을 타고 [[청진시|청진]]에 밀입북하였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부친을 바로 만나게 해주지 않았고, 일본에 복귀한 뒤로는 이에 배신감을 느낀 그는 북한의 간첩 제의를 거절하였다. [[구한말]]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을 주제로 박사학위 취득 후 [[국제기독교대학]]의 사회학 전임 교수로 임용되었다. [[1972년]] 한국에 일시 귀국하였는데, 유학 시절 [[월북]] 사실이 발각되어 [[간첩]]혐의로 구속되었다. [[무기징역|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아 5년 간 수감되었으나, 일본 [[후쿠다 다케오]] 총리의 부탁이 간접적인 계기가 되어 석방되었다.[* 김영작의 회고에 따르면, 재일조선인인 그의 처남이 당시 후쿠다 수상의 주치의였다.] 이후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1980년]]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사면복권되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이념실장을 맡았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는데, 1년 후 사퇴하여 [[국민대]]로 복직하였고 정계를 은퇴하였다. 정계 은퇴 후에는 일본학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현대일본학회,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근대 한일관계 형성을 연구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 간 학술 교류의 활성화에도 힘썼다. [[분류:1941년 출생]][[분류:여주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제12대 국회의원]][[분류:민주정의당 국회의원]][[분류:사회과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분류:김해 김씨]]